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혁의 눈] (상) 금연구역은 있는데 흡연구역은 왜 없는 거죠?

이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28 09:00

수정 2017.05.28 10:23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금연 구역이 점차 확대되면서 흡연자들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 흡연구역을 찾기 어려워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우거나 범죄자 취급을 당할 때도 있다. 정부는 담뱃갑에 경고 그림까지 부착하며 금연 정책에 애쓰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실제로 2015년 담뱃세가 인상되면서 주춤하던 담배 판매량도 다시 늘었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5년 667억 개비 팔렸던 담배가 지난해에는 729억 개비 팔려 9.3% 증가했다.

2014년 7조가량 되던 담배 세수는 2015년 10조 5000억, 지난해에는 12조가 넘었다.
담뱃세 인상은 흡연율을 낮추기보다는 정부의 곳간만 배불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거둬들인 세금은 금연 정책에만 써야 하는 것일까?

금연 정책에는 공감하지만 담배를 무조건 못 피우게 하는 것은 오히려 반발만 일으킬 뿐이다. 담배 판매는 법으로 제재하지 않으면서 흡연자들의 흡연권은 왜 보장하지 않는 것일까?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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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금연구역 24만 곳 vs. 흡연구역 43 곳

지난해 서울시가 지정한 금연구역은 244,439곳이다. 2015년 119,555곳에 비하면 2배 더 늘었다.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가 27,152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서초구(15,705곳), 마포구 (13,032곳), 송파구 (12,598곳), 영등포구 (12,467곳) 순이었다. 성동구가 5,984곳으로 가장 적었다.

반면에 흡연구역은 올해 3월 기준으로 43곳에 불과했다. 흡연구역은 종로구 2곳, 중구 7곳, 용산구 2곳, 성동구 3곳, 광진구 2곳, 서대문구 6곳, 마포구 1곳, 구로구 1곳, 서초구 7곳, 강남구 3곳, 송파구 9곳이었다. 11개 자치구에만 흡연구역이 설치된 것이다. 서울시가 지정한 흡연구역은 흡연부스가 갖춰져 있는 곳을 뜻한다.

금연구역만 늘고 흡연구역이 부족해 흡연자들이 길거리로 몰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흡연자들은 ‘금연구역 표시가 없는 곳에서는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입장이지만, 비흡연자들은 ‘흡연구역이 아닌 곳은 모두 금연구역’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서로의 견해차가 분명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금연구역은 법으로 제정되어 있지만, 흡연구역은 신고나 허가 상황이 아니다”라며 “시설 소유자나 관리자가 자율로 설치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흡연부스가 설치된 곳이 43곳이지만 실제 흡연구역은 서울에만 1만 곳 정도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라고 말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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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연, 강제사항 아냐.. 흡연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 필요”

문정호(가명·35)씨는 담뱃값 인상에 피우는 횟수가 줄긴 했지만 15년째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다. 그러나 요즘은 흡연할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 많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길거리나 건물 뒤편에서 종종 피운다.

문씨는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것은 좋지만 동시에 흡연구역 설치도 병행되어야 한다”며 “흡연구역을 무작정 없애는 것은 흡연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흡연구역이 없으니 금연구역인 줄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되는 경우도 있다”며 “금연은 강제시킨다고 되는 아니기 때문에 흡연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문씨는 흡연자를 범죄자라고 인식하는 사회적 인식에 대해 “간접흡연의 폐해는 누구나 공감하는 사안”이라며 “흡연구역이 많아지면 길거리나 버스 정류장 등에서의 흡연율은 자연히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금연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지정된 장소에서만 필 수 있도록 흡연문화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담뱃값 올랐다고 흡연율이 줄어들지 않았듯이 억지로 못 피게 하는 건 효과가 없다”고 전했다.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한 김주홍(가명·33)씨는 흡연을 할 때마다 흡연구역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1~2분간의 흡연을 위해 몇 십분 동안 흡연구역을 찾아다니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금연구역이 확대되면서 흡연자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에 대해 “비흡연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금연구역을 지정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흡연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을 비흡연자를 위해서만 쓰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은 금연구역이 늘어서가 아니라 흡연자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1920년대 미국에서도 무분별한 음주로 인한 사회적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금주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범죄가 줄어들지 않고 또 다른 형태의 범죄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에 술은 판매하면서 금주구역 24만 곳, 음주구역 43곳을 지정한다면 술을 소비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모두를 포용하고 잘 만들어진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냐”며 반문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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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연구역 조성, 흡연자보다 비흡연자가 더 원해

국민 10명 중 8명은 ‘길거리에 흡연구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79.9%가 ‘길거리 흡연구역 조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의견은 20.1% 불과했다. 주목할 점은 흡연구역 조성을 찬성하는 비율이 흡연자들(77%)보다 비흡연자들(80.6%)이 더 높게 나왔다. 실내외 금연구역이 늘어나면서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흡연자들 때문에 비흡연자들이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서울시가 시민 7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75.9%가 ‘금연구역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흡연공간은 40.5%가 ‘폐쇄형’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지붕과 벽면이 절반 이상 개방된 반 개방형’ 37.0%, ‘화단 같은 녹화 공간에 개방형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대답은 22.4%를 차지했다.

응답자 48.4%는 금연구역으로 지정되길 원하는 곳으로 명동 인사동 등 ‘관광객이 많은 지역’을 꼽았다. 이어 여의도 강남 등 ‘사무실 밀집 지역’ 20.9%, 남대문 동대문 등 ‘전통시장 밀집 지역’ 16.5% 순이었다.

금연구역 확대처럼 흡연부스나 흡연구역을 늘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흡연자는 흡연권이 보장되고, 비흡연자는 길거리나 버스 정류장 등에서 간접흡연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금연구역 이외에는 흡연구역이나 다름없다”며 “눈에 보이는 것이 적을뿐 실제로는 금연구역이 흡연구역에 비해 훨씬 적다”고 말했다.
이어 “금연구역은 국가에서 법으로 지정하거나 지자체에서 개별적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국가에서 지정하는 곳이 90% 이상 된다”며 “흡연구역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지자체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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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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