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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약가 리베이트 쌍벌죄’인가] (상) 허울뿐인 금지령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약가 리베이트를 둘러싼 쌍벌죄 논란이 갈수록 뜨겁다. 쌍벌죄란 의약품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주는 쪽(제약사)과 받는 쪽(병의원·약국) 모두를 처벌해야 한다는 제도다.

이치상 시행이 마땅한 제도지만 관련 법안은 1년이 넘도록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의 문턱도 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제약업계와 보건당국은 쌍벌죄 도입이 시급하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쌍벌죄를 원하는 그들의 속내는 전혀 다르다. 쌍벌죄는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 이 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국내 한 제약사 영업사원 A씨는 최근 회사 임원 앞으로 “리베이트 비용을 정산해 주지 않으면 리베이트 제공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 메일을 보냈다. 자신이 대출받은 돈으로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준 뒤 회사 측에 정산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의 강도높은 리베이트 근절 정책 시행 이후 회사는 병의원 금품 제공은 물론 법인 카드 사용도 금지했다. 하지만 A씨는 “회사가 리베이트 금지를 지시했지만 이를 요구하는 병원과 매출 목표 달성 압박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려 리베이트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제약업계에서 10년을 넘게 일한 결과는 ‘죄인’이라는 낙인이다. 하지만 리베이트를 준 게 맞는데 뭐라 해명할 수 있겠나. 지난 10년이 부끄럽다.” 국내 대형 제약사 직원의 푸념이다.

제약업계가 안팎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청,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 경찰과 검찰, 국세청까지 가세한 리베이트 근절에 시달리는 와중에 영업사원과의 갈등도 깊어졌다.

주는 쪽(제약사)이 잘못이라면 받는 쪽(병의원·약국)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제약업계의 요구다. 하지만 이 당연한 요구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제약사들이 결국 리베이트라는 ‘원죄’의 굴레에 갇혔다.

■말뿐인 리베이트 금지령

리베이트 관행은 뿌리가 깊다. 2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다국적 제약사나 국내 제약사가 리베이트 없이 영업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의사와 제약사 간에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하는 한 제약사가 정도경영을 주창한다고 해도 의사들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던 뿌리 깊은 구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리베이트가 적발될 경우 해당 의약품의 약가를 인하하는 ‘리베이트-약가연동제’가 시행된 이후에야 대다수 국내 제약사들이 리베이트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또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영업사원들은 병원의 리베이트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영업환경이 악화되며 회사 매출은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실적이 낮은 영업사원은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확산됐다. 그들은 대출을 받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해 개별적으로 ‘뒷돈’을 마련했다.

국내 제약사 한 관계자는 “일부 영업사원들이 리베이트 제공 사실을 폭로하겠다거나 자살을 하겠다는 협박까지 하면서 자신이 만들어 의사 등에게 준 비용의 정산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리베이트 비용 처리를 해 줄 수 없기 때문에 회사는 대응방안도 찾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베이트 ‘원죄’ 벗어나야

정부가 강행한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는 시행 전부터 신뢰를 잃었다.

시행안 발표 후 서울대병원과 영남대병원 등의 원내의약품 공개입찰이 1, 2차 모두 전 품목 유찰되면서 의약품 공급에 비상이 걸린 것. 제약사가 병원이 제시한 낮은 예가를 맞추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제약사 한 임원은 “이번에 나타난 부작용은 요양기관이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임을 대변한다”면서 “의약품 공급이 급해진 의료기관과 최대한 약가 인하를 막아야 하는 제약사들 간 또다른 리베이트가 생겨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제약업계는 쌍벌죄 도입만이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쌍벌죄 시행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사들의 믿음을 흔드는 것이 먼저다.

실제로 의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보건복지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쌍벌죄 관련 법안을 아직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의사협회는 “시장경제하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리베이트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반박한 바 있다.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제약업계는 죄인이 되고 공멸 위기에 놓였지만 의사들은 리베이트가 당연하다고 인정하고 처벌도 거부하고 있다”면서 “쌍벌죄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들의 느긋한 믿음을 흔들어 놓지 않으면 제약업계 리베이트 근절 노력도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seilee@fnnews.com 이세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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