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울역, 다시 '철도의 심장'으로 뛴다
파이낸셜뉴스
2026.06.10 20:15
수정 : 2026.06.10 20:15기사원문
10일 오전 서울 중구 '문화역 서울284'에서 열린 철도문화전 '서울역 2026 : 다시 뛰는 심장' 개막 기념식 현장은 과거의 서울역을 추억하는 자리이자, 미래 철도 플랫폼으로서 옛 서울역의 가능성을 미리 살펴보는 자리였다.
중앙홀을 가득 채운 크리스탈 설치작품과 증기기관차 모형, 대합실에 펼쳐진 철도 노선의 기록,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관람객을 하나의 긴 기차 여행 속으로 이끌었다.
이번 전시에서 옛 서울역은 단순한 근대 건축물이 아니다. 고향을 떠나는 사람과 서울에 도착한 사람,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간이 겹쳐진 장소이자 한국 철도 산업의 성장을 품은 공간으로 다시 읽힌다. 1925년 경성역으로 출발해 전국 철도의 중심이 됐던 이곳은 2004년 고속철도 개통 이후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여 왔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철도역'이라는 본래의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낸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이날 옛 서울역 문화역서울284 중앙홀에서 철도문화전 '서울역 2026 : 다시 뛰는 심장' 개막 기념식을 열었다. 전시는 오는 11일부터 8월 17일까지 이어지며 관람료는 무료다. 철도역사로서 기능 회복을 앞둔 옛 서울역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한국 철도가 축적해온 역사와 산업, 문화적 가치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내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 제목 '다시 뛰는 심장'에는 한 세기 가까이 대한민국 철도의 관문으로 기능했던 서울역을 과거의 유산에 머물게 하지 않고, 미래 철도문화 플랫폼으로 되살리겠다는 뜻이 담겼다. 옛 서울역은 오랫동안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자 서울의 첫인상을 만드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떠나고 돌아왔으며, 배웅과 마중, 기다림과 출발의 감정을 남겼다. 전시는 바로 그 축적된 시간을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호출한다.
이번 철도문화전은 옛 서울역 1·2층과 부속 공간, 승강장까지 활용해 총 13개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대합실과 역장실이 자리했던 1층, 대식당과 소식당·회의실이 있던 2층, 열차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동선이 하나의 서사로 연결된다. 관람객은 건물 안을 이동하며 역에 들어서고, 기다리고, 이동을 준비하고, 승차한 뒤 도착하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전시 구조 자체가 하나의 철도 여정인 셈이다.
전시 총괄은 공예트렌드페어와 문화체육관광부 한류연계 해외전시 '봄을 오르다' 파리 메종오브제 전시 등을 맡았던 김미연 예술감독이 맡았다. 고희승, 김다정, 김도현, 김보민, 김선희, 김형술, 레오킴, 문은준, 박선기, 이갑철, 오영, 이지원, 정상현, 조한진, 홍인숙 등 1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철도를 단순한 운송수단이나 산업 유산으로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기억, 이동, 기술, 감각이 만나는 문화적 장치로 확장한다.
전시는 '진입', '대기', '이동', '승차', '도착, 또 다른 시작'이라는 다섯 단계로 짜였다. 입구에서 과거 실제 사용됐던 승차권에 일부기, 즉 날짜 도장을 찍으며 여정이 시작된다. 열차에 오르기 전 표를 확인하던 행위가 전시 관람의 출발점이 되는 구성이다. 관람객은 표를 손에 쥔 채 중앙홀과 대합실, 수하물도장, 귀빈실, 역장실, 승강장, 대식당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따라간다.
중앙홀에 들어서면 박선기 작가의 대형 설치작품 'An Aggregation 2026-Continuum'이 먼저 시선을 끈다. 약 1만 개의 크리스탈 볼이 빛을 반사하며 천장과 기둥, 관람객의 움직임을 함께 끌어들인다. 코레일 블루에서 투명으로 이어지는 색의 흐름은 지나온 철도의 시간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서울역의 건축적 웅장함과 빛의 움직임이 맞물리며 중앙홀은 다시 역동적인 출발의 장소가 된다.
같은 공간에는 조한진 감독의 미디어 작업 'Flow of Railroad'와 홍인숙 작가의 '미디어텍스트-서울역'도 함께 펼쳐진다. 곡선형 LED는 선로처럼 공간을 가로지르며 철도 네트워크의 흐름과 에너지를 시각화한다. 여기에 1955년 해방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시범 운행됐던 국산 증기기관차 '파시 1-4288' 축소 모형이 놓여 근대 철도기술의 장면을 현재의 공간으로 불러온다.
3등대합실은 '기다림'의 감정을 담아낸다. 철도 연혁과 전국 27개 노선의 개통 역사를 시각화한 지도, 시대별 철도차량 모형이 전시돼 한국 철도가 어떻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해왔는지 보여준다. 사진작가 이갑철은 철도역이 자리한 지역들을 직접 걸으며 기록한 흑백사진을 선보인다. 그 사진 위에 오영 작가의 글이 더해지며 대합실은 단순한 통과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과 사연이 머문 장소로 읽힌다.
