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진 한일, 멀어진 통로

파이낸셜뉴스       2026.06.03 19:08   수정 : 2026.06.03 19:08기사원문

"일본에서 경영관리 비자와 영주권 심사가 예전보다 확실히 까다로워졌어요. 재류자격인정증명서(COE)도 예전에는 3~5개월이면 나왔지만 최근에는 1년 이상 기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도쿄에서 활동하는 한 행정사에게 한국 기업에 대한 비자발급 지연이 실제 상황인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지연 자체는 이미 오래된 문제"라며 "최소 5년 전부터 유사한 흐름이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경영관리 비자와 영주권 심사가 훨씬 엄격해졌다고 덧붙였다. 신청건수 증가에 따른 처리 지연이 누적되는 동시에 심사기준 자체도 강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장 대응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일부 기업과 신청자들은 정식 취업이나 사업 개시 이전 단계에서 단기체류 자격으로 먼저 입국해 사전 준비를 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급여가 발생하지 않는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안내된다고 했다.

그는 이를 단순한 행정 지연으로 보지 않았다. 제도 자체가 선별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영관리 비자제도는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500만엔(약 4747만원) 자본금만으로도 창업형 체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3000만엔(약 2억8481만원) 자본금에 더해 상근직원 고용, 경영 경험 등이 요구된다. 형식은 창업이지만 실질은 선별에 가깝다.

일본 정부는 이를 정상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불법체류나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비자 악용 사례를 차단하고 실질적인 사업 운영능력을 갖춘 인재를 가려내겠다는 취지다.

변화에 따른 영향은 수치로 확인된다. 최근 도쿄상공리서치가 일본 내 외국인 경영자 2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5%가 '제도 변경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5%는 '폐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대응으로는 증자 등 요건 충족(27%), 사업 매각 또는 합병 검토(12%), 경영권 이전(6%) 등이 언급됐다.

현장에서 느끼는 부담은 통계보다 강하다. COE를 포함한 비자 심사기간이 길어지면서 일정 자체를 예측하기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기업 운영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비자수수료 상승도 맞물려 있다. 일본 정부는 체류자격 변경 및 갱신 수수료를 최대 10만엔(약 95만원) 수준으로 상향하고, 영주 허가는 20만~30만엔(약 190만~285만원)까지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행정 디지털화와 제도 유지비용 반영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은 구조적으로 이미 마케팅, 인력, 유통 비용이 한국보다 최소 2~3배 높은 시장이다. 여기에 비자비용과 시간비용까지 더해지면서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 만난 일본 진출기업 지원업체 대표는 이 때문에 일본 진출전략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일본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들어간 뒤 초기자금으로 몇 년을 버틸 수 있느냐가 먼저입니다."

이 변화는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보다 초기 스타트업이나 첫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기업일수록 충격이 크다. 시장진입보다 행정절차가 먼저 작동하면서 사업 속도가 구조적으로 늦어지는 탓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흐름이 최근 한일 관계의 방향과는 다소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에너지 공급망 협력, 핵심광물 및 인공지능(AI) 분야 협력, 스와프 형태의 에너지안보 논의까지 확대하고 있다.

양국 관계는 분명 가까워지고 있다.
협력의 속도도 다시 빨라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 협력이 실제로 작동하는 출발점인 사람과 기업이 이동하는 통로는 오히려 느려지고 있다. 가까워진 관계와 느려진 통로. 지금 한일 관계를 설명하는 두 장면은 쉽게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sjmary@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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