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화평법 시행에 즈음하여
전 세계적으로 매년 새롭게 합성되는 화학물질은 500만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선진국을 중심으로 2000여종을 상품화해 유통시키는데 국내로도 다양한 신규 물질이 수입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개발된 이름도 모르는 유해물질이 우리 국민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물질이 무엇이며 이 물질이 과연 위해 우려는 없는 것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유해 정보를 알고 시장에 화학물질을 유통·공유하자는 'No Data, No Market' 원칙은 화학물질의 국제교역시장에서 공고화된 원칙이다. 화평법은 이러한 배경에서 태어났다. 외국으로 수출하는 기업들은 수입국의 등록·신고 등의 화학규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2006년 7월 유럽연합이 회원국에 곧바로 적용되는 신화학물질관리제도를 도입했던 것이 그 예다. 화평법 시행은 그때부터 준비를 시작한 지 꼬박 9년여 만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산업계는 법 시행 전부터 제도 이행 준비에 분주하다. 기업 내 관리물질들이 화평법 이행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고 등록신청 시 제출해야 하는 화학물질의 용도·노출정보, 시험자료를 준비함에 부담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지난 2013년 5월 법률 공포 이후 하위법령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해관계자 간 지속적인 소통과 협의를 거쳐 현장 수용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조정됐다. 요구 시험자료를 전부 제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면제조건, 비시험 자료, 시험계획서로 시험자료 생략이 가능하게 됐다. 등록대상 기존 화학물질에 대한 등록의무는 3년간 유예기간이 부여되며 최초 보고·신고의무는 2016년부터 이행할 수 있게 했다.
대기업들은 선진국의 제도를 이미 학습했고 법령 추진과정에서 주요 제도 이행방안을 이미 습득했기 때문에 화평법 제도의 이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영세 중소기업들은 환경규제에 대한 무관심 또는 자체능력 부족 등으로 제도 이행 역량의 한계에 도달할 수도 있어 이 점이 문제이고 걱정이다.
한편 정부는 법 시행 초기 3년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니 다행이고 매우 고무적이다. 연간 80억여원을 투입해 시험자료를 보급하거나 등록절차 이행, 위해성 평가 등의 지원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중소기업들은 이러한 지원사업을 최대한 활용해 화학물질 관리 경쟁력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첨단·고가치 신규 물질에 대한 영업비밀 노출을 우려하고 관련 영업이익 손실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세부 하위법령에서 영업비밀은 보호하도록 했고 해외 기업들에는 국내 기업과 관계에서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유럽연합과 같이 별도 대리인를 선임·이행토록 제도적으로 보완됐다.
해외개발 물질의 국내 유통에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평법은 물질명도 모른 채 국내로 수입·유통돼 발생할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물질명 자체 보호에 따른 영업이익보다는 물질정보 오·남용에 따른 국민건강 피해 차단의 이익이 더욱 크다는 것을 이해하고 협조할 필요가 있다.
올해 시작과 함께 새로이 시작하는 화평법은 화학산업을 비롯한 산업계의 비상한 관심과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해관계자들의 토론 및 의견 교환을 통해 의견수렴에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기에 이제는 논의 과정에서 미처 예기치 못했던 상황을 해결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결의가 중요할 것이다. 또한 이 체제를 바탕으로 새로이 얻을 수 있는 산업계 체질 개선 및 선진화 기회를 활용해 세계시장에서 화학산업의 주도권 확보에 정부와 산학연이 긴밀히 협조하는 것이 우리의 나아갈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익모 인하대학교 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