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정보통신

'잊혀질 권리' 법제화 신중론 속 찬반 팽팽

김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5.15 17:09

수정 2015.05.15 17:09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가 만들어낸 디지털 세상에서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를 법률로 인정하는 논의가 점화됐다. 그러나 이 권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경우 알 권리·표현의 자유 등 다른 기본권을 침해하는 문제는 물론 해당 정보통신사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반론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잊혀질 권리' 법제화 신중록 속 찬반 '팽팽'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잊혀질 권리'와 관련, 국내 포털 사업자들은 '정보통신망법' 등 현행법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정보 주체가 자신의 정보를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잊혀질 권리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서울 잠실 광고문화회관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주최로 열린 '잊혀질 권리 보장을 위한 세미나'에서도 이를 둘러싼 찬반이 엇갈렸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최성진 사무국장은 "현행법상 정보삭제 권리가 상당히 강하게 반영돼 있는 가운데 추가적으로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며 "현행 법규의 문제점부터 먼저 해결한 다음에 잊혀질 권리를 법제화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임치조치 제도 등 강력한 수준의 개인정보보호 법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심우민 입법조사관도 "2012년 유럽연합(EU)의 GDPR(개인정보보호규칙) 제안과 지난해 유럽사법재판소(ECJ)의 잊힐 권리에 대한 판결에 의해 국내에서도 잊힐 권리 보장 및 법제화 논란이 시작됐다"며 "그러나 이미 우리나라 개인정보 보호법제에도 상당 부분 구현돼 있는 내용이어서 법제화 논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보통신망을 통해 전파되는 정보의 삭제요청은 해당 정보가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특정인의 권리를 침해한 경우에 한해 인정되고 있는 만큼, 개인이 자신과 관련된 내용 또는 과거 자신이 작성한 글 등에 대해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법 찬성론자들의 입장이다. 즉 정보 주체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정보인권국의 김영홍 국장은 "'잊혀질 권리'가 표현되는 제도적 결과는 현행법과 법률의 취지가 다르다"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옹호할 수 있도록 정보 만료일과 열람권을 확장해 정보를 삭제 혹은 보존할 수 있는 개인의 선택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구글, 지난 1년간 삭제 요청 절반 넘게 거절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은 지난 1년간 유럽에서 접수한 삭제 요청 25만여 건 중 자체 심사를 통해 이중 41.3%는 삭제하고 나머지 58.7%는 거절했다고 공개했다. 지난해 5월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인터넷 이용자들의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이후 구글의 조치내용이다.

구글이 삭제 요청을 수용한 사례는 벨기에에서 중(重)범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사람이 항소를 통해 무죄가 확정된 사례였다. 구글은 관련 기사를 삭제해줬다. 라트비아의 시위 현장에서 칼에 찔린 운동가, 10여년 전 사소한 범죄를 저질렀던 독일 교사의 기사 삭제 요청도 받아들였다.

반면 헝가리의 고위 공무원이 수십 년 지난 범죄 관련 기사를 지워달라고 한 경우에 대해 구글은 삭제를 거절했다. 그리고 아동 포르노 사진을 갖고 있다가 교회에서 추방당한 프랑스 성직자, 폴란드 유명 기업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소송과 관련된 기사 삭제 요청도 마찬가지였다.

구글은 "특정인에 관련된 정보가 부정확하거나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살폈고, 대중이 관심을 갖는 사안인지, 범죄와 관련된 경우 유죄 판결을 받았는지 무죄로 판명 났는지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유럽, '삭제권' 명확히 규정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를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EU개인정보보호지침(GDPR)을 제정했다. 여기에는 '잊혀질 권리 및 삭제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보주체는 자신과 관련된 개인정보의 삭제권 및 확산 중지권을 가질 수 있다. 이후 제출된 수정안에서는 '잊혀질 권리'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삭제권'으로 보다 명확히 규정했다. '잊혀질 권리'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불필요한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개인정보의 보호와 관련해 포괄적인 입법을 지양하고 있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글로벌 디지털경제에서의 프라이버시 보호 및 혁신 촉진을 위한 기본구상'을 발표하면서 '소비자프라이버시권리장전'이 마련된 상태다.


이는 개인정보와 관련한 개인의 권리 및 그에 대응하는 기업의 의무를 설정하고 있다. 즉 기업은 개인정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경우 확실히 폐기해야 한다.


최경진 가천대 법과대학 교수는 "인터넷상의 잊혀질 권리는 다가오는 초연결사회 혹은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글로벌 기준에 맞춰 합리적이고 타당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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