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노벨상을 향해 뛴다] (2부·⑧)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08 17:42

수정 2015.12.08 17:47

유행 좇지 말고 목표 두지 말고 타협 하지 말라
학문에도 유행이 있다 인기 학문을 하면 사회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출세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풍조가 그렇다. 하지만 노벨상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선 독창적 연구가 중요하다. 깊이 연구되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주제를 파고들어야 한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은 중장기 기술개발을 위해 외부전문가에게 의뢰한 공익재단으로 기업은 재단 운영에 개입하지 않는다. 미국의 '휴스 메디컬 인스티튜트'를 벤치마킹했다. 우리가 가장 신경쓰는 것은 연구자에게 성과를 압박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최선연구지원기관의 역할은 최상의 연구자를 선발,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타협하지 않고, 차선을 택하기보다 최선을 선택한다면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다. 단순하지만 쉽지 않다.
[노벨상을 향해 뛴다] (2부·⑧)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


"정부의 지원이든 민간의 연구든 효율성 있는 투자가 중요합니다. 그동안 연구하지 않았던 독창성 있는 분야와 아이디어를 연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수반돼야 하고 그것에 대해 긴 안목을 가지고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은 8일 노벨상과 같은 연구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독창적인 분야에 대해 효율성 있는 지원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 이사장은 "학문도 유행처럼 누구나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그동안 깊이 연구되지 않았지만 가능성 있는 분야를 찾아 연구할 수 있어야한다"며 "그런 독창적인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인재를 육성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를 위해서 입시 위주의 교육이나 취업을 위한 공부에 매몰돼 있는 사회 분위기도 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취업이나 입시를 위한 학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은 이와 연결되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학문 연구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야 하고 그게 곧 노벨상 인재 배출과 같은 성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어 무엇보다 연구 성과는 단기간에 이뤄지는 게 아닌 만큼 보다 긴 안목을 갖고 인재를 육성하려는 지원 방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벨상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연구를 지원할 때 바람직한 방향은.

▲단기 성과나 목표를 위주로 한 연구 지원은 지양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연구를 지원하는 게 중요하므로 긴 안목을 가지고 연구를 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연구비의 70~80%이상은 현상유지를 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를 선별적인 투자를 하는 데 사용한다. 선별적인 투자는 인력자원을 병행하기도 하고 현자들이 모여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긴 안목을 가지고 가능성 있는 사람들에게 선별투자를 하고 새 분야를 여는 사람들의 독창성을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도 마찬가지다. 연구자들에게 성과를 내놓으라는 압박을 하지 않는다. 논문 성과 배출을 지양하고 평가도 정성적으로 성공하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매년 말에 연구 과제를 선발하기 위한 국내외 전문가 위원들을 선정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도 공정성과 수월성이다. 우수한 연구진들을 공정하게 선정하는 심사위원들을 선발하는 게 관건이다.

연구지원기관의 역할은 기관 자체의 결정보다 학문 별로 국내외 전문가들과 상의해 연구가 필요한 분야를 결정하고, 연구 방향을 설정하며, 전문가들에 의해 최상의 연구자를 선발하고, 그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 중 타협해 차선을 택하지 않고 최선을 선택한다면 반드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론적인 말 같지만 의외로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연구 과제를 선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흔히 학문도 유행을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 소위 말해 남들이 많이 하는 인기있는 학문에 매몰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벨상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독창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안 해본 것을 해보자는 것이다. 순수학문이든 응용학문이든 기존에 있었던 학문이라고 하더라도 깊이 연구하지 않았던 주제나 아니면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학자 본인이 자유롭게 연구 주제와 방향을 정해보도록 한다. 어떤 것을 정말 아주 잘하는 사람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노력만으로는 안된다.

과거 모 학습지 광고에서 '노력만으로는 힘들다'는 문구가 있었다. 연구를 그저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사회제도나 개인들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남이 가지 않은 길, 창의성을 추구하는 데 답이 있다. 남이 생각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열심히 하는 일 말고 나만의 분야를 열어야한다. 단지 노력하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약간은 엉뚱한 사람, 모범생이 아니어도 새 분야를 열고, 자신을 믿고 담대하게 연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을 주위에서도 믿어줘야하고 정부도 믿어줘야 한다.

특히 이들을 시간을 두고 지켜볼 수 있을 때 세계적인 업적이 나온다. 학문이라는 게 짧게는 5년, 길게는 30년까지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학문연구에 대해 기업이 지원하는 경우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기업이 학문을 지원하는 방법은 두 가지 경우가 있다. 기업의 R&D 의 연장선 상에서 지원하는 경우와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공익적인 사고로 지원하는 경우다. 전자는 단기적 기술개발은 회사 내의 연구 개발 부서에서, 중단기적 기술 개발은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방법을 채택한다고 생각한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은 후자의 경우다. 그동안 기업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공익재단을 설립하고, 그 기업이 재단의 운영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경우다. 매년 우리 재단이 기초과학에 지원하는 연구비 총액은 정부 지원의 10분의 1 보다 작다. 하지만 그 동안 재단을 운영하며 정부 지원과 비교해 여러 장점을 발견했다. 정부 지원의 경우는 기본 철학부터, 지원 방법, 구체적 운영까지 모든 과정을 국민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재단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판단하는 경우 빠르게 혁신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연구 과제의 선정, 재단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단순화 할 수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학문의 특성 상 연구지원기관의 빠른 대처가 필요하고, 민간이 운영해 이런 혁신이 쉬웠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노벨상 연구를 지원하는 민간 재단 활동은 어떠한가.