1·2등대합실은 미래 철도기술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KTX-산천, KTX-이음, KTX-청룡으로 이어지는 고속철도의 발전 과정과 수소 모빌리티 기술이 소개된다. 관람객은 VR 장비를 통해 수소전기트램의 내·외부와 주행 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 과거 1·2등석 승객들이 열차를 기다리던 공간에서 미래 교통수단을 마주하는 구성은 옛 서울역이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전시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부인대합실에서는 이지원 작가가 열차운행도표를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했다. 열차운행도표는 시간과 역을 축으로 열차의 출발과 도착, 교행과 대피를 설계한 철도 운행의 핵심 도면이다. 작가는 이 보이지 않는 질서를 관람객의 움직임과 머무름이 반영되는 인터랙티브 구조로 바꿨다. 선들이 겹치고 변화하는 화면은 철도가 만들어온 이동의 리듬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수하물도장으로 쓰였던 공간은 '이동의 이면'을 조명한다. 플로리스트이자 설치미술가인 레오킴은 호남평야의 흙과 자연 요소를 가져와 물류의 흐름을 생명의 순환으로 풀어냈다. 전시에 쓰인 흙과 식재는 전시 종료 후 본래 있던 장소로 돌아간다. 짐이 오가던 공간에서 자연의 이동과 반환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철도 물류의 흐름을 생태적 감각으로 확장한다.
정상현 작가는 오랜 세월 대중의 삶과 함께한 구형 디젤기관차를 정교한 스케일 모형으로 재현해 철도기술과 기억의 결을 동시에 보여준다. 승객의 자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관차의 세부 구조를 세밀하게 드러내며, 열차가 단지 이동수단이 아니라 시대의 풍경을 실어 나른 존재였음을 환기한다.
귀빈예비실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이 달리는 상영관으로 바뀌었다. 문은준 감독은 철도박물관이 개최해온 어린이 기차그리기대회 수상작을 영상으로 되살렸다. 종이 위에 멈춰 있던 기차들은 화면 안에서 다시 움직이고, 김보민 작가의 회화 작업은 어린이의 상상과 옛 공간의 기억을 겹쳐낸다. 철도의 미래가 기술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상상력과도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귀빈실과 역장실은 철도 운영의 기록을 보여주는 구간이다. 귀빈실에는 승차권, 검표가위, 시각표, 사보, 차내지 등 철도와 함께 축적된 자료들이 라이브러리 형식으로 놓였다. 인쇄물과 그래픽, 광고와 사진 등은 시대별 철도 문화의 표정을 보여준다. 철도가 사람과 물자를 옮긴 수단에 그치지 않고 생활문화와 시각문화를 함께 만들어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역장실은 1990년대 말 업무 환경을 재현했다. 실제 사용됐던 PC와 집기, 업무 자료 등을 통해 열차 운행과 인력 관리, 시설 통제, 긴급 대응을 총괄했던 철도인의 책임감을 엿볼 수 있다. 역장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부스도 마련돼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과거 현장 운영의 긴장감과 책임의 무게가 전시적 체험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전시의 마지막 흐름은 2층 대식당과 소식당, 회의실 복도로 이어진다. 대식당은 1925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 '그릴'의 기억을 되살린 공간이다. 철도박물관이 소장한 테이블과 의자, 은식기와 식기류를 중심으로 근대적 식문화와 사교의 장면을 재현했다. 열차를 기다리거나 도착한 사람들이 식탁을 사이에 두고 시간을 보냈던 풍경이 다시 살아난다.
김도현 감독의 영상작품 'Leave me alone'은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었던 한 인물의 마음을 서울역의 빛과 소리, 멈춘 공간 안에 담아낸다. 준비실에서는 열차 판매원과 차내 식문화 자료를 바탕으로 한 아카이브를 만날 수 있다. 과거 열차 안에서 간식과 음료를 판매하던 장면, 이동 중 형성된 음식 경험은 철도여행이 남긴 생활문화의 또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소식당에서는 고희승 작가가 철도 안전장치인 통표폐색기를 보관과 배치의 미학으로 재해석했다. 통표를 배치하는 행위는 안전을 위한 약속이자 다음 여정으로 넘어가는 의식처럼 제시된다. 회의실 복도에서는 김선희 작가의 'Wave of Light'가 프리즘 빛의 확장을 통해 미래로 열린 철도의 가능성을 표현한다. 도착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전시의 주제가 이곳에서 마무리된다.
연계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홍인숙 작가의 작품을 완성하는 아트 스탬프 투어는 엽서를 완성한 관람객에게 하루 100개 한정으로 실제 사용됐던 승차권을 증정한다. 철도박물관장과 철도산업 종사자가 함께하는 '레일로드 토크', 큐레이터와 작가, 인플루언서가 참여하는 스페셜 도슨트 투어, 코레일유통의 큐브형 기차 블록 조립 체험도 운영된다. 춘천, 영주, 대전 등 철도로 연결된 지역의 로컬 브랜드와 식문화를 소개하는 '오늘의 행선지' 프로그램은 철도가 사람뿐 아니라 지역의 문화까지 실어 날랐다는 점을 환기한다.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하지만 전시 마지막 날인 8월 17일은 정상 운영한다. 매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오후 7시까지 연장 개방한다.
김태승 코레일 사장은 "이번 철도문화전은 옛 서울역에 깃든 국민의 추억을 다시 불러오고, 미래 철도역사로 나아갈 서울역의 가능성을 함께 상상하는 자리"라며 "과거와 현재, 미래가 만나는 옛 서울역의 특별한 여정에 많은 국민께서 함께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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