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重, 美 첫 FLNG '델핀 1호기' 4.3조 수주…LNG 생산 패러다임 바꾼다
파이낸셜뉴스
2026.06.04 09:48
수정 : 2026.06.04 09:4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삼성중공업이 미국 에너지 인프라 시장에서 4조원이 넘는 대형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사업을 따냈다.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기업이 함께 참여한 '팀코리아' 방식으로 투자와 금융, 시공을 묶어 수주에 성공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이 미국 루이지애나주 앞바다에서 추진되는 델핀 LNG 프로젝트의 첫 번째 부유식 FLNG를 수주했다.
델핀 미드스트림은 최근 50억달러 규모의 최종투자결정(FID)을 내리고 미국 첫 FLNG 프로젝트를 실행 단계로 전환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이번 사업에는 블랙록 산하 글로벌인프라스트럭처파트너스(GIP)를 비롯해 일본 미쓰이OSK라인(MOL), 글로벌 에너지 트레이더 비톨 등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금융 조달과 장기 구매계약, EPC 계약이 맞물리면서 그동안 지연됐던 미국 해상 LNG 수출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오른 셈이다.
FLNG는 해상에서 천연가스를 액화·저장·하역할 수 있는 부유식 생산설비다. 육상 LNG 플랜트와 달리 대규모 부지 조성, 항만·파이프라인 추가 건설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델핀 프로젝트는 기존 해저 파이프라인 등 일부 인프라를 활용하는 브라운필드형 개발 성격을 갖고 있어 투자비와 인허가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델핀 1호기는 루이지애나 해안에서 약 74~75㎞ 떨어진 해상에 배치된다. 연간 LNG 생산능력은 440만t 수준이다. 델핀 측은 같은 사양의 FLNG를 최대 3기까지 투입해 전체 생산능력을 연 1320만t 규모로 확대하는 구상을 갖고 있다. 단일 초대형 육상 플랜트를 한 번에 짓는 방식이 아니라, 수요와 금융 여건에 맞춰 설비를 단계적으로 늘리는 '멀티플 FLNG' 모델이다.
업계에서는 이 방식이 LNG 개발의 새 표준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전통적인 육상 LNG 프로젝트는 초기 투자비가 크고 건설 기간이 길어 금리, 원자재 가격, 인허가 변수에 취약했다. 반면 FLNG는 설비 표준화와 반복 건조가 가능해지면 납기와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삼성중공업이 이번 프로젝트를 'FLNG 양산 시대'의 신호탄으로 보는 이유다.
기술적으로도 델핀 FLNG는 단순 해양플랜트가 아니다. 육상에서 전처리된 가스를 공급받는 연안형 구조의 경제성과, 걸프만 해상 환경에서 장기 운전할 수 있는 해상형 안정성을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FLNG로 설계된다. 상부 플랜트는 경량화해 건조 비용을 낮추고, 120명 규모 거주구와 계류 시스템을 탑재해 해상 운용성을 높인다.
특히 미국 걸프만의 최대 리스크인 허리케인 대응 능력이 핵심이다. 델핀 FLNG에는 자력 항행 기능이 적용돼 허리케인 발생 시 위험 해역을 스스로 벗어날 수 있도록 설계된다. 공랭식 냉각 시스템, 복합 발전 시스템 등도 적용돼 해양 생태계 영향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발된다.
이번 수주는 삼성중공업의 FLNG 시장 지배력을 다시 확인시켰다. 삼성중공업은 세계 최대 FLNG인 쉘 프렐류드를 비롯해 현재까지 글로벌 신조 FLNG 11척 중 7척을 수주했다. 점유율은 60%를 웃돈다. 이번 델핀 1호기는 삼성중공업이 설계·조달·건조(EPC) 전 과정을 단독 수행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델핀 프로젝트는 삼성중공업이 처음으로 EPC 전 과정을 단독으로 수행하며 시리즈 건조를 주도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선제적으로 제안한 최적화 설계와 솔루션을 통해 비용 절감과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기업이 함께 움직인 '팀코리아' 모델도 수주 배경으로 꼽힌다. 이번 사업에는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녹색펀드, 한국해양진흥공사 등이 투자자로 참여해 금융 구조를 뒷받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선박·플랜트 도급을 넘어 투자, 금융, 시공이 결합된 해외 인프라 수주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내 파급 효과도 적지 않다. FLNG는 LNG선보다 부가가치가 높고, 선체·상부 플랜트·전장·배관·기자재 등 협력업체 참여 범위가 넓다. 설비 제작과 건조 상당 부분이 국내 조선소와 기자재 공급망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조선업 호황의 온기가 중소·중견 협력사로 확산될 수 있다. 거제 등 조선업 밀집 지역의 일감 안정에도 긍정적이다.
증권가에서는 후속 수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수주로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 수주잔고로 FLNG 4기를 확보하게 됐다"며 "델핀 프로젝트 전체 장기 구매계약자가 대부분 확보된 상태에서 1호기 금융 조건이 맞춰진 만큼 하반기 델핀 2호기 발주도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강 연구원은 또 "하반기 델핀 2호기와 캐나다 웨스턴 Ksi Lisims 1호기까지 더해지면 삼성중공업은 FLNG 6기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델핀 1호기의 원화 공사비가 기존 추정치를 웃돈 점을 반영해 2027년과 2028년 영업이익 추정치를 각각 3.6%, 1.4% 상향했다.
삼성중공업의 올해 누적 수주는 총 28척, 83억달러로 연간 목표 139억달러의 60% 수준이다. LNG 운반선 중심의 고부가 선박 발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FLNG까지 수주 축으로 부상하면서 실적 개선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LNG 수출 확대, 유럽·아시아의 에너지 안보 수요,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가 맞물리며 글로벌 LNG 투자 사이클이 다시 강해지고 있다"며 "델핀 1호기는 미국 첫 FLNG라는 상징성과 함께 한국 조선업이 해상 LNG 생산설비 시장을 선점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ggg@fnnews.com 강구귀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