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우량기업 기술대출에만 머물러
'관계형 금융 활성화 정책'을 두고 금융당국과 은행권 간의 엇박자가 심화되고 있다. 관계형 금융을 제도로서 적극 장려해 나가겠다는 금융당국의 입장과는 달리 은행들은 부실사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여전히 소극적이다.
특히 이번 제도로 부실이 발생할 경우 고의나 과실이 없으면 담당자를 면책하는 방안이나 핵심성과지표(KPI)에 관계형 금융 항목을 추가해 가산점을 부과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겠다던 금융당국이 아직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우량 중소기업에 한해 무담보 기술대출 등을 실시, 당국의 주문을 겨우 맞추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국은 업계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도 못한 채 무작정 제도 시행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관계형 금융? 끌려가는 은행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부터 은행권을 중심으로 관계형 금융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관계형 금융을 영업 평가 지표로 반영해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은행은 아직까지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실제 우리, 신한, 하나, NH농협, 외환, KB국민은행 등에 따르면 대부분 은행들이 기술금융에 대한 대출 실적을 KPI 평가 항목으로 추가한 상태지만 관계형 금융은 별도 항목으로 두고 있지는 않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통 은행의 일선 영업점에선 KPI 평가 항목으로 반영되어야만 실적과 직결되기 때문에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며 "기술금융과 달리 관계형 금융은 아예 평가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보니 대부분 (제도를) 모르거나 아예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기존 대출 방식을 고수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현재 A은행의 경우 영업점 KPI에 기존 항목인 중소우량자산증대지표 외에 최근 기술금융상품을 취급한 실적에 한해 인센티브 200%를 적용하는 지표를 추가했지만 관계형 금융 지표는 전무하다. B은행도 기술금융 실적을 150% 반영해주고 있지만 관계형 금융은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해당 은행 관계자는 "이달부터 도입된 제도라 당장 KPI에 반영하긴 어렵다"며 "이제 영업도 막바지인 데다가 사실상 내년을 바라보고 준비해야 하는 제도인데 너무 급하게 시행되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관계형 금융 실적을 늘리라는 당국의 주문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지만 추후 부실이 발생하면 여지없이 대출 심사역에게 책임을 묻는 환경은 개선되고 있지 않다"면서 "때문에 원래 취지와는 별개로 오직 우량기업을 중심으로만 관계형 금융을 하는 듯한 시늉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저축은행 업계는 아예 당국이 업계 상황을 무시한 채 본 제도를 밀어붙이고 있다고까지 비판했다.
지난달 나온 '저축은행의 관계형 금융 활성화 방안'을 두고 저축은행업계는 "당국에선 저축은행이야말로 관계형 금융 모델이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있겠지만 현재 반이 넘는 저축은행들은 소규모 인원으로 운영되다보니 신용대출은 고사하고 담보대출만을 고수하는데, 과연 고객 한 명 한 명을 상대로 밀착형 금융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관계형 금융을 할 저축은행들이 얼마나 될지 뻔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제도보다 관행으로 정착해야"
때문에 관련 전문가들은 관계형 금융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제도의 도입이 아니라 관행의 정착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김동환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관계형 금융은 장기 거래관계를 통해 습득한 연성정보를 중심으로 일시적 유동성위기에 봉착한 중소기업에 신용을 특별 부여해 자금조달을 해주는 부분 외에도 기업의 성장단계에 맞는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연구위원이 중소기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금조달 외 컨설팅 기능을 받은 업체는 단 3%에 불과하다.김 연구위원은 "이미 제도가 도입된 독일이나 일본 역시 제도의 도입을 통해 일시적으로 구축된 것이 아닌 기업과 은행 간 몇십년에서 100년 이상의 장기 거래 관행이 뿌리 내려 정착했다"며 "이를 보더라도 당국이 주도하는 제도로서의 관계형 금융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금조달뿐만 아니라 컨설팅 기능까지도 업계 스스로 충분히 숙지한 뒤 이행해 나갈 수 있는 기본적 자생 환경을 우선 조성해 주는 것이 당국이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gms@fnnews.com 고민서 기자
■관계형 금융 은 신용등급이 낮고 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비재무요인을 판단해 장기(평균 3년) 대출을 시행하는 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