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은 왜 '슈퍼갑'이 됐나…AI 판을 바꾼 20년

연합뉴스       2026.06.06 06:33   수정 : 2026.06.06 06:33기사원문
2006년 쿠다 출시…400만 개발자 묶은 생태계 전략 HBM·데이터센터·AI팩토리까지 AI 공급망 장악

[AI돋보기] 젠슨 황은 왜 '슈퍼갑'이 됐나…AI 판을 바꾼 20년

2006년 쿠다 출시…400만 개발자 묶은 생태계 전략

HBM·데이터센터·AI팩토리까지 AI 공급망 장악

젠슨 황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이번 주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나기 위해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엔비디아는 게임용 그래픽칩 업체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현재 글로벌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구축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기술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생성형 AI 열풍의 출발은 2022년 오픈AI의 챗GPT 공개가 꼽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AI 연산 환경을 구축해 온 젠슨 황 CEO와 엔비디아의 역할에도 주목한다.

황 CEO가 2006년 내놓은 쿠다(CUDA)는 오늘날 AI 생태계를 만든 기반 기술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 게임용 칩 조연에서 'AI 생태계' 주연으로

1993년 문을 연 엔비디아의 본업은 PC용 3D 그래픽과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 설계였다. 당시 PC 산업은 중앙처리장치(CPU)를 장악한 인텔이 주도했고 GPU는 그저 게임 화면을 매끄럽게 처리해 주는 보조 하드웨어 칩셋 취급을 받았다.

이처럼 황 CEO가 창업 초기부터 AI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대규모 병렬 연산에 특화된 GPU의 구조적 잠재력을 남들보다 일찍 간파했다.

2006년 G80(지포스 8800) 아키텍처와 함께 공개한 쿠다가 그 결과물이다. GPU를 단순 그래픽 처리를 넘어 복잡한 과학 연산이나 머신러닝 영역까지 끌어들인 획기적인 프로그래밍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젠슨 황과 엔비디아 (출처=연합뉴스)


물론 출시 초기에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딥러닝'이란 단어 자체가 생소하던 시기에 막대한 연구개발(R&D) 자금을 쏟아붓는 황 CEO와 엔비디아를 이해하는 투자자는 드물었다. 더구나 2008년 금융 위기와 PC 수요 부진마저 겹치며 주가가 급락하자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월스트리트는 엔비디아에 대해 회의적인 매도 보고서를 쏟아냈다.

엔비디아 내부에서도 쿠다 투자는 오랫동안 수익이 보이지 않는 사업이었다. 황 CEO는 여러 차례 실적 압박을 받았지만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결국 회사를 지배할 것"이라는 판단을 유지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GPU 가속 컴퓨팅과 쿠다 생태계에 대규모 투자를 하던 시기에 회의론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황 CEO는 하드웨어 성능만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고 보고 소프트웨어와 개발자 생태계까지 묶어 플랫폼을 선점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이게 현재의 독보적인 위치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 2012년 알렉스넷…딥러닝 시대의 분기점

IT 업계와 학계가 말하는 딥러닝의 실질적 기점은 2012년이다.

그해 열린 세계 최대 이미지 인식 경진대회(ILSVRC)에서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이 내놓은 '알렉스넷'(AlexNet)이 기존 모델들을 압도적인 성능으로 따돌리며 우승했다.

1억 개가 넘는 파라미터를 지닌 무거운 딥러닝 모델이 불과 메모리 3GB 사양의 엔비디아 지포스 GTX 580 GPU 두 대에서 5∼6일간 학습됐다는 점이 큰 주목을 받았다.

엔비디아 AI 콘퍼런스 (출처=연합뉴스)


당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GPU가 딥러닝 연구를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했다. 이후 구글과 메타, 오픈AI로 이어지는 주요 AI 연구 조직들이 GPU 기반 학습 체계를 채택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알렉스넷 개발을 주도했던 핵심 연구자 일리야 수츠케버는 훗날 오픈AI에 합류해 GPT 계열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이후 400만 명에 달하는 전 세계 AI 연구진은 엔비디아 플랫폼을 애용하기 시작했다.

엔비디아는 쿠다를 연구자와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이로 인해 연구자와 개발자 상당수가 엔비디아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생태계 효과가 형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제는 대학원과 연구소의 AI 전공자들이 입문 단계부터 쿠다를 표준 도구로 쓰면서 경쟁사의 칩으로 넘어갈 때 치러야 할 전환 비용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됐다.

국내 AI 스타트업의 한 임원은 "경쟁사의 신경망처리장치(NPU)나 전용 가속기가 더 싸거나 성능이 좋더라도 이미 전 세계 표준처럼 굳어진 쿠다·엔비디아 생태계를 벗어나는 데 따르는 전환 비용과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 빅테크의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 엔비디아

현재 글로벌 시장은 오픈AI의 'GPT', 구글의 '제미나이' 등 LLM을 둘러싼 패권 다툼이 거세다.

중요한 점은 이들 모두가 모델 학습과 추론을 위한 데이터센터 핵심 인프라로 엔비디아의 가속기를 쓴다는 점이다. 각종 시장조사업체 분석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점유율은 80%를 웃돌아 '슈퍼 갑'인 기업이다.

엔비디아에 종속되는 상황을 우려한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들이 최근 자체 AI 반도체 개발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지만 엔비디아의 공급망 독점을 흔들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엔비디아는 H100과 H200에 이어 블랙웰까지 출시하며 성능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칩 하나가 아니라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까지 묶은 'AI 팩토리' 전략도 빛을 발하고 있다.

손 잡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출처=연합뉴스)


이러한 엔비디아의 독점은 국내 반도체·IT 생태계와도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SK하이닉스[000660]와 삼성전자[005930]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를 굳혔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LG 역시 '소버린 AI' 구축과 데이터센터 고도화를 위해 엔비디아와의 인프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젠슨 황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어느 나라도 모든 데이터를 외부에 맡기고 지능을 100% 수입하는 방식으로 갈 수는 없다"면서 국가 단위의 독자적 AI 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황 CEO의 방한을 AI 인프라 공급망 협력 차원에서 보고 있다.

엔비디아는 HBM 등 공급망 안정화가 중요하고, 국내 기업들은 AI 인프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엔비디아와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지점이 바로 이번 방한의 핵심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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