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탄소 인간'인가"...신익수 '호모 카르보'

파이낸셜뉴스       2026.06.11 18:45   수정 : 2026.06.11 18:4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 "지금 내 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기후 위기를 다룬 책은 많다.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친환경 기술 같은 말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신익수 작가의 저서 '호모 카르보'는 조금 다른 질문에서 출발한다.

기후 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로 다루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류 문명이 무엇을 태우며 성장해왔는지를 되짚는다. 지금의 편리와 번영이 무엇 위에 세워졌는지, 그 대가가 어디로 돌아오고 있는지를 파고드는 책이다. '호모 카르보'를 펴낸 신 작가에게 책의 출발점과 핵심 문제의식을 들었다.

그는 전기화학·분석화학 분야를 연구해온 화학자이자 대학 교수다. 현재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치며 대학원과 기업 연구소와 함께 전기화학 반응, 질병 진단, 이차전지 등을 연구하고 있다. 오랫동안 물질이 전자를 주고받는 과정, 곧 에너지가 생성되고 이동하며 저장되는 원리를 연구해온 그는, 그 질문이 결국 인간 문명 전체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호모 카르보'는 그렇게 과학자의 연구실에서 출발해 문명 전체로 시야를 넓힌 결과물이다.

그는 '호모 카르보'를 "인류 문명을 탄소라는 렌즈로 다시 읽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탄소가 어떻게 문명을 성장시켰고, 그 문명이 왜 지금 한계에 이르렀는지를 과학적 근거와 데이터로 추적했다는 설명이다. 감정적 호소나 선언보다 축적된 연구와 수치로 현실을 읽어내려 했다는 점에서 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신 작가는 "제 주장이 아니라 전 세계 학술 연구의 데이터가 스스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도록 했다"고 말했다.

집필의 출발점은 2015년 파리협정이었다. 당시 국제사회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많은 이들에게는 정치적 선언처럼 보였지만, 열역학을 가르치는 과학자에게는 계산해볼 수 있는 수치였다. 신 작가는 직접 탄소 예산과 연간 배출량,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대입해 검토했고, 그 결과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짧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날 새벽 계산기 앞에서 확인한 것은 시한부 판정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10년 동안 기후 총회 자료와 국제 보도, 학술 논문을 추적하며 기록을 쌓았고, 그 축적이 '호모 카르보'로 이어졌다.

책 제목은 그 문제의식을 압축한다. 우리는 인간을 흔히 '호모 사피엔스', 곧 생각하는 인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신 작가는 이 이름이 오늘의 인간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본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결국 탄소를 태워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나무를 태우고, 석탄을 태우고, 석유를 태우며 산업과 도시, 교통과 통신, 식량 체계가 만들어졌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탄소 인간'이 더 정직한 이름"이라고 말했다. 탄소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지탱할 수 없는 존재가 오늘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류가 왜 '탄소와 함께 살아온 존재'인지를 설명하면서 식량 시스템도 함께 짚었다. 비료 생산, 대규모 농업, 물류와 소비 구조 모두가 탄소 기반 에너지와 깊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탄소는 문명의 바깥에 있는 자원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생활을 떠받쳐온 구조 자체에 가깝다는 진단이다.

그가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던 것은 기후 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 작가는 "이산화탄소가 우리 세포를 지금 이 순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핵심으로 꼽았다. 북극의 빙하나 해수면 상승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 몸 안에서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와 기온의 변화가 인간의 세포, 미토콘드리아, 노화의 속도와 연결된다고 볼 때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호모 카르보'가 기후 위기를 독자의 몸 가까이에서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지금의 기후 위기를 도덕적 실패나 정책 미비만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더 근본적으로는 문명의 구조 자체가 만든 결과라고 봤다. 자연은 수억 년에 걸쳐 탄소를 땅속에 저장해왔지만, 인류는 불과 200년 만에 그것을 대기 중으로 되돌려보냈다.

한 번 흩어진 이산화탄소가 저절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의 위기는 "자연의 연체 청구서"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열역학의 문제"라고 했다. 가치 판단 이전에, 자연의 법칙 자체가 이미 인간 문명에 계산서를 내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호모 카르보'는 기술 낙관론에도 쉽게 기대지 않는다. 신 작가는 분석화학이 숫자의 출처를 끝까지 확인하는 태도를 길러줬고, 전기화학은 에너지의 흐름과 한계를 이해하게 했다고 말했다.

센서, 진단 기술, 배터리 연구를 해온 경험은 태양광과 풍력, 전기차와 저장 기술을 둘러싼 기대를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기술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기술이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줄 것이라는 낙관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효율과 저장, 시스템 전체의 비용과 한계를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자로서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을 쓰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이었을까. 신 작가는 "사실 이외의 것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라고 답했다. 기후 문제는 언제든 이념과 진영의 언어로 흐르기 쉽지만, 자연 법칙은 어느 편의 논리도 봐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어렵고 깊은 내용을 쉽게 쓰는 것과, 틀린 내용을 쉽게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고 말했다. 가능한 한 원문을 직접 확인하고 모든 수치를 검증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신 작가는 독자들이 책을 덮은 뒤 단 한 가지 질문만은 스스로에게 남겨두길 바랐다. "지금 내 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기후 위기를 먼 미래의 추상적 위협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일상에 닿아 있는 현실로 받아들이길 바란다는 뜻이다.

신 작가는 이미 다음 작업도 구상 중이다. 열역학 법칙으로 문명의 흥망성쇠를 해석하는 책이다. 왜 어떤 문명은 오래 지속되고, 어떤 문명은 급격히 무너지는지, 그 과정을 에너지와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다시 풀어보겠다는 계획이다.


'호모 카르보'는 기후 위기를 설명하는 또 한 권의 시사서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태워 여기까지 왔는지, 지금의 번영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그 대가를 어떤 방식으로 치르고 있는지를 끝까지 추적한다. 신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인간 문명을 다시 묻는다. 우리는 여전히 '생각하는 인간'인가. 아니면 탄소를 태워 오늘에 이른 존재라는 사실부터 직시해야 할 때인가.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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