▲대표적으로 미국에 하워드 휴스 메디컬 인스티튜트(HHMI)라는 곳이 있다. 설립한 지 15년 가량된 이 곳은 주로 생명과학과 의학 연구를 지원한다. 하지만 지원 금액이 삼성재단의 5배에 이를 만큼 규모가 크다. 이처럼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개인들이 투자를 하는 재단이 많다. 무어 파운데이션의 경우도 연간 5~10명을 지원하는데 불과하지만 연구 투자를 많이 하는 곳 중 하나다. 물론 전세계를 놓고 봤을 때 민간이 지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재단도 드문 사례 중 하나다.

삼성재단도 처음에는 HHMI를 벤치마킹했다. HHMI에서 연구 지원한 연구자 중 올해까지 무려 19명이 노벨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삼성도 장기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길 기대한다.

[노벨상을 향해 뛴다] (2부·⑧)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


―재단을 통해 연구를 지원하다 보면 애로사항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지원받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연구 결과에 대한 압박을 주지 않고, 작은 성과를 많이 내기보다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큰 성과를 낼 수 있게 도울까 고민이다. 재단에 연구비 지원했거나 지원받고 있는 연구자들, 선정에 참여한 국내외 전문가들, 삼성전자 운영진, 재단 운영진, 직원 모두 지금처럼 철학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삼성재단의 경우 연구진흥 목적의 공익재단으로 삼성전자가 매년 지원비를 주면 그 안에서 선정된 연구자들의 연구가 완료될 때까지 지원한다. 연간 1000억원 가량이 소재기술과 IT창의과제 부분에 지원되고 500억원 정도는 기초과학에 투자한다. 10년간 1조5000억원을 출연해 연구가 이뤄진다. 이는 앞서 언급한 HHMI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규모다. 핵심은 이런 투자가 결실을 맺을 수 있게 좋은 연구자들을 선발해 지원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재단은 지난 2013년 8월에 발족해 지금까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고르게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이제 발족한지 2년이 넘었기 때문에 이제는 보다 큰 목표를 갖고 효율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 관심이 덜 하거나 비인기 분야도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 조금씩 실험해보면서 시도해보고자 한다.

―최근 학계에서 기초과학 연구나 지원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산업 경쟁이 심해지며 각 나라가 단기적 성과를 중시해 기초과학처럼 성과가 서서히 나오는 학문에 대해 투자를 줄이고 있다.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동력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에너지 집약적인 정보·전자 산업 시대로의 변화를 열게 된 데는 물리학자, 화학자, 생물학자들의 기여가 컸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는 것 이다. 그 시절에는 기초과학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나라는 물론 우리도 10년 또는 50년 뒤의 산업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므로 기초학문은 여전히 중요하다. 정부도 국민도 이를 이해해주고, 과학자 자신들도 계속 설득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과학에서 짧은 시간 내에 산업화까지 이루는 예도 몇 개 보여줄 수 있다면 더욱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노벨상 인재를 배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노벨 수상자가 배출되지 않는 것은 누구 한두 사람, 한두 그룹의 잘못이 아니다. 이는 사회 전반의 문제다. 호기심을 죽이는 선행 학습, 생각하는 교육보다 문제 풀이 형태의 초중등 교육, 구직을 위한 대학교육, 사회적 출세를 지향하는 사회 풍조가 좋은 학생들이 과학자에 지망하는 숫자를 줄게 만들었다. 과학자가 된다고 해도 연구소, 대학 등에 취직하기 위해 단기적 성과를 내기에 바빴고 연구비를 얻기 위해 많은 성과 도출이 필수적이었다. 학자로서 과학 자체를 즐기며 어려운 난제를 오랫동안 풀려고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생각한다. 정부나 우리 민간 재단이 과학자들을 지원하고 오래 참고 기다려 준다면 우리가 노벨상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분위기가 순수하게 학문을 연구하기 어렵다는 게 현실이다.

▲흔히 현실적인 것과 학문적인 것은 상반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러니다. 학문을 깊이 하다보면 실용적인 것도 할 수 있다. 학문과 실용은 서로 연결이 된다. 예를 들어 연구중심대학 교수를 채용할 때 연구를 잘하는 교수를 채용한다. 교육을 잘하는 교수보다는 연구가 먼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연구를 잘하는 교수가 곧 교육을 잘하는 교수다. 연구를 잘하는 사람은 창의적인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지식보다는 창의성을 보여줌으로써 학생들이 배울 수 있다. 연구와 교육을 분리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학문에 대한 연구가 실질적인 취업이나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둘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연구를 위축시킬 수 있다. 취업 등 실용적인 성과를 위한 공부와 학문 연구를 위한 공부가 동떨어진 게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노벨상 인재 배출과 관련해 조언을 한다면.

▲정부든 민간 연구든 효율성이 중요하다. 제일 중요한 게 어떻게 투자하느냐와 아이디어(정보)다. 방향설정과 투자에서도 기존 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세대를 시작하는 혁신성이 중요해진 시점이다.
전산과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기존 지식을 취합하는 것은 쉬워졌지만 여기에 새로운 걸 더하는 건 어려워졌다. 이를 위해 제도적 혁신이 있어야 한다.
노벨상도 그런 아이디어를 시작하는 혁신성이 중요하다.

jiany@fnnews.com 연지안 기자
특별취재팀 정명진 팀장 최갑천 이설영 김미희 박세인 고민서 기자
국양 이사장은…

△62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물리학 박사 △미국 AT&T Bell 연구소 연구원 △서울대학교 연구처장 △과학기술위원회 나노전문위원 △산업자원부 나노기술산업화위원회 위원장 △미국, 영국, 한국 물리학회 펠로 △2006년 국가석학 지정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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