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선관위

파이낸셜뉴스       2026.06.04 18:40   수정 : 2026.06.04 18:40기사원문

명명백백 부실선거였다. 6·3 지방선거를 사전투표부터 본투표, 개표 이후 현장까지 지켜보며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복잡함이었다.

투표의 무게를 새삼 느낀 선거였다.

사전투표 첫날 새벽부터 줄을 선 시민들이 있었고, 본투표일에는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이 언덕 위 초등학교 투표소까지 힘겹게 올라왔다. 짧은 오르막을 두 번씩 쉬어가며 몸을 가누는 모습은 오래 남았다.

그들의 한 표는 모두 같다. 투표의 평등성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잠실 투표소 앞에서 멈춰 선 투표함을 보며 그 당연한 명제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약 2000명분의 투표지가 담긴 투표함 2개는 투표 다음 날 오후까지 개표소로 옮겨지지 못했다.

현장은 험악했다. 시위대는 "개표 중단" "선거 무효"를 외쳤다. 일부는 선거 원천 무효를 넘어 외부세력 개입 의혹까지 제기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를 일부 시위대의 소란으로만 넘길 수 없다.

출발점은 선관위의 명백한 관리 부실이었다. 투표용지가 부족했고, 대기표가 생겼으며, 투표 시간이 연장됐다. 그리고 개표와 함께 투표도 진행되는 아이러니도 일어났다.

선관위는 "오해 말라"고 말하는 기관이 아니다. 오해가 생길 틈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기관이다. 투표용지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투표함은 당연히 개표소로 가야 하며, 그 과정은 당연히 의심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선관위는 기본적인 신뢰의 전제를 지키지 못했다.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의혹이 거리에서 넘치도록 힘을 준 건 선관위다. 투표용지 부족과 전국에서 벌어진 투표소 관리 미비는 단순한 행정 착오로 넘기기 어렵다.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관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번 선거를 지켜보며 내 한 표의 가치가 무엇인지 크게 느꼈다. 동시에 그 가치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도 봤다. 지팡이를 짚고 언덕을 오른 유권자의 한 표도, 투표소 앞에서 항의하는 유권자의 한 표도 제도 안에서는 같다. 한 표의 평등성을 지키는 것은 유권자의 선의만이 아니다.

이번 사태로 추락한 선관위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가 해야 할 일은 의혹을 단순히 일축하는 것이 아니다. 투표용지 부족 경위, 현장 대응의 적정성을 투명하게 밝히는 일이다. 신뢰를 되돌리는 출발점은 기본을 다시 세우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425_sama@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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