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 살릴 골든타임

파이낸셜뉴스       2026.06.10 19:06   수정 : 2026.06.10 19:06기사원문

장자(莊子)가 지역 토호인 감하후를 찾아갔다. 밥을 굶고 있으니 곡식을 꿔달라고 요청했다. 감하후는 "나중에 세금을 받아 선생에게 300금을 빌려드리면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기분이 상한 장자는 "제가 어제 이리로 올 때 나를 부르는 자가 있었다"며 운을 뗐다. 수레바퀴 자국 속 고인 물에 빠져 있던 붕어가 자신을 다급하게 불렀다는 것이다.

붕어는 장자에게 "나는 동해 파도에서 튕겨져 나온 바다신의 신하"라며 "물 한 바가지만 부어 나를 살려달라"고 빌었다. 장자는 "내가 오나라와 초나라 왕을 만나러 가는데, 그때 가서 서쪽 강의 물을 끌어다 댈 테니 그러면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붕어는 이 말을 듣고 발끈 성을 냈다. "나는 물 한 바가지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데, 당신이 이처럼 말하니 차라리 일찌감치 나를 건어물 가게에서 찾는 편이 더 나을 것이오." 당장의 생존 위기에 처했던 장자에게 지역 토호가 나중에 돈을 주겠다고 핑계를 대자 장자가 해준 말이다. 동양 고전 '장자'의 '외물'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우화는 수레바퀴 자국 속의 붕어, 즉 '학철부어( )'라는 사자성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 케이블TV와 IPTV 등 유료방송 업계가 처한 상황이 여기에 딱 맞는 형국이다. 적절하고 시급한 도움이 필요한 때에 정부와 정치권에선 시간이 걸리는 거대정책 논의만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우린 다 응급환자인데 의사들이 몇년째 치료방법만 고민하고 있다"면서 "업계에서 누구 하나 쓰러지는 걸 봐야 정부가 관심을 가질 것 같다"고 토로했다.

케이블TV 업계의 영업이익은 바닥 상태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 따르면 케이블TV 전체 영업이익은 2017년 3486억원에서 2024년 148억원으로 95.8% 줄었다. 케이블TV 전체 제작비는 1258억원으로 제작비가 영업이익의 8.5배 수준이다.

영업이익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기형적인 비용구조와 역차별이다. 유료방송사들은 가입자와 매출이 줄어든 상태에서 콘텐츠사업자(CP)들과의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LG헬로비전은 스포츠 전문채널 '스포티비'(SPOTV) 송출을 7월부터 중단키로 했다. 양측은 방송사 매출과 해당 채널의 시청률 기여도 등에 따른 대가 협상을 해온 끝에 서로 양보하지 못하고 송출중단에 이르게 됐다. 이미 수년 전부터 발생했던 케이블TV(SO)와 방송채널사업자(PP)의 갈등이 현실화된 모양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의 '기울어진 운동장'도 꾸준히 문제로 거론된다. 매출 대비 콘텐츠 비용의 비중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치솟았지만 규제 형평성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유료방송사들은 매년 의무적으로 막대한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을 내며 공적 재원을 분담하고 있지만, 미디어 시장의 포식자가 된 OTT는 방발기금 징수 대상에서 빠져 있다. 여기에 유료방송을 옥죄고 있는 낡은 광고 규제, 결합상품 규제, 꽁꽁 묶인 요금제 규제 등은 수년째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적자 상태에서도 방발기금을 꼬박꼬박 내는 현재 구조로는 케이블TV사업이 오래가기는 어렵다. 경쟁이 어려우면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도 합당해 보일 수 있다. 다만 지역 정보전달의 공공재 역할까지 하는 케이블TV업계로선 억울함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주무기관인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제도 전반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방발기금 체계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특정 업계만 방발기금을 인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올해에도 방발기금 감면 자체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서 이미 많은 플레이어들이 사라진 후 시스템이 개편되면 그 개편 효과는 얼마나 될지 주무기관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완벽한 대책'이 이상적이겠지만, 죽어가는 업계 입장에선 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 더 필요한 법이다.

ksh@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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