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식 칼럼]

담합 덫에 갇힌 건설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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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악재로 붕괴위기 직면, '사면'카드로 기 살려줘야
각종 모임에서 흔히 "오늘은 건설적인 자리"라는 말을 한다. 건전하고 발전적 자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건설적'이라는 말이 사전에도 올라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게다. 사전엔 '어떤 일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또는 그런 것'으로 풀이돼 있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건설업'이라고 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건설업은 경제발전의 한 축으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과거 개발기에는 비리, 요즘엔 담합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더 크다.

건설산업만큼 업적이 저평가되고 성장통을 많이 앓은 업종은 없다.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시련을 거쳐 지금도 진행형이다. 국내 공공공사 감소와 담합관련 제재, 외국기업과의 경쟁 심화와 유가 추락이라는 사면초가에 빠져있다. 하루하루 업을 접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처지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61조원에 달하던 공공공사 물량(건당 200억원 이상)은 2011년에 32조원으로 반토막 났다. 작년엔 반의반토막인 17조원으로 줄었다. 담합을 부르는 불합리한 입찰제도 때문에 이마저 언감생심이다.

지난해 공공부문에서 나온 대형 국책공사 31건 중 65%인 20건에서 시공사를 못 정했다. 2009년 유찰률이 0.6%에 그친 것에 비하면 심각하다. 거꾸로 정부는 그만큼 사업을 제때 못 벌인 셈이다. 수출 효자인 해외건설은 2010년 716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엔 정부 목표치(700억달러)를 못 채우고 690억달러에 마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유가마저 속절없이 추락해 올해는 해외건설 텃밭인 중동 산유국은 물론 신흥국 건설시장마저 위축되고 있다. 시장이 불투명하니 정부도 올해는 수주목표를 잡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후진적 시공사 선정제도로 인해 대부분의 건설사가 담합의 덫에 걸려 있다. 기업당 수백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은 것도 모자라 '부정당업자'로 낙인 찍혀 수주제한이라는 족쇄까지 채워졌다. 100대 건설사 중 59곳이 담합 처벌을 받았고, 30대 대형 건설사 중 26곳은 공공공사 수주제한까지 받고 있다. 부정당업자 꼬리표는 해외건설시장에서도 상대국 경쟁사들에 비방의 빌미를 주고 발주처에도 부정적으로 인식돼 수주에 지장을 받는다. 수주로 먹고사는 건설사에 공사를 따지 말라면 문을 닫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건설업계의 담합은 정부나 발주처가 조장한 측면이 강하다. 대형 건설사 대부분이 담합으로 걸린 4대강 사업, 호남고속철도 및 지하철 사업이 대표적이다. 4대강 사업은 한꺼번에 동시다발로 벌이다보니 자연스레 '나눠먹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호남고속철도 건설은 1사 1공구 입찰이라는 발주방식의 허점이 담합을 불렀다. 지하철 사업은 원가도 건지기 힘든 최저가낙찰제라는 후진적 입찰제도가 원인이다.

망국병인 담합을 한 건설사를 덮어놓고 두둔하고 싶진 않다. 다만 배경이 구조적인 데 있다면 개선과 함께 함정에 빠진 건설업체에 출구를 내줘야 한다. 건설은 전자·자동차산업과 함께 수출과 내수를 이끄는 대표적 '쌍끌이' 산업이다. 해외로 나간 지 50년을 맞는 올해 해외수출 누적액이 7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 기준 건설업 취업자는 179만6000명으로 전체(2559만9000명)의 7%를 차지한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에 달한다. 그래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국익 차원에서 자국 건설사 영업정지 처분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과징금을 부과하고 입찰제한까지 처분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때마침 정부는 21일 입찰담합의 사전적 예방조치와 함께 구조적 제도개선 방안과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내용의 '건설산업 입찰담합 예방 및 시장 불확실성 완화방안'을 내놨다.
담합을 부르는 입찰시스템을 뜯어고치는 동시에 그동안의 담합에 대한 사면 카드를 쓸 필요가 있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건설업계도 뼈를 깎는 자정 노력과 기술력 확보로 화답해야 한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