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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화이부동 혹은 불협화음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0.13 17:12

수정 2014.10.13 17:12

[이재훈 칼럼] 화이부동 혹은 불협화음

정부와 중앙은행은 가깝고도 먼 사이다.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경제부총리와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 총재의 관계는 항상 긴장감이 흐를 수밖에 없다. 지향하는 목표가 다르니 생각도 차이가 있다. 정부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펴게 마련이고 한은은 물가·금융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지금 같은 경제침체기에 정부는 공격적으로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 부양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어 한다. 한은은 물가상승에대한 우려로 금리인하에 보수적 스탠스를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둘 사이에 약간의 엇박자가 나타나는 게 불가피하다. 그래서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둘 사이 관계를 '화이부동'(和而不同·화합하나 같아지지 않는다)이라고 규정했다.

최경환 부총리와 이주열 한은 총재 사이에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우리 경제 상황에 대해 정반대의 진단과 처방을 내놓고 있다. 단순한 엇박자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두 사람은 현지에서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최 부총리는 "미국이 조기에 금리를 올려도 한국에서 급격한 자본 유출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몇 시간 뒤 이 총재는 "국제금리가 오르면 한국에서 자본이 유출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올해 성장률에 대해 최 부총리가 "3% '아주 후반대'가 될 것"이라고 하자 이 총재는 "전망치를 3% 중반대로 낮출 것"이라고 응수했다. 한쪽은 낙관론을 펼치고 다른 쪽은 비관론을 제시했다.

묘한 것은 낙관론을 펴는 쪽이 추가 금리인하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고 비관론을 펴는 쪽은 금리인하에 소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앞뒤가 안맞는다. 지난 7월 최 부총리 부임 직후 두 사람은 회동한 뒤 "정부와 한은의 경기 인식은 같다"며 정책공조를 선언했지만 이후 사사건건 견해차를 보였다. 최 부총리가 "우리 경제는 일본형 불황을 닮아가고 있다"고 하면 이 총재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최 부총리가 "우리 경제는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고 하자 이 총재는 이 역시 부인했다. 이 부분만 보면 최 부총리가 비관론자이고 이 총재가 낙관론자다.

이 모든 논쟁은 두 사람이 금리를 내려야 할 이유와 내리지 않아야 할 이유를 대다보니 생겨났다. 경기부양의 가시적 성과를 봐야한다는 조급함 때문인지 금리 추가인하에 대한 최 부총리의 집착은 대단하다. 그러나 한은을 압박하는 방법이 너무 거칠다.

최 부총리는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호주 출장 때 이 총재와 와인을 마신 사실을 공개하며 "금리의 '금'자 얘기도 안했지만 '척하면 척'이다"라고 말했다. 이게 국정감사에서 한은 독립성 논란으로 비화됐다. 이 총재는 "와인과 함께 한은 독립성을 마셔버린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비아냥에 시달려야 했다. 이미 지난 8월 여론에 밀려 금리를 한차례 내렸던 이 총재로선 더욱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엇박자에 시장은 심한 혼란에 빠졌다. 경제수장들이 들쭉날쭉한 시그널을 던지니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엄중한 경제위기 상황에 직면해 두 사람이 똘똘 뭉쳐 대처해도 부족한 판에 도대체 뭐하는 건가 하는 비판이 비등하다. 논란이 커지자 두 사람은 해명에 나섰다. 최 부총리는 "'척하면 척'으로 유발된 한은 독립성 논란은 오해"라고 했고 이 총재는 "경제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시각차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금간 신뢰가 쉽사리 복원될지는 의문이다.

미국 재무장관과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은 매주 만나 의견을 조율한다. 그래서 잡음이 나올 여지가 없고 찰떡궁합을 과시한다. 언제까지 이를 부러워해야 하는지.

금융통화위원회는 15일 회의를 하고 기준금리를 결정할 예정이다. 시장에선 인하쪽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이 총재로선 진퇴양난이다.
금리 방향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많이 한 데다 정부 개입 논란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시비가 제기될 공산이 크다.
그러면 정책의 효과는 반감되게 마련이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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