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의 또다른 족쇄

파이낸셜뉴스       2026.06.11 19:26   수정 : 2026.06.11 19:31기사원문

"이제는 정말 이사를 가고 싶은데 집이 팔리질 않아요. 부동산에서도 일단 월세를 놓고 기다리자고 하네요."

2023년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A씨는 요즘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보증금을 모두 날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직접 낙찰받았지만, 정작 그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A씨가 거주 중인 곳은 서울 금천구의 한 빌라다.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거래가 쉽지 않은 데다 전세사기 사태 이후 비아파트 시장 침체까지 겹치며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피해를 막기 위해 선택한 셀프낙찰이 또 다른 족쇄가 된 셈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사이에서 셀프낙찰은 대표적인 피해구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우선매수권을 활용해 피해자가 직접 경매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실제 피해자 커뮤니티에서는 셀프낙찰 경험담과 방법을 공유하는 게시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전세사기는 대부분 전셋값이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전세'에서 발생하는 만큼 낙찰 이후 매각은 또 다른 문제다. 특히 빌라와 근린생활시설 등 비아파트는 전세사기 사태 이후 수요가 크게 줄어 피해주택 상당수가 여전히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그사이 세제 지원 시계는 돌아가고 있다. 현행법상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주택을 취득하면 취득세와 등록면허세를 감면받을 수 있지만 관련 특례는 올해 말 종료된다. 집은 팔리지 않았는데 지원은 끝나는 상황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전세사기 문제는 흔히 피해자 구제라는 관점에서만 논의된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집을 팔지 못해 발이 묶여 있는 이유는 결국 비아파트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셀프낙찰은 피해를 줄이는 수단일 뿐 출구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진 지 4년. 이제는 셀프낙찰 이후도 들여다봐야 할 때다.
최근 정부는 비아파트 공급 확대와 규제완화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비아파트 시장이 활력을 되찾지 못한다면 피해자들의 고통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집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주택을 정리하고 다음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전세사기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피해자를 집주인으로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을 떠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act@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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