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불패’ 신화 깨는 성과급
파이낸셜뉴스
2026.06.02 18:25
수정 : 2026.06.02 18:26기사원문
2018년 미국의 직장인 익명 플랫폼 블라인드에 올라온 질문이다. 작성자는 아마존 직원이었다. 그는 "의사 평균 연봉은 20만달러 수준이지만 빅테크 개발자 가운데는 총보상(TC)이 이미 30만달러를 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논쟁이 낯설지 않다. 블라인드와 레딧 등에 비슷한 글이 자주 올라온다. '의사 vs 뱅커' '의사 vs 컨설턴트' 같은 연봉 비교도 흔하다. 빅테크 엔지니어와 전문의가 같은 엘리트 인재 시장 안에서 경쟁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논쟁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어진다. 2022년 8월 성형외과 의사 케빈 저발은 "전문의가 엔지니어의 생애소득을 추월하는 시점은 43세 전후"라고 분석했다. 의대 컨설팅업체 '메드 스쿨 인사이더스' 창업자인 그는 "돈 때문이라면 의대를 선택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의대와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엔지니어들은 이미 돈을 벌고 자산을 축적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다르다. 의사와 이공계 종사자의 연봉과 사회적 지위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다.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의대는 '성공의 종착지'였고, 공대는 그 아래 선택지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큰 반향을 일으킨 KBS 다큐 '인재전쟁'은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국의 수재들이 의대로 몰리는 동안 중국에선 반도체·AI·로봇 같은 첨단공학 분야로 향했다.
이공계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우려도 이어졌다. 첨단산업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데, 한국의 인재 구조만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연봉 때문만은 아니다. 의대는 한국 사회에서 소득과 안정성, 사회적 지위를 동시에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경로로 여겨진다. 이공계는 반도체와 IT 업황이 경기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고 구조조정 위험도 상존한다.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의대는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그런 한국에서도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 임금협상 타결이 상징적이다. 올해 반도체 부문 직원들은 특별성과급 등 성과급만 6억원 안팎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식 '테크 엘리트'가 한국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반도체학과 경쟁률이 높아지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직원이 결혼시장에서 변호사급 대우를 받는다는 기사도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의사로 사는 것이 엔지니어보다 윤택할 거라는 인식은 틀렸다"고 단언했다. 최근 방송에 출연해 자녀의 진로를 고민하는 한 학부모에게 한 말이다. 삼성전자 성과급 규모가 알려지자 서울 5대 병원 레지던트 사이에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하는 반응이 나왔다는 말도 들린다.
물론 일부 대기업 핵심 사업부의 사례에 불과할 수 있다. 노노갈등과 K양극화 논란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 변화는 의미가 작지 않다. 첨단산업 패권 경쟁이 벌어지는 시대에 최상위권 인재가 특정 직업에만 몰리는 구조를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다. 미국처럼 의사와 엔지니어가 같은 최상위 직군 안에서 경쟁하는 사회로 단숨에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대 불패' 신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만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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