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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 대통령상/서울 종로구-수성동 계곡 복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28 16:22

수정 2014.09.28 16:26

2012년 7월 복원이 완료된 서울 종로구 옥인동 '수성동 계곡'. 1만여㎡ 규모에 계류부 암반지역은 최대한으로 암반을 노출시켜 자연미를 살리고 녹지 위주로 조성 복원했다. 돌다리인 기린교에서 바라보는 인왕산 전경이 과거 조선시대의 원형을 재현했다는 평이다.
2012년 7월 복원이 완료된 서울 종로구 옥인동 '수성동 계곡'. 1만여㎡ 규모에 계류부 암반지역은 최대한으로 암반을 노출시켜 자연미를 살리고 녹지 위주로 조성 복원했다. 돌다리인 기린교에서 바라보는 인왕산 전경이 과거 조선시대의 원형을 재현했다는 평이다.

수성동에서 비를 맞으며 폭포를 보고 심설(沁雪)의 운(韻)을 빌린다.

골짜기 들어오니 몇 무 안 되고, 나막신 아래로 물소리 우렁차다.


푸르름 물들어 몸을 싸는 듯 대낮에 가는데도 밤인 것 같네.

고운 이끼 자리를 깔고 둥근 솔은 기와 덮은 듯.

낙숫물 소리 예전엔 새 소릴러니 오늘은 대아송(大雅誦) 같다

산마음 정숙하면 새들도 소리 죽이나.

원컨대 이 소리 세상에 돌려 저 속된 것들 침 주어 꾸밈없이 만들었으면

저녁 구름 홀연히 먹을 뿌리어 시의(詩意)로 그림을 그리게 한다.

추사 김정희의 시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의 내용이다.

인왕산 치마바위 밑 자락,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화폭(수성동 풍경도)에도 등장하는 수성동 계곡은 조선시대부터 물소리와 경관이 아름다워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리며 안평대군의 집(비해당)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박윤목 등 중인층을 중심으로 저명한 시사(詩社)가 결성되는 등 상류층 전유물로 여겨지던 문학이 사회저변으로 확대되는 계기를 만든 조선 후기 위항문학(委巷文學)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2014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에서 역사.문화.환경 부문에 출품해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한 '역사와 문화가 함께하는 수성동 계곡 복원'은 서울 종로구 옥인동 179의 1 일원을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화폭에 가깝게 원형 그대로 복원한 사업이다.

인왕산 수성동 계곡(1만97㎡)은 조선시대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경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되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폭 1m, 길이 6m의 통돌로 만들어진 돌다리인 기린교가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개발시대 아파트 들어서며 훼손

하지만 수성동 계곡도 개발시대의 광풍을 거치며 그 일대가 아파트촌으로 전락하게 된다. 1971년 이 계곡 좌우편으로 옥인아파트(시민아파트) 9개동 308가구가 들어서며 경관을 크게 해치는 상태로 지속됐다.

이 후 아파트 구조의 문제점으로 재난위험시설(안전등급 C등급)로 지정되는 등 명승지 인왕산 전망과 문화유적 훼손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며 정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종로구는 주변 경관을 훼손하고 안전문제가 우려되는 노후 아파트를 철거함으로써 수성동계곡을 단순 녹지를 조성하는 계획으로 추진했으나 아파트 철거 과정에서 수성동계곡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에 따라 2010년 10월 돌다리와 수성동계곡을 문화재인 서울시 기념물 제31호로 지정하고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장동팔경첩 중 수성동)속 경관으로 복원했다.

종로구는 이 과정에서 수성동 계곡 복원계획을 수립, 입주민과 협의를 거쳐 2009년 보상을 완료하고 2012년 7월 시민의 품에 돌려줬다. 2009년 2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진행된 수성동 계곡 복원 사업에서 토지 및 건물보상에 985억원, 조경공사 55억원, 철거 20억원 등 총 사업비 1060억원을 들여 1만여㎡ 규모의 계곡을 복원하고 볼거리가 어우러진 녹지공간으로 조성한다.

■인위적 시설물 최소화해 경관 회복

종로구는 우선 옛 수성동계곡처럼 암석지형을 회복시켜 수성동의 원형을 되찾고 역사와 생태가 어우러진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복원사업은 역사, 전통, 생태 공간이라는 취지를 바탕으로 인위적인 시설물을 최소화해 옛 경관을 회복하고자 했다.

계류부 암반지역은 최대한으로 암반을 노출시켜 자연미를 살리고 녹지 위주로 조성했으며 시설물은 전통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시설물 위주로 돌, 목재 등 자연소재를 이용해 설치했다. 이를 위해 소나무 등 나무 1만8477그루를 전통 조경 방식으로 다시 심어 소박하고 옛 정취를 가진 계곡의 모습을 되찾았으며 돌다리(기린교)도 그 모습을 회복했다.

특히 겸재 정선의 화폭을 재현한 점에서 시민은 물론 각계의 호평을 받았다. 또 철거아파트 벽면인 일부 잔재를 보존해 무분별한 개발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활용한 점도 좋은 평가를 얻었다.

