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김포공항
김포벌에 비행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일제 치하인 1939년이었다. 지금은 서울특별시 강서구로 편입됐지만 당시의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김포군 방화리 일대였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대륙에서 가까운 이곳에 비행훈련장이 필요했다.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여기서 가미카제 특공대를 양성했다. 6·25전쟁 기간에는 유엔군사령부 관할로 넘겨져 미국 공군의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제가 한반도에 지은 비행장은 김포가 처음이 아니다. 이보다 훨씬 앞선 1916년 여의도에 비행장을 건설했다. 표면상으로는 민간항로 개설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대륙 침략을 위한 교두보였다. 1922년 한국 최초의 비행사로 알려진 안창남이 이곳에서 서울 시민에게 시범비행을 선보이기도 했다. 1971년부터 여의도 개발이 시작되면서 여의도공항은 공군기지 기능을 성남공항에 넘겨주었다.
김포비행장이 온전히 국민 품으로 돌아온 것은 1958년이다. 여의도공항의 국제선 기능을 넘겨받으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공항이 된다. 이후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자 비약적 성장기를 맞았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외국인 입국자가 급증했다. 내국인의 해외여행도 빠르게 늘어났다. 그러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김포공항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항공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2001년 영종도에 바다를 메워 인천국제공항을 개항했다. 김포공항은 인천국제공항에 대한민국 대표 공항 자리를 넘겨주고 국내선 공항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다.
그러나 김포공항은 제2의 도약기를 맞는다. 일본 도쿄·오사카와 중국 상하이를 연결하는 셔틀노선을 유치하면서 국제공항 면모를 되찾았다. 인천국제공항보다 서울 도심으로부터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 동아시아 인구밀집 지역 거대도시들을 연결하는 비즈니스 셔틀공항으로 거듭나고 있다. 김포공항은 국내선 8개 노선과 국제선 3개국 5개 노선에서 연간 2500만명(2017년)을 실어나르고 있다.
김포공항은 지난 세기 우리 민족과 영욕을 함께해온 근현대사의 산증인이다. 5일로 개항 60돌을 맞아 또 한번 도약을 이뤄내기를 기원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