"기회보다 시간이 필요할 때" 이의리를 진짜 살리는 길, 이범호 감독의 결단은 옳았다
파이낸셜뉴스
2026.05.30 21:18
수정 : 2026.05.30 21:25기사원문
이범호 감독, 이의리 전격 2군행 특단
진짜 승부는 폭염의 여름… 가혹한 시험대 대신 '재충전의 시간' 부여
버릴 수 없는 156km 좌완 에이스, '진짜' 살리는 길은 1군 무대 밖에 있다
[파이낸셜뉴스] 프로 스포츠에서 선수 기용의 전권은 전적으로 감독에게 있다. 이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사령탑 고유의 성역이다.
하지만 그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명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정 선수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팀이 대패를 당하고, 경기 초반부터 승패의 추가 허무하게 기울어버린다면 어떨까. 폭염을 뚫고 5~6시간의 귀중한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며 야구장을 찾은 팬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권리다. 프로야구는 팬들의 소비로 굴러가는 거대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의리를 계속 선발 로테이션에 안고 가는 것은 사령탑 스스로 감당하기에 너무 거대한 리스크였다. 모든 책임을 이범호 감독이 떠안아야 하는데 가을야구를 가야하는 팀 사정상 명분이 너무 약하다.
이의리의 1군 등판은 주식 투자로 치면 '상방은 꽉 막혀 있고, 하방은 무한대로 열려 있는' 최악의 투자와 같았다. 당장 호투를 펼쳐 극적인 반전을 이뤄낼 확률(상방)은 희박한 반면, 제구 난조로 또다시 대량 실점하며 팀 분위기를 망치고 불펜을 소모할 위험성(하방)이 너무나 컸다.
결국 이범호 감독이 과감하게 칼을 빼 들었다. 30일 이의리를 전격적으로 퓨처스리그로 강등시킨 것이다. 이 감독의 이번 결단은 백번 천번 옳다.
현대 사회는 '공정성'에 민감하다. 황동하, 김태형 등 2군에서부터 묵묵히 땀 흘리며 기회를 쟁취한 자원들이 맹활약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과거의 이름값이나 잠재력만으로 특정 선수에게 계속 1군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는 자칫 '특혜 논란'으로 번질 수 있었다. 이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선수단 내의 건강한 케미스트리에도 치명적인 독이 된다.
그렇다면 이의리는 이대로 버려야 할 카드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반드시 살려야 하는 투수다. 다만, 그 무대가 치열한 순위 경쟁을 하고 있는 1군 무대일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그는 한일전이라는 가장 압박감이 심한 무대에서 마지막 퀄리티스타트(QS)를 기록한 투수이자, 언제든 시속 156km의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뿌릴 수 있는 한국 야구의 대체 불가한 소중한 자원이다. 이의리는 잃어버려서는 안 될 호랑이 군단의 확실한 미래다.
그렇기에 더더욱 무조건 쉬어가야 했다. 영점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의 억지 등판은 이의리 본인의 멘탈을 갉아먹고, 팀의 승률을 깎아내리며, 비판의 화살을 맨몸으로 맞아야 하는 이범호 감독과 이의리 모두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
지금 KIA는 LG 2연패 일격을 당하기는 했지만, 예상보다는 순항하고 있다. 가을야구의 임계점을 서서히 넘어서고 있으며, 29일 기준 불펜 평균자책점도 리그 전체 1위로 올라섰다. 전상현, 이준영, 이태양 등 지원군도 곧 합류한다. 박재현, 김민규, 한준수, 성영탁, 김태형 등 세대교체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시점에 사령탑이 폭탄 같은 리스크를 굳이 떠안을 이유가 없다.
일각에서는 에이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1군 선발 기회를 한 번 더 부여해야 한다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범호 감독은 어설픈 온정주의 대신 미련 없이 2군행을 지시했다. 팀과 선수 모두가 공멸할 수 있는 고리를 끊어낸 완벽하고도 냉정한 정답이다.
이제 곧 숨 막히는 폭염이 시작된다. 페넌트레이스의 진짜 순위 싸움은 체력이 바닥나는 6월부터 8월 사이의 '여름 승부'에서 판가름 난다. 그 험난한 고비의 순간, 이의리는 분명히 큰 힘이 될 수 있다. 어쩌면 KIA의 비밀병기가 될 수도 있다. 그정도 잠재력이 있기때문에 그토록 이의리의 부활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그때를 위해서 지금은 일보 후퇴를 하는 것이 맞다.
지금 코너에 몰린 이의리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1군이라는 가혹한 시험대가 아니라, 무너진 밸런스를 온전히 다시 세울 절대적인 '시간'이다. 기회 대신 시간을 부여하며 훗날을 도모한 이범호의 2보 후퇴. 그것이 지금 이의리와 팀을 모두 살리는 가장 냉정하고도 따뜻한 명처방전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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