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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하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3.16 17:01

수정 2015.03.16 17:01

[fn논단]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하며

아랍 민족은 사막을 오가며 유목을 하고 카라반을 조직해 무역을 했는데 적 부족, 모래폭풍, 도적 등 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사막을 가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칼로 손을 베어 큰 술잔에 피를 섞어 마시고 "너의 친구와 적은 곧 우리의 친구와 적이다" 라는 우정맹세를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런 결의형제를 '라피끄'라고 한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순방에서 사우디 살만 국왕은 "한국과 사우디가 신뢰에 기반해 호혜적인 이익을 향유하는 '라피끄'가 되도록 노력하자" 며 왕위서열 1, 2위 계승자들과 함께 최고의 의전을 제공했다. 쿠웨이트에서도 사바 국왕, 왕세제, 총리, 주요 각료들이 공항에 나와 환송을 했고, UAE 모하메드 왕세제와 카타르 타밈 국왕은 오찬에서 손님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뜻하는 낙타요리를 대접했다.

이러한 환대는 첫째, 1970년대부터 우리 건설사와 근로자들이 중동에서 피땀으로 일군 원조 한류에 기인한다. 중동 사람들은 1970~1980년대에 리야드 고가도로, 주베일항 등을 정확한 납기에 매끈하고 튼튼하게 만들었던, 솜씨 좋고 근면성실한 한국 건설사와 근로자들을 그리워한다.
둘째,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한 경제건설을 위해 한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우디 장기전략 2024' '쿠웨이트 비전 2035' 등 중동 각국은 석유 고갈에 대비해 신성장 동력을 육성할 계획인데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 기술력, 성실함이 파트너로서 안성맞춤이라 여긴다. 셋째, 박 대통령에 대한 호감 때문이다. 한국과 사우디, 쿠웨이트 등과의 첫 정상회담은 1980년 5월 최규하 대통령 때였는데, 이는 본래 1979년 12월에 예정됐던 것으로 10.26 사태가 없었다면 박 대통령도 퍼스트 레이디로서 36년 전에 방문했을 것이다. 중동 왕가들은 이런 고난과 극복의 개인사를 기억하고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 이루어진 이번 정상외교는 한국과 중동 각국 간의 무역을 촉진하고 제2의 중동붐을 일으키는 좋은 계기가 될 전망이고 투자유치 측면에서도 중동 국부펀드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켜 대(對)한국 투자 증가가 기대된다.

중동 국부펀드들은 3조달러 가까운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의 큰손이지만 한국에는 주로 단기투자 위주로 한두 건의 빌딩 매입 외에는 관심도 투자도 작았다. 필자는 과거 런던에서 외국계 투자은행 대표로 일할 때 중동 국부펀드의 문턱을 넘기 위해 수없이 방문을 시도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여서 '별세계의 투자가'라는 이미지마저 갖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지난 2월 장관급 대표단 방문과 이번 정상외교 사절단 방문에서 민간 금융기관들과 반나절 가까운 시간 동안 일대일 미팅을 갖고 한국 매물과 투자환경을 설명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글로벌 금융진출과 자본거래 등 아직 걸음마 수준인 우리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상외교 등을 통해 물꼬를 터주는 민관협력 모델이 유용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차제에 절실히 깨닫게 됐다.

이번 순방에서 중동 국부펀드들은 한·중 FTA로 완성돼가는 동북아 비즈니스 플랫폼에서 파생될 새로운 비즈니스 공간과 기회에 대해 큰 관심을 표했다.


이번에 형성된 우리 안의 라피끄 관계가 새 민관협력 모델로 소중하게 발전하기를 바란다.

한기원 KOTRA 인베스트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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