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칼럼] “철도 민영화는 생각하지 마”
"진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리라."
미국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가 베스트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쓴 말이다. 22일간의 철도파업을 복기해 보니 레이코프의 경구에 새삼 공감이 간다. 코레일 자회사로 수서발 KTX 운영회사를 만든다는 철도산업 발전방안의 '진실'은 공공기관 간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철도 효율화다. 철도노동조합이 파업의 빌미로 내건 '민영화 음모'는 진실이 아닌 '거짓'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철도 민영화는 없다"고 거듭 확인했고 정부는 자회사 지분을 민간에 넘길 수 없도록 이중 삼중의 장치를 두겠다고 다짐했다. 이 정도면 철도 노조는 파업을 계속할 명분이 없다. 노조 파업의 진실은 '변화와 개혁의 거부'요, '철밥통 지키기'다. 그러나 노조는 진짜 속내를 숨기고 '민영화'대 '반(反)민영화'라는 프레임을 내걸었다. 그리고 정부가 아무리 민영화가 아니라고 해도 "믿을 수 없다"며 버텼다.
'민영화 프레임'은 사실 억지지만 여론을 호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노조가 벌인 '프레임 전쟁'이 나름 작동한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을 보나 상당수 청년층은 '민영화 음모'를 사태의 발단으로 보는 듯하다. 왜 그들은 진실을 모르는 걸까. 레이코프가 그의 책에서 답을 제시했다. 골수 민주당원인 레이코프는 2000년과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거듭해서 공화당에 패배한 것이 못내 분했다. 왜 가난한 서민이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화당에 표를 던졌을까. 연구 결과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언어의 '프레임'에 근거해 표를 던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프레임이란 가치관을 보여주는 틀이다. 압축된 말로 구성된 프레임이 한번 자리가 잡히면 진실조차 그 프레임에 맞춰 취사선택한다는 것이다. 레이코프는 공화당이 프레임을 선점해 유권자를 사로잡은 반면 민주당은 공화당의 프레임에 반박만 하다가 표를 잃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공화당은 '감세'를 '세금 구제(Tex relief)'로, '상속세'는 '사망세'로 바꿔 불러 '세금은 나쁜 것, 없애야 할 것'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다.
"코끼리(공화당의 상징)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는 순간 사람들은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는 게 레이코프의 주장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 압력을 받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TV 연설에서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모두가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민영화 프레임'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철도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반박하면 할수록 철도노조가 쳐놓은 프레임의 덫에 빠져드는 셈이다. 많은 사람이 '정부가 정말 민영화하려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상대방의 언어와 프레임을 사용하면 상대의 논리를 깰 수 없다. 프레임의 재구성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민영화는 이미 많은 사람의 뇌리에 '요금 폭탄·나쁜 것'이라는 등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8년 촛불사태 이후 노동계에서 수많은 '괴담'을 유포하며 이 같은 프레임을 봉인시켜 놓았다. 이번 파업 중에도 '민영화 하면 전철요금 5000원, 서울~부산 KTX요금 28만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괴담이 또다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확산된 이유다. 여기에 대고 새삼스레 "경영효율화에는 민영화가 최선"이라는 식으로 '진실'을 토로해봐야 당장 효과가 없다.
정부는 별생각 없이 프레임전쟁에 말려들어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며칠 전부터 민영화란 말을 쓰지 않고 자회사 설립이 '경쟁체제 도입' '세금 먹는 철밥통 깨기'라는 점을 적극 홍보했다. 그리고 면허 발급을 강행했다. '민영화'대 '공공 경쟁체제 도입'이란 프레임 대결은 그래도 구색이 맞는 모양새다.
철도 문제는 이제 국회에서 2라운드를 맞게 된다. 국회 국토위 소위원회에서는 프레임전쟁이 더욱 치열하게 계속될 것이다. 중재에 나선 국회의원들이야말로 프레임 싸움의 고수들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여기에 휘둘려 어쭙잖은 타협을 해서는 안 된다. '철도는 개혁돼야 한다'는 진실이 결코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리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