■역사.문화 관광벨트 구축 '시민 품으로'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고 시민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조선의 비경 수성동계곡은 인왕산과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복원된 수성동 계곡은 흔히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600년 전통의 문화 역사를 품은 종로구의 대표적인 명소로 탈바꿈해 인근에 위치한 한양도성, 윤동주문학관, 박노수미술관 등과 연계한 역사·문화 관광벨트로 사랑받고 있다.

[2014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 대통령상/서울 종로구-수성동 계곡 복원

■수상소감/"시민들과 함께한 작업이라 더 의미"

국토·도시분야 평가로는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2014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1세기 세계화 시대, 아름다운 국토·도시 공간은 이제 국가경쟁력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수준 높은 도시 디자인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그 출발점이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기조에 일조하며 앞장서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게 생각합니다.

'수성동 계곡'은 개발논리에 휩쓸려 아름다운 국토·도시공간을 훼손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조선시대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경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되고 겸재 정선의 '수성동' 회화에도 등장할 만큼 경치가 아름답고 유서 깊은 수성동 계곡은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아파트가 들어서 우리의 역사를 지우고 아름답던 인왕산 경관마저 해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에야 수명을 다한 낡은 공간에 자연재생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시민아파트를 철거하고 두 번의 과오가 없도록 수성동 계곡의 역사적 가치를 바탕으로 수많은 자문과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습니다. 시설물 설치는 최소화하고 자연경관은 그대로 살리며 역사와 생태가 어우러진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특히 전통 조경방식으로 나무를 다시 심어 소박한 옛 정취를 되찾았으며 자연암반을 최대한 노출하고 돌다리도 그 모습을 회복해 겸재 정선의 화폭을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계곡 아래에 걸려 있는 돌다리는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 보존된,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런 복원 노력이 '2014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에서 인정을 받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발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수성동 계곡이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아파트 보상 등 약 1000억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이 소요됐습니다. 지금 수성동 계곡에는 철거 아파트 일부 잔재를 보존해 무분별한 개발을 반성하는 의미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수성동 계곡 복원을 통해 신중하지 못한 개발로 짓밟힌 또 다른 역사·문화유산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수성동 계곡을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속 옛 모습으로 복원하기까지 각 분야에서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시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좋은 공간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김현선 김현선디자인연구소 소장
김현선 김현선디자인연구소 소장

■심사평/"고증 통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

수성동 계곡에 들어서니 겸재 그림 속의 인왕산이 옛 모습 그대로 돌아와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리며 조선시대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경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됐고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하나인 '수성동' 회화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수성동 계곡은 지난 2010년 옥인시범아파트 철거 과정에서 수성동 계곡을 문화재로 지정,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속 경관을 복원했다. 수성동은 1960년대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개발시대 논리로 수성동 계곡 양쪽에 1971년에 9개동 308가구의 시민아파트를 건립하면서 콘크리트로 뒤덮인 아파트촌으로 전락했다.

개발이라는 목표를 위해 달려온 수도 서울은 새로운 것, 혁신적인 것이 익숙한 도시다. 옛 수성동 계곡처럼 역사와 생태가 어우러진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계류부 암반지역은 최대한으로 암반을 노출시켜 심사단 방문 때 자연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사모정 1동과 일부 목교, 돌다리 등 최소 부분만 시설을 설치해 '비움'의 디자인을 느낄 수 있었고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지속 가능한 서울의 미래를 만들려는 노력이 칭찬할 만했다.

도시적 측면에서 수성동 계곡은 인왕산∼경복궁∼청계천을 이어주는 녹지축을 복원했고 인왕산의 경관을 고스란히 살려 경관을 회복했다. 600년을 이어온 서울의 정체성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진정한 혁신적 디자인이다.

또 과거 물길을 살려 생태계를 회복시킨 것은 자연의 복원을 넘어 개발시대 과오를 반성하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디자인 지침이라고 생각된다.

'훼손된 유산'을 '미래를 위한 자산'으로 회복시킨 수성동 계곡 초입 광장에 서면 정선이 바라보던 그 지점에서 수성동 계곡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회화 속을 거니는 이색적인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수성동 계곡, 서울 서촌 지역의 대표적 자산이자 명소가 되길 기대한다.

도심 속 수성동 계곡 풍경을 요약하자면 첫째,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함에 인위적 시설물을 최소화해 옛 경관을 회복하니 익숙하며 편안하다.

둘째, 유교를 바탕으로 한 조선의 선비문화를 받아들인 간결하고 검소한 디자인으로 지나침이 없다.


셋째, 과거 원형지로의 복원을 통해 인왕산의 경관을 고스란히 살려내 이것이 서울의 정체성이다.

넷째, 시민과 함께 만든 디자인이니 모두에게 열린 디자인이다.


다섯째, 고증을 통해 원형을 찾아내 서울의 지역성을 회복했으니 도시재생의 교훈이다.

kimhw@fnnews.com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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