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작가 "이주 노동자의 복잡한 내면 보여주고 싶었다"

연합뉴스       2026.06.03 11:09   수정 : 2026.06.03 11:09기사원문
딸기농장 여성 이주노동자 다룬 장편소설 '딸기 이론' 펴내 2년여간 자료조사·인터뷰…억압적 노동현실 생생하게 담아 '한 사람'의 정체성 탐구…타자와의 공존·연대의 윤리 모색

김숨 작가 "이주 노동자의 복잡한 내면 보여주고 싶었다"

딸기농장 여성 이주노동자 다룬 장편소설 '딸기 이론' 펴내

2년여간 자료조사·인터뷰…억압적 노동현실 생생하게 담아

'한 사람'의 정체성 탐구…타자와의 공존·연대의 윤리 모색

인터뷰하는 김숨 작가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역사의 거친 풍랑과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시적인 언어로 포착해온 소설가 김숨(52)이 신작으로 돌아왔다.

장편소설 '딸기 이론'(민음사 펴냄)을 출간한 김숨 작가를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만났다.

늘 그랬듯 그의 작품은 사회 가장의 낮은 자리를 비춘다.

이번엔 딸기밭으로 '내던져진' 여성 이주 노동자의 삶으로 시선을 이끈다.

"우리는 다른 계절에, 다른 날에, 딸기밭으로 던져졌어. 우리의 던져짐을 한국어로는 '이주'라고 하지." (15쪽)

◇ "이주 노동자들과 시적인 대화…글쓰기의 동력 됐다"

작가는 그동안 강제이주 고려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입양인,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를 끈질기게 파헤치며 문학의 윤리를 탐구해왔다. 그런 그에게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루게 된 배경부터 물었다.

작가는 "몇 년 전 깻잎 농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노동자를 만나 인터뷰를 했고, '니읍'이란 희곡 형식의 짧은 소설로 써서 발표한 적이 있다"며 "그때부터 이주 노동자가 제 관심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 같다"고 돌아봤다.

작가는 농장주에게 밀린 임금을 달라며 소송을 벌이는 법정에서 그들의 사연을 취재했고,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룬 세미나장에서, 오갈 데 없는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쉼터에서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때론 마을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이주 노동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도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단어를 검색해가며 나눈 짧은 대화를 '시(詩)적인 만남'이었다고 그는 정의했다. 그 과정이 하나의 글쓰기 과정처럼 느껴졌으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렇게 2년여에 걸친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딸기 이론'이 나오게 됐다.

인터뷰하는 김숨 작가 (출처=연합뉴스)


◇ 이방인이 보내는 편지 형식…타자의 정체성 탐구

'딸기 이론'의 화자는 한국의 딸기밭 비닐하우스에서 7년째 숙식하며 일하는 미얀마 출신 여성 노동자 '샤빼'다.

샤빼가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동료인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보파'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난 한 사람으로 왔어. 먼저 한 사람으로, 너도 똑같아. 먼저 한 사람으로 딸기밭에 왔어." (11쪽)

'노동력'이 아닌 '사람'으로, '집단'이 아닌 개별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 딸기밭에 왔다는 선언인 셈이다.

작가는 "어떤 사람을 단순히 집단의 정체성으로 이해한다는 게 대단히 폭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집단을 해체하고 한 사람과 대면할 때 이런 선입견이 깨질 수 있다. 그들이 지닌 복잡한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첫 문장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이 문장이 울림을 갖는 건, '딸기 따는 여자애'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평면적이고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태생이 다른 우리를 딸기밭 마을 사람들은 한 봉지 속에 든 일회용 젓가락이나 종이컵 취급해. (중략) 우리는 '우리'로 뭉뚱그려질 수 없는 다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사람들은 알고 싶어 하지 않아." (19쪽)

또 여름이면 곰팡이가 벽을 뒤덮는, 겨울이면 한기가 뼈에 스미는 허름한 숙소에서 샤빼는 자신이 가축에 가깝다고 느낀다.

"농장의 사모님이 '우리 애들'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우리 가족'이 아닌 '우리 염소'라고 말할 때의 우리에 더 가까워." (40쪽)

'딸기 이론' 출간한 김숨 소설가 (출처=연합뉴스)


◇ "개인뿐 아니라 가족사, 그 나라의 역사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작가는 이주 노동자를 가난한 나라에서 온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 역시 "굉장히 폭력적인 이해"라는 이유에서다.

이들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하고 꽉 차 있는지, 좌절과 욕망까지도 짚어낸다.

블랙핑크 리사처럼 큰 눈을 갖고 싶다거나, 이주 노동자가 아닌 교환학생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 무능하고 무기력한 부모와 고국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보여줌으로써 이들 역시 자기 욕망에 충실한 MZ세대라는 사실을 말한다.

작가는 또 한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낸 역사와 기억의 파편을 총체적으로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가족사, 그 나라의 역사, 그리고 이들을 이주 노동자로 받아들인 국가가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이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한 사람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소설은 내전을 겪는 미얀마의 참혹한 현실로도 이어진다.

샤빼는 고향 땅에 남겨진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딸기는 가난한 나라의 젊은 여성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힘이며, 붙들어 두는 족쇄다.

인터뷰하는 김숨 작가 (출처=연합뉴스)


◇ 강요된 아름다움 벗어나 '모름다움'으로 찾는 연대의 가능성

"완나, 뚜라, 베트남 여자애들, 필리핀 여자애들. 우리 딸기 따는 여자애들 모두 모름다움에서 태어났어." (114쪽)

샤빼는 한국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자신만의 단어를 만들어낸다. 그는 모름다움을 '보지 못한 데서 생겨난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라고 정의한다.


작가는 "이주 노동자들을 한분 한분을 만날 때마다 제게는 없는 아름다움을, 빛나는 부분을 발견했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세상의 욕망이 개입된, 때때로 강요된 아름다움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규범의 억압, 보편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을 때 아름다움이 더 건강해지고 풍부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모름다움을 '무지'라는 구름으로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주 노동자들의 얼굴과 삶은 모름다움이라는 구름에 가려져 있는데, 우리는 그 모름다움이라는 구름에도 가 닿지 못한 게 아닐까요."

'딸기 이론'은 그 모름다움을 깨달음으로써 열리는 타자와의 공존, 연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딸기 이론' 출간한 김숨 소설가 (출처=연합뉴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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