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확인해봄] '30분에 몇 명?'.. 올해 연말은 따뜻할 수 있을까

조재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01 14:11

수정 2019.01.07 11:05



'기부포비아(寄附phobia)'라는 말, 들어본 분들 있으시죠? 기부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기부를 꺼리게 되는 심리 상태를 말하는 신조어인데요. 지난해 4년 동안 모은 기부금 128억 원 중 126억 원을 횡령한 '새희망씨앗 사건'과 후원금 12억 원을 탕진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실체가 조명된 뒤 이 표현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이후 기부금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알 권리가 있다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지난해 23일 행정안전부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개정안은 기부 모집 현황, 사용 내역 등이 '알 권리'로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이 안이 통과되면 모금하는 쪽이 기부금품 모집을 완료했거나 기부금품을 사용할 때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 30일 이상 게시(기존 14일)하게 됩니다.

하지만 돌이키기엔 늦었던 걸까요? 시민들의 반응은 다소 회의적입니다.
30대 직장인 A씨는 "큰 돈을 다 잃어버린 뒤에 조치하는게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50대 자영업자 B씨는 "늦게나마 개정안이 발의돼 다행이지만 통과되기 전까지 모르는 일"이라며 하루빨리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죠.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울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자선냄비에 한 어린이가 기부하고 있다. 사진=해당 영상 갈무리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울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자선냄비에 한 어린이가 기부하고 있다. 사진=해당 영상 갈무리

■30분 동안 명동·서울역 자선냄비에 몇 명이 기부할까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울역과 명동 예술극장 앞 자선냄비를 찾았습니다. 서울역은 해마다 자선냄비 모금액 2위에 오른 '명당'입니다. 몇년 전까지 1위를 고수하던 명동도 아직 5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난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모금액이 모인 곳은 잠실 롯데월드 지하였고, 서울역과 청량리역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구세군에 따르면 올해도 이 세 곳이 1, 2, 3위를 유지할 거라고 하네요.

크리스마스는 '집중 모금 기간'인 12월 중에서도 거리모금이 증가하는 시기입니다.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두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30분 동안 몇 명이나 기부하는지 확인해봤는데요. 서울역 자선냄비는 18명, 명동은 7명이었습니다. 각각 1분 40초 당 1명, 4분 17초 당 1명꼴이었습니다.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 같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모금액을 살펴보면 지난달 19일까지 한국구세군이 모금한 액수는 모두 27억 5700만 원입니다. 최종 모금액은 이번주 말쯤 집계될 것 같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27억 원은 거리모금과 기업모금을 포함한 금액인데요. 2017년 같은 기간 대비 16.07% 줄었습니다. 구세군 관계자는 "해가 갈수록 체감상 기부하는 분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며 "올해 최종 모금액도 작년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전망했습니다.

구세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은 12월 24일 기준 38.4도를 기록했는데요. 지난해 11월 20일부터 12월 21일까지 모인 금액은 전년도 같은 기간의 82%밖에 안됐습니다.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수도 2016년 422명에서 지난해 338명으로 줄었습니다.



■내가 낸 만 원은 어디로 갔을까

앞서 기부금품의 사용처가 보다 명확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전공생인 유튜버 김다은(킴닥스) 씨는 최근 '내 만원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NGO 단체 지파운데이션 직원들의 하루를 따라다니며 기부 및 후원금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직접 확인해본 것인데요.

다은 씨에 따르면 이곳은 쪽방촌 어르신들을 위한 난방·방한용품 지원, 여성 보호자가 없어 생리를 두려워하는 저소득 여성 청소년을 위한 생리대 지원 사업, 미혼모 생계비와 교육비 지원 사업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NGO 지파운데이션은 독거노인, 미혼모, 저소득층 여학생 대상 후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다은 씨 제공
NGO 지파운데이션은 독거노인, 미혼모, 저소득층 여학생 대상 후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다은 씨 제공

지난 1997년 IMF 사태 이후 전국에 약 5000개에 달하는 쪽방이 생겨났습니다. 지파운데이션 담당자들은 쪽방 상담소와 연계해 후원물품을 직접 쪽방촌에 거주하는 독거노인에게 전달했습니다. 지역 아동센터와 연계해 생리대와 생필품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전달받은 물품은 각 센터가 아이들에게 지급하죠.

작은 후원금이라도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자발적인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는데 도움될 수 있습니다.

■'참여형 후원 확대'·'노블레스 오블리주'.. 기부 활성화 방안은?

한 쪽에서는 참여형 후원 캠페인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학생 D씨는 "최근 연탄봉사를 다녀왔는데 힘들었지만 고마워하는 분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 트위터를 통해 만난 많은 분들과 함께 기부사진전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작품 판매금을 기부하는 행사여서 구로구 소년소녀가장과 국립소아암센터에 전달했었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뜨개질로 모자와 양말을 만들어 전달하는 캠페인, 기부 목적으로 바자회나 플리마켓을 개최하는 등 방법은 다양합니다. 후원한 만큼 리워드가 돌아오는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과 정부의 사회적 공헌이 보다 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느낄 수 있는 사례도 많아져야 합니다. 이런 의견은 모두 기부 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변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습니다. 사진=해당 영상 갈무리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변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습니다. 사진=해당 영상 갈무리

지난 연말, 자선냄비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눔의 손길을 전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3세 자녀를 둔 E씨는 "각박한 세상이지만 어려운 사람은 도와야 한다는 걸 교육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종로에서 만난 한 시민은 "현실은 힘들어도 올해는 더 따뜻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의 의견이지만 어쩌면 새해를 맞는 우리 모두의 소망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영상 촬영=양문선
영상 편집=조재형

ocmcho@fnnews.com 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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