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중고나라 '이케아 연필거지', 논란의 주인공을 만나다

김종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2.11 16:16

수정 2015.02.11 16:57

A씨가 10일 오전 8시 50분께 포털사이트 중고거래 카페에 올린 게시물(캡처 후 편집)
A씨가 10일 오전 8시 50분께 포털사이트 중고거래 카페에 올린 게시물(캡처 후 편집)

[취재보고서]"이케아 연필 팝니다" 작성자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케아 연필거지', 인터넷 세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지난 며칠간 이 단어를 참 많이 접하셨을 것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뿐 아니라 몇몇 언론까지 가세해 '세계 최대 가구업체 이케아가 한국에서 문을 연 지 50여일 만에 일어난 참사' 등의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광명이케아 매장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연필이 한번에 많이 가져가는 손님들 탓에 다 떨어졌으며, 앞으로도 이케아는 한국에서 연필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는 루머가 퍼진 것이었습니다. 이케아 측에 확인해보니 연필이 떨어진 것은 맞지만, 공급을 중단한다는 것은 사실무근였습니다.

(관련기사 ▷이케아 "연필, 당연히 다시 주문한다.. '공급중단'은 루머")

그럼에도 식지 않던 '연필거지' 이슈의 화룡점정은 네이버 중고거래 카페에 등장한 '이케아 연필 팝니다'라는 게시물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걱정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케아 연필거지'라는 말이 사실이었네" 등의 의견을 내놓으셨고, 판매글은 10일 하루동안 인터넷 세계를 뒤덮었습니다.

'이케아 연필거지' 이슈의 확산 초기부터 지켜보고 취재했던 저로서는 꼭 그와 대화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판매할 생각이 있었던 것인지, 혹은 단순한 장난이었던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실제 글 작성자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 "특정 브랜드를 향한 '왜곡된 선호'를 되돌아보기 위한 풍자"

중고거래 카페에 글을 게시한 주인공은 서울에 사는 남성 A씨(31)였습니다. 그의 요청으로 익명 처리하게 된 점을 우선 독자 여러분께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난 1월 광명이케아 매장에서 가져온 한 자루의 연필을 촬영해 게시물을 올렸다는 A씨는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판매의 목적이 없었으며, 본래 의도했던 내용의 공론화"를 의도해 연필 판매글을 올린 것이라 밝혔습니다. 그가 '공론화'하고 싶었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A씨가 시민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것은 몇 년 간 지속된 우리 사회의 '왜곡된 브랜드 선호'에 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실속보다 겉보기에 치중하는 풍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공론화의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본래 '실속'이 주요 키워드인 이케아가 국내에선 무언가 다른 가치가 더해지면서, 외양에 몰입하는 풍조를 더해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대한 소비 행동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북유럽 감성', '힐링-피톤치드' 등의 단어를 썼던 것이구요."

그는 몇몇 다른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이름을 나열하며 한국 소비문화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실속에 치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의도했던 것은 '소통과 공론화'였기에, 특정한 누군가에 대해 비판으로 읽히지 않길 바란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케아 연필
이케아 연필

■"시민의식, 어느 사회-시대에서나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

'이케아 연필거지' 사태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의견을 내놓은 부분은 역시 '시민의식 부재'였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을 살펴보면 "한국인들은 이래서 안돼" 등 자조를 넘어 자학에 가까운 글까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A씨는 '시민의식'에 대한 공론화도 의도했던 것이 맞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 논의가 '한국인의 부족함'으로 흘러가는 것을 의도하진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시민의식이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발적 책임 이행'입니다. 이런 의식의 결여는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나타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대표적으로 공공 자전거 도난 이슈가 있을 텐데, 이것은 국내뿐 아니라 현대 시민혁명의 태동지인 파리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 메시지와 함께 그가 보내준 것은 프랑스 파리에서 공공 자전거 '벨리브'가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9000대 넘게 도난당하거나 훼손됐다는 소식이 담긴 기사였습니다. ( ▷바로가기) 해당 기사에는 "공공재산인 자전거를 아껴쓰고 보호하겠다는 시민 정신이 부족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문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A씨는 "동서양을 떠나, 사회 구성원이라면 끊임없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이러한 과정이 결국 개인과 사회의 의식을 꾸준히 성숙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널리 퍼져나가길 원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담아 '중고거래' 카페에 글을 올린 것이었을까요. A씨는 공론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 즉 인터넷에서 '바이럴'(소셜 네트워크 등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고 답했습니다.

"온라인 최대 중고거래 커뮤니티인데다, 역설적이게도 제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가장 잘 퍼져나갈 것이란 판단에서 해당 카페에 올리게 됐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네티즌뿐 아니라 언론사에서도 기사를 통해 문제를 다뤘으니 그가 의도했던 '공론화'는 분명 일정 성과를 보인 것 같습니다.

다만 A씨는 "해당 글을 읽고 기분이 언짢으셨을 모든 분들께 진심어린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며 판매글로 인해 빚어진 소동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기사를 통해 이케아 측에 "혹시 불편함을 겪으셨다면 정중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고 전하고 싶다는 마음도 전했습니다.

A씨는 별도로 전한 메시지에서 다시 한 번 당부의 말을 건넸습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주장을 하기 위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주제에 대한 공론화를 원했고, 그에 따라 연필 판매글을 작성했던 것입니다."

■ 취재 보고

사실 이번 논란은 사실이 아닌 서술과 거짓 정보가 혼재되면서 다소 비정상적으로 커진 이슈였습니다.

'다른 나라의 2년치 물량이 다 떨어졌다'는 등의 글은 사실이 아니었고, 무료로 가져가도록 연필을 비치하는 것은 이케아 마케팅의 한 부분입니다. 결국 '연필거지' 논란은 인터넷 세상의 불확실한 정보와 몇몇 네티즌의 과도한 '한국 비하'가 엮이면서 벌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었기에 게시물 작성자와 처음 대화를 시작하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판매를 위해, 혹은 그저 장난으로 올린 글이었을 것으로 추측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A씨는 꽤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에 저는 상당 부분 공감했습니다.
비록 그 표현 방법에까지 100% 동의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입니다.

이런 사정으로 이 기사를 썼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케아 연필 중고거래' 뒷편에 숨은 이야기를 읽고, 작성자의 의도에 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kimjw@fnnews.com 김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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