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도마 오른 ‘공공기관 운영법’] 끝·(4) 실속 없는 ’경영평가’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공공기관이 한해 경영을 공개하고 정부의 평가를 받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실효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매년 3월이 되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 교수, 회계사 등으로 구성된 공공기관 경영 평가단으로부터 한해 경영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막고 경영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목적이다. 하지만 경영평가 효과에 대한 기관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방만 경영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관의 자율성을 해치고 평가 지표에 짜맞춘 듯 따라가는 ‘눈치 보기’ 경영만 조장한다는 지적이다.

■너무 많은 평가에 눈치만

지난 2004년 4월 공운법의 전신인 정부산하기관 관리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경영평가제도가 정부산하기관까지 확대 시행됐다.

이후 2007년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과 정부산하기관 관리 기본법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로 흡수 통합되면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이 경영평가를 받게 됐다.

경영평가 지표는 평가대상연도 전년도 말 결정된다. 평가대상연도가 끝나고 기관이 경영실적 보고서를 제출하면 교수, 회계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경영평가단에서 평가지표에 따라 각 기관의 종합경영 부문, 주요사업 부문, 경영관리 부문에 대한 종합 경영실적을 평가한다.

매년 6월 20일 최종 마무리되는 이 평가 결과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되며 결과에 따라 포상과 경고가 내려진다.

국내 한 공공기관의 2007년 평가지표를 살펴보면 종합경영 부문 35점, 주요사업 부문 35점, 경영관리부문 30점 등 총 100점 만점이다. 종합경영부문에는 경영진의 성과, 감사기능 성과, 경영혁신 성과 등이 매겨지고 경영관리 부문은 조직과 인사, 보수 합리성, 재무·예산관리 합리성 등 38개 부문을 구체적으로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은 이 평가가 공공기관의 경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데 동조하지 않는다.

공공기관 한 고위 관계자는 “준정부기관과 공기업은 경영평가 외에도 감사원 감사와 국정 감사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평가에 소모되는 인력과 시간이 너무 많다”면서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가려면 평가기준에 맞춰서 경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영 혁신이나 새로운 사업 추진은 시도조차 안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사업 추진에 걸림돌 될수도

공운법은 공공기관의 예산 편성과 집행에 깊숙이 관여하기 때문에 기관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예산통제가 심해지면서 정작 필요한 사업추진에 걸림돌이 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지난달 29일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한국거래소가 가장 걱정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소는 현재 해외에 시스템 수출을 적극 진행 중이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앞으로 해외 평가기관, 금융기관과 해외지수 사용권 등 상품개발을 위한 다양한 계약을 맺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정부 통제 하에 놓이게 되면 이러한 사업 추진에 아무래도 타격을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한 관계자는 “정부는 각 기관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중요성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국가 경제에 중요한 사업마저 진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기관 사업 추진 예산에 대한 통제는 정부가 특히 신중을 기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공개한 2009년 공공기관 예산집행지침에 따르면 “이미 정해진 예산에 인건비가 반영되지 않은 기구 및 인력증원은 최대한 억제하고 증원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소요되는 인건비는 예산상 인건비 및 급여성 복리후생비에서 충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여타 항목으로부터의 전용은 최소화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별한 사업 추진을 위한 인원 증원과 예산 편성에 제약이 되는 부분이다.

또 “부서별 또는 개인별 예산의 절감 또는 수입의 초과달성 실적을 내부평가에 반영할 수 있다. 지출절약 및 수입증대에 기여한 임직원의 성과 유인을 강화하기 위해 예산성과급 제도를 도입한다”고 돼 있어 공공기관 임직원의 소극적 행보를 조장하고 있다.

공공기관 모 임원은 “초과 예산 집행으로 수익을 얻는 모험보다는 사업을 축소해 예산을 줄이는 게 훨씬 쉽다”며 공공기관 예산지침의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올해 예산편성 기본 방향에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 공공부문이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인건비와 경비 등 지출을 최대한 억제할 것’을 권하고 있어 상황은 악화될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자 공공기관에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최근 자진 사임한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이임사에서 “연구원을 싱크탱크(두뇌)가 아니라 마우스탱크(입) 정도로 생각하는 정부에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구원의 역할과 연구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연구원이 이럴진대 공공기관은 어떨지 추측하기 어렵지 않은 대목이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노현섭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