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담합’ 엄벌하되 행정지도 없애야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을 통해 소주 출고가격을 올린 11개 소주업체에 시정명령과 함께 27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부과한 과징금은 공정위가 당초 심사보고서에서 산정했던 2263억원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솜방망이 처벌이다. 산정액과 실제 과징금이 큰 차이를 보인 것은 담합 근절에 의욕이 앞선 공정위가 무리한 실사와 잣대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소주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대한 공감대를 미리 형성한 후 선도업체가 먼저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 업체들이 같은 수준으로 인상하는 식으로 담합했다”고 밝혔다. 소주업체 사장단 모임인 ‘천우회’가 가격인상 여부, 인상 시기, 인상률 등에 대한 정보를 미리 교환, 협의한 만큼 담합행위가 명백하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주세법에 근거한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따라 가격이 조정됐더라도 소주업체들이 사전협의를 한 것은 담합으로 본 것이다.
정호열 공정위 위원장은 “지난 10년간 소주가격 추이를 보면 인상 일과 인상률 심지어 도매 가격도 같다. 소주업체들은 가격인상을 위해 공동의 사전적 협의를 한 후 국세청을 이용한 것”이라며 담합을 행정지도와는 별개 문제로 규정했다. 정부기관의 행정지도를 빌미로 이뤄지는 담합도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소주 가격을 사실상 국세청과 사전 협의해 결정한 소주업체들은 공정위 결정이 억울할 것이다. 공정위 결정이 나오자 담합한 적이 없어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 심결 과정에 있는 항공사, 주유소, 4대강 턴키입찰 등의 관련업체들도 비슷한 이유로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해당 업계의 가격 결정에 간섭하는 한 담합 결정에 대한 합리성과 공정성 논란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어떤 명목으로도 담합은 용인할 수 없다. 담합은 서민경제 안정을 해치는 경우가 많아 법대로 엄벌, 근절해야 한다. 하지만 국세청의 행정지도와 같은 구태의연한 규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담합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서민생활 및 물가안정을 위한 조치라도 가격 조정에 정부 개입은 옳지 않다. 시장원리에 맡기는 게 원칙이다. 이는 곧 기업 경쟁력 강화와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