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럽다고, 속 쓰리다고 '임의 약물 중단' 위험
파이낸셜뉴스
2026.06.02 09:57
수정 : 2026.06.02 09:57기사원문
맘대로 약물 솎아먹다 뇌졸중·심정지 위험 급증
온병원 통합내과 "약 끊기 전 주치의 상담 필수"
[파이낸셜뉴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층의 만성질환율이 심화되면서 어르신 1인당 하루 평균 복용하는 알약 수가 5∼6개를 넘어선 지 오래다. 한꺼번에 10가지가 넘는 약을 달고 사는 '초다제약물 복용' 노인만 해도 전국적으로 140만명에 육박한다.
문제는 이처럼 먹어야 할 약이 너무 많다 보니 적지 않은 어르신들이 의사나 약사와 상의 없이 스스로 판단해 슬그머니 특정 약을 빼고 먹거나 아예 복용을 중단하는 이른바 '임의 복약 불순응'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건의료계 통계에 따르면 노인 환자의 복약 거부 원인 중 절반 이상인 53%가 환자 스스로 판단한 '임의 조절'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2일 부산 온병원 통합내과센터(센터장 유홍 진료처장)를 통해 노인 환자가 약을 임의 중단했을 때 발생하는 치명적인 위험성과 부작용, 약물 중단 전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야 하는 대표적인 가이드라인을 알아본다.
■ 맘대로 끊은 고혈압·당뇨약, 순식간에 '시한폭탄' 된다
보건당국과 의학계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가 약 복용을 임의로 중단하거나 불규칙하게 먹을 경우, 약을 지시대로 잘 챙겨 먹는 환자에 비해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히는 뇌졸중(중풍) 발생 위험이 무려 4배나 급증한다. 급성 심근경색 등 치명적인 심혈관 질환 발생률 역시 2.5배나 높아지며, 결과적으로 전체 사망 위험도 치료군에 비해 2배 가깝게 치솟는 것으로 분석됐다.
많은 어르신들이 "집에서 혈압을 재보니 정상으로 나오길래 이제 안 먹어도 되는 줄 알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약이 몸속에서 정상적으로 작용해 혈압을 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고혈압 자체가 완치된 것이 결코 아니다. 혈관을 보호하던 방패를 환자 스스로 치워버리는 순간, 혈압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리바운드(반동) 효과'가 일어나 순식간에 응급실로 이송되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당뇨약 역시 임의 중단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인슐린이나 경구용 당뇨약을 허락 없이 중단하면 고혈당 상태가 통제 불능 수준으로 누적되다가 몸속에 독성 물질이 쌓이는 '당뇨병성 케토산증'이나 '고삼투압성 고혈당 상태' 같은 급성 합병증이 유발된다. 이는 극심한 구토와 탈수를 동반하며 순식간에 환자를 의식 불명(혼수) 상태에 빠뜨려 생명을 위협한다. 실제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오는 고령 당뇨 환자의 상당수가 "최근 수일간 당뇨약을 먹지 않았다"고 밝혀지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 약을 끊기 전,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하는 '4대 가이드라인'
처방된 약을 복용하면서 몸에 불편함이 생기더라도 환자가 스스로 약을 솎아내어 임의 조절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온병원 통합내과 유홍 부원장은 약 복용 중단 시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하는 '4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안전한 약물 조정(Deprescribing)을 당부했다.
유홍 센터장의 4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우선 약을 먹은 뒤 심한 어지러움이나 무기력증이 생길 때다. 이는 고령층이 혈압약이나 혈관 확장제를 복용할 때 빈번하게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특히 앉았다가 일어설 때 핑 도는 '기립성 저혈압'이 발생하면 낙상으로 이어져 뼈가 부러지는 등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이때 환자가 임의로 혈압약을 끊으면 뇌졸중 위험이 커지므로,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 약의 용량을 줄이거나 다른 성분으로 교체해야 한다.
관절염 등으로 처방받는 소염진통제나 일부 아스피린 계열의 약물은 위점막을 자극해 위장관 출혈을 유발할 수 있는데, 소화가 안 된다고 만성질환 약까지 통째로 끊어버리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이 경우 위점막 보호제를 추가 처방받거나 위장 부작용이 적은 다른 계열의 치료제로 변경하는 것이 올바른 대처법이다.
혈압이나 혈당 수치가 정상화되어 "이제 다 나았다"고 느껴질 때도 맘대로 약 복용을 중단해선 안 된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에 들어왔다는 것은 약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이지 병이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내과, 정형외과, 안과 등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약을 받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동일한 성분의 약이 중복되거나, 약물끼리 충돌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럴 때는 현재 복용 중인 모든 약을 한 봉지에 모아 주치의나 단골 약사에게 보여주고, 중복된 약을 걸러내는 '다제약물 관리' 조정을 거쳐서 안전하게 알약 수를 줄여야 한다.
온병원 통합내과 유홍 센터장은 "만성질환 약은 병을 완치하는 도구가 아니라, 혈관이 터지거나 막히지 않도록 막아주는 든든한 '방패'"라고 정의하고, "약 복용으로 인한 불편함이나 부담감이 있다면 스스로 약을 끊어 방패를 내려놓지 말고,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 자신에게 딱 맞는 안전한 용량과 성분으로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ich0929@fnnews.com 변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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