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말의 성찬은 이제 그만
#. 2012년 11월 20일 필자는 한국 금융투자산업을 '누란지위(累卵之危)'에 비유했다. 당시 금융투자산업이 층층이 쌓아놓은 알의 위태로움처럼 몹시 아슬아슬했다. 주식거래 감소, 닮은꼴 사업모델 등으로 인해 수익성 악화는 끝이 안 보였다. 증권사 지점의 90% 이상이 적자에 허덕였다. 살아남기 위해 지점 통폐합, 인력 구조조정 등을 단행했다.
증권사들은 내외부적인 악재에 밀려 그대로 주저앉아선 안 된다고 외쳤다. 그래서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신사업들을 찾아 나섰다. 그중 하나가 투자은행(IB)이었다. 기업 인수합병(M&A) 자금 대출과 비상장주식 직거래 등의 업무를 신무기로 장착해 글로벌 IB들과 당당히 맞서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시 국회가 발목을 잡아 날개도 펼치지 못했다. 뒤늦게 올해 8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이 발효되면서 국내 IB들은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는 신용공여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모펀드를 제외하고 추진 실적이 단 한 건도 없다.
#. 2013년 11월 20일 한국 금융투자산업은 아직도 누란지위 형세 그대로다. 1년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아니 더 악화되고 있다. 한국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수십년간 동고동락을 했던 동료들이 소리 소문 도 없이 곁을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완전판매 협의로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여 있다.
공교롭게도 계사년 (癸巳年)은 한국의 자본시장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지난 11월 25일 성대하게 환갑잔치도 열었다. 한국 금융투자산업은 금융선진국에 비하면 출발(1953년 대한증권업협회 설립)은 늦었지만 숨 가쁘게 달려왔다. 1975년 상장종목 300여개, 시총 9000억원이던 시장 규모가 2013년 상장종목 1940여개, 시총 1320조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금융위기를 겪으며 국내 자본시장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환갑을 맞은 자본시장이 아직도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과도한 규제이다.
얼마 전 만난 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는 "금융위기가 지속되고 투자환경이 급변하면서 기존 사업 모델로는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월 27일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규제완화로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내용을 주로 담았다. 이를 통해 10년 뒤 국내총생산(GDP)에서 금융업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을 7%에서 10%로 늘린다는 그림이다. 일명 '10-10 밸류업(valueup)'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지난 6개월간 총 68차례의 업계 간담회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마련됐다고 한다.
일단 구조 재편을 통한 유기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구조적인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국내 증권업에 우호적인 방향성을 제시해준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M&A 촉진 및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기준완화에 대한 실효성은 아직 의문이다. 현재 증권업 NCR 규제에 내재된 유동성 요건은 자본 효율성 제고에 걸림돌이 될 정도로 매우 높다.
특히 자본시장의 혁신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경쟁 촉진과 더불어 신규 자본과 인력이 자발적으로 유입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번 로드맵은 불행히도 신규 자본 유입이나 IB 육성 방안 등은 아예 언급도 없다.
이젠 더 이상 '말의 성찬'이 필요하지 않다. 한쪽 수레바퀴가 움직이지 않으면 기름칠을 하든지, 그것도 안되면 바퀴를 갈아끼워야 한다. 그 해법은 시장과 소통해서 찾을 수 있다.
문득 맹자의 '진심(盡心)' 하편에 "산중에 난 좁은 길도 계속 다니면 곧 길이 되고, 다니지 않으면 곧 풀이 우거져 길이 막힌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 則茅塞之矣)"는 말이 있다. 지속적으로 대화와 협력을 하자는 뜻이다.
sejkim@fnnews.com 김승중 증권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