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사설] 연말정산 소동, 꼼수 증세가 낳은 비극

파이낸셜뉴스

담뱃세 이어 근로자 배신감.. '증세는 없다' 도그마 깨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울화통' 연말정산을 해명하기 위해서다. 일부 보완책도 제시했다. 여론은 매우 좋지 않다. 납세자들은 담뱃값 인상에 이어 연달아 한 방 맞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정치권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 부총리 자신도 이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3월의 공포'를 낳은 2013년 세제개편 소동 때 최 부총리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있었다.

애초 정부의 의도는 좋았다. 2013년 8월 당시 현오석 부총리는 중산층 이상 고소득자한테 세금을 더 걷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소득공제는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꿨다. 그러자 여론이 들끓었다. 중산층의 기준선을 연 3450만원으로 낮게 잡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하루 뒤 현 부총리는 세 부담 기준선을 5500만원으로 높인 새로운 안을 내놨다. 그제서야 여론은 잠잠해졌다. 세법개정안은 정기국회를 통과했고 2014년 소득 귀속분부터 새 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최근의 소란은 새 법이 적용된 첫 사례다.

올해 연말정산이 팍팍해지리라는 것은 예견했던 일이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간이세액표다. 이명박정부 시절이던 2012년 당시 박재완 기재부 장관은 연말정산 환급을 종래 많이 걷고 많이 돌려주던 방식에서 적게 걷고 적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바꿨다. 소비 진작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이 원칙에 맞게 간이세액표도 수정했다. 간이세액표는 세금을 원천징수할 때 적용하는 기준이다. 이 바람에 올해 납세자들은 전례 없는 박탈감을 느끼게 됐다.

냉정하게 보면 간이세액표 변경에 따른 환급액 감소는 공평하다. 다달이 월급에서 세금을 덜 뗐기 때문이다. 세 부담 기준선 조정에 따른 추가 부담도 한 차례 소동 끝에 여론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정부는 더 걷힌 돈을 근로장려세제(EITC)나 자녀장려세제(CTC) 등 저소득층 지원에 쓸 계획이다. 다만 세제 개편의 불똥이 뜻하지 않게 5500만원 미만 저소득자, 다자녀 가구, 노인층으로 튄 것은 분명 잘못이다. 최 부총리는 앞으로 나올 보완책에 이들을 우선 배려해야 한다. 간이세액표를 예전 방식으로 환원하는 것은 조삼모사 정책일 뿐이다.

연말정산 소동의 뿌리는 꼼수 증세에 닿는다. 박 대통령은 "증세는 없다"고 공약했다. 정부·여당은 이 도그마에 갇혀 있다. 담뱃세 인상이나 세액공제 전환은 본격적인 증세 논란을 피하기 위한 꼼수다. 그러나 꼼수라도 증세는 증세다. 세상은 다 증세라고 아는데 정부·여당만 증세가 아니라고 우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본란에서 누차 지적한 대로 복지 증세는 정공법으로 대처하는 게 옳다.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율은 그냥 놔두고 조 단위 복지비를 충당하려다 보니 자꾸 사달이 난다. 복지엔 돈이 든다. 만약 여론이 증세에 동의하면 주요 세목에 손을 대고 아니면 복지 공약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야당은 서민증세·부자감세 공세를 펴고 있다. 나름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뒤엉킨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 사람은 박 대통령밖에 없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