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정부, 좁혀지지 않는 시각차
"작년 수준 성장률 충분" 추경 판단은 6월로 미뤄 경제활성화법 지지부진
4월 수출도 8.1% 급감 대통령 남미순방도 조용 더이상 정치에 기대 안해
기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기는 최악으로 치닫는 반면 정부의 경제전망은 낙관적이다. 이른바 시장과 정책 간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재계는 세계적인 교역둔화와 유가하락, 엔저 등에 따라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인 수출산업이 최대 기로에 섰다며 비상경영체제를 가동 중이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성장률에 대한 낙관론을 펼치면서 재계 현장과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수출 주력업종들에 대한 규제완화와 이를 뒷받침할 국회의 경제활성화 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질 경우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도태될 것이란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개혁 골든타임 끝나나" 올해 벌써 희망접은 기업들
"경제지표들은 조금씩 좋아진다고 하지만 실제 체감경기는 여전히 썰렁해요. 정치권이라도 경제활성화 법안을 처리해줘야 하는데, 정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니 미래도 기대하기 힘듭니다."(A그룹 전략기획파트 임원)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엔저 심화, 중국 성장 둔화 등으로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갈수록 얼어붙고 있지만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해 시급히 통과돼야 할 경제활성화 법안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인한 여야 간 정쟁으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가 내놓은 각종 경제활성화 조치에도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엔저로 인해 '수출 한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지난 4월 우리나라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8.1%나 급감했다. 지난 1월 -0.9%, 2월 -3.3%, 3월 -4.3%에서 4월 -8.1%로 감소 폭이 크게 늘었다. 수출 규모 감소에도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했던 수출 물량까지 줄었다. 지난달 수출물량은 0.8% 감소해 수출 동력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공장들도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2월보다 1.5%포인트 하락한 73.6%를 나타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지속되던 2009년 5월 73.4% 이후 5년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으로 제품의 재고는 쌓이고 출하는 안되면서 공장들이 가동을 줄인 탓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의 각종 처방에도 내수 회복이 더디기만 하고, 수출도 맥을 못추면서 기업들이 활력마저 점차 잃어가고 있다"면서 "금리인하든 추경편성이든 간에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정치권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도 이제는 접은 눈치다. 박근혜 대통령의 남미 순방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각종 공공기관과 경제단체, 기업들의 실적 홍보로 떠들썩했던 지난 3월 중동 순방과 달리 이번 남미 순방기간에는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었다.
한 경제단체의 고위 임원은 "남미 순방에 앞서 '성완종 사태'로 힘이 빠진 것은 사실이다. 경제사절단으로 참가한 기업인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며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경제활성화 법안에 대해서도 기대를 접은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실제 4월 임시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150건에 이르지만 지난달 본회의에서 처리된 실적은 한 건도 없다.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관광진흥법.의료법 등 핵심적인 경제활성화 법안이 수년째 국회에 발목을 잡힌 채 58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몰려 있다.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안 역시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사업재편지원특별법(원샷법)과 공정거래법개정안(중간금융지주사법)에 대한 논의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여야가 정치적 현안에 몰두하고 있는 데다 법안 내용에 대한 여야 간 입장차가 매우 커 구체적인 논의가 보류됐다.
■"올 성장률 최소 3.3% 가능" 낙관론 여전한 최 부총리
【 바쿠(아제르바이잔)=조은효 기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과 관련, "보수적으로 봐도 작년 수준(전년 대비 연 3.3%성장)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해선 경제 회복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일부 지표 간 혼조세로 인해 현 상황에선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피력, 대체로 부정적 기류를 형성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제48회 연차총회 및 아세안+3(한·중·일)회의 참석차 아제르바이잔을 찾은 최 부총리는 2일(현지시간) 수도 바쿠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2·4분기 경제성장률이 1%를 넘을 것으로 본다"면서 올해 성장률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최 부총리는 "현 경기 회복 상황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차분하게 지켜보겠다"면서 "현재의 확장적 기조를 더 강화할지, 유지할지에 대해선 상반기 아주 끝무렵(6월 말)에 가서 판단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일단 추경 판단 시점을 6월 말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발표 시점까지 미룬 것이다.
최 부총리는 확장적 재정정책과 관련, "재정건전성 악화, 국가부채 등 여러 측면에서 반대 목소리도 많다"면서 "부총리직 취임하고 나서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은 (확장적으로 예산을 편성)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 정부 지출 규모(예산)를 전년 대비 5.7% 늘린 건 사실상 지난해 실시하지 않은 추경 편성분까지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부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추경 필요성을 시사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시각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정부가 재정에서 좀 더 역할해 줄 필요가 있다"면서 추경논의에 불을 지폈다. 이 총재는 당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4%(1월 전망치)에서 3.1%로 하향 조정한 배경으로 세수 부족으로 인한 정부 재정지출에 차질이 예상된다는 점을 거론했다.
최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우리 측 지분이 "3.5% 수준이냐"는 질문에 "그 언저리 대강 안되겠나 싶은데 산식에 따라 그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지분 순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도록 규칙을 만들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IB 창립국들의 최종 지분은 이달 결정된다. 정부는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예비 창립 회원국 간 4차 교섭대표회의 참석에 이어 오는 20~22일 싱가포르에서 제5차 교섭대표회의에서 지분 문제에 대한 우리 측 입장을 관철시킨다는 계획이다.
ironman17@fnnews.com 김병용 조은효 조지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