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길 잃은 경제, 정치가 살려야 한다
온갖 악재 한꺼번에 쏟아져.. 아베 이전 일본처럼 안돼야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더니 한국 경제가 꼭 그 짝이다. 올 들어 온갖 악재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성장률, 수출, 소비, 환율 등 어느 것 하나 좋은 게 없다. 청년실업은 젊은이들의 미래에 족쇄를 채웠다. 1100조원을 넘어선 눈덩이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목을 죈다. 이런 마당에 가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까지 겹쳤다.
가뭄은 물가를 왜곡시켰다. 지표상 소비자물가지수는 6개월째 1%에도 못 미쳤다. 담뱃값 인상 효과를 빼면 사실상 마이너스다. 하지만 장바구니물가는 다르다. 가뭄으로 작황이 나쁜 양배추·대파·배추 등 생필품 값은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수십, 수백 퍼센트나 뛰었다. 당국이 지표를 볼 때 주부들은 장바구니를 본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표물가는 늘 민심을 자극한다.
메르스 사태는 당분간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주말을 계기로 진정 기미를 보일 것이라던 전망은 희망에 불과했다. 전 국민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르스 사태는 세월호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 가뜩이나 부진하던 소비는 결정타를 맞았다. 카운터 펀치를 맞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6월 첫 주 영화관·놀이공원 입장객은 절반 이상 줄었다. 침체된 소비는 디플레이션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은 메르스 사태가 한 달 지속되면 성장률이 0.15%포인트, 석달 이어지면 0.8%포인트 낮아질 걸로 본다. 올해 2%대 성장률은 거의 굳어지는 분위기다. 오로지 정부(3.8%)만 낙관적인 수치를 고집한다.
정치는 어떤가. 여야는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을 놓고 대치 중이다. 놀라운 무신경이다. 메르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정략을 포기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최고사령관'다운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포기했다고 해서 제 할 일을 다했다고 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문재인 3인이 만나 한 목소리로 메르스 퇴치 공조를 외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책상에 '최종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명패를 놓고 집무했다. 박 대통령이 되새겨야 할 경구다.
경제 회생을 위한 정치권의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다. 눈앞의 정략에만 집착하다간 일본 꼴 나기 십상이다. 다행히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주 위기 경고음을 울렸다. 한은은 메르스 사태를 이유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또 낮췄다. 원래 이 총재가 금리인하에 소극적이란 평가를 받은 것에 비하면 파격적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추경 편성을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국회는 국가경제라는 큰 숲을 보면서 법안을 다뤄야 한다. 아베 신조 총리가 등장하기 전 20여년간 일본 정치인들은 작은 이익을 탐하다 큰 것을 놓쳤다. 이주열 총재가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내린 뜻을 정부와 정치권이 잘 새기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