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경제

[2019 글로벌 리포트] 日예산 1000조 시대, 아베 '두번째 화살' 계속 쏜다

최승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02 17:23

수정 2019.01.02 17:23

아베노믹스의 명암
2012년부터 경기확장세지만 "실질적 호황 아니다" 비판도
10월 소비세 인상 앞두고 재정지출로 소비축소 방어
기업 주도 성장세 이어가지만 가계 소비·투자 회복되지 않아
초고령화로 재정균형 어려워져..100조엔 예산 재정건전성 해쳐
[2019 글로벌 리포트] 日예산 1000조 시대, 아베 '두번째 화살' 계속 쏜다


[2019 글로벌 리포트] 日예산 1000조 시대, 아베 '두번째 화살' 계속 쏜다


[2019 글로벌 리포트] 日예산 1000조 시대, 아베 '두번째 화살' 계속 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 도쿄=최승도 기자】 일본 예산이 올해 사상 최초로 100조엔을 넘겼다. 이 중 2조엔은 '경제안정자금'이라고도 불린다. 오는 10월 소비세 인상을 예고해 놓은 일본 정부는 가뜩이나 늘지 않고 있는 소비에 소비세 인상이라는 악재까지 예고하면서 경제안정용 예산을 별도로 둔 셈이다. 2조엔 중 65%는 국토 정비 공사에 쓰일 예정이다. 아베노믹스가 지난 6년간 추진해온 '두번째 화살(공공사업 재정지출 확대)'의 연장선인 셈이다. 재정지출로 소비세 인상에 따른 소비축소를 막아보겠다는 예산편성으로 풀이된다.


올해 한국도 '경제정책 기본방향'에 "전 공공시설(도로·철도 등 53종 시설) 민자사업 추진"을 추가했다. 문재인정부의 지난 경제정책 기본방향에서 대형 인프라 사업 계획은 스마트공장, 스마트팜이 전부였지만 내년 공공시설 투자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세계 경기의 내리막길이 예고된 2019년은 '기업 먼저'를 내세운 아베노믹스와 '사람 먼저'를 내건 J노믹스가 공사 현장에서 조우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2일 현지 주요언론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확정된 올해 일본 예산은 7년 최고치를 경신해 101조4564억엔(약 1030조원)에 달한다. 이 중 1조3475억엔이 자연재해를 막는 국토정비에 쓰인다. 또 무현금결제(캐시리스) 시 소비세 인상분 5%포인트 환급을 위해 2798억엔과 구입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결제할 수 있는 '프리미엄' 상품권(1723억엔) 등 총 2조엔이 경기 하락 대책비로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공사로 경기침체 대비 나서

일본에서 2012년 12월부터 시작된 '경기확대' 추세가 지난해 말까지 73개월 이어졌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최장기간 확장기였던 2002년 1월~2008년 2월의 73개월 연속 경기확장세(이자나미 경기)와 동일한 기록이다. 경기회복이냐 후퇴냐에 대한 최종 판정은 일본 내각부에서 1년~1년 반 뒤에 내놓게 되는데, 올 1월까지 경기회복세 지속으로 판정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간 호황의 기록도 새로 쓰게 된다.

그러나 내수경기가 아직 확실하게 살아나지 않았고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았으며, 소비가 크게 늘지 않고 있어 일본 경기 호황이 실질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올해는 소비세 인상이 예고돼 있어 소비 감소에 대한 대비가 절실한 게 현실이다.

국토정비 예산이 경기대책비로 분류될 수 있는 이유는 아베노믹스 '두번째 화살'로서 공공부문에 돈을 붓는 '적극적 재정 정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베 내각은 2013년 동일본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20.2조엔을 투입한 이후 지난해 공공사업 부문 세출로만 73.9조엔을 썼다. 공공사업 재정 확대는 양적·질적완화(QQE), 규제개혁과 더불어 아베 내각이 재집권 초기부터 시행한 대표적인 경기 부양책이다. 그러나 2014년 4월 일본 정부가 소비세율을 17년 만에 8%로 3%포인트 올리자 개인 소비가 급감하고 경제 전반으로 충격이 퍼졌다. 같은 해 2·4분기 실질 국민총생산(GDP)이 전년보다 7.1% 감소해 동일본대지진 이후 최대 타격을 입었다. 여러 지출 분야 중 민간 소비의 GDP 기여도가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

2015년 추가 소비세 인상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아베 총리는 해당 결정에 대한 승인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중의원 해산이라는 강수를 두기까지 이르렀다. 당시 아베 총리는 "10월 소비세율 인상을 18개월 미루고 다시 18개월 연기하지 않겠냐는 말이 들리는데, 다시 연기할 일은 없다고 단언한다"고 했지만 증세는 결국 4년 뒤인 올해로 연기됐다.

■소비세 인상 감당할 체력은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일본이 2014년 소비세 인상을 연기하자 같은 해 12월 국가채무 리스크를 지적하며 일본 신용등급을 'Aa3'에서 'A1'으로 한 단계 강등했다.

일본 재정적자 수준은 이미 매우 높고 현재 고령층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위한 지출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재정균형 달성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실제로 2018년 일본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소비세를 올린 2014년보다 0.1%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쳐 236%를 기록했다. 채무 수준이 미국(108%)의 2배수가 넘었다.

전문가들은 일본 소비세 인상 전까지 개인 소득이 안정적으로 올라야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노구치 아사히 센슈대학 경제학 교수는 지난해 4월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재팬 칼럼에서 "소비세를 올리려면 적어도 임금상승이 물가상승폭을 넘고 실질임금이 노동생산성 상승을 반영해 오르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사히 교수에 따르면 1989년 당시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내각이 소비세 3%를 도입했을 때는 버블경제 정점이라 명목임금이 전년 대비 상승(+4.7%)할 수 있었다. 자산가격은 급등했지만 인플레이션은 억제됐기 때문에 실질임금도 상승(+1.8%)했다는 주장이다. 세금 인상이 소비에 큰 타격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최근 일본 경제는 고용증가와 임금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점차 인플레이션도 상승세를 띠고 있지만 중앙은행 물가 목표치(2%)를 찍고 정부가 기업에 요구하는 임금상승률(3%)도 달성하는 '선순환'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아사히 교수의 견해다.

■"先기업→善순환"

아베노믹스가 바라보는 선순환은 기업에서 출발한다.

2014년 아베 총리는 기업수익 증가→고용확대→임금상승→소비확대→경기회복 '선순환' 밖에는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소비세 인상 시기를 결정하기 위해 개인소비를 무엇보다 주시해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같은 해 2·4분기 개인소비가 전년 대비 2% 감소한 상태에서 소비세 인상은 디플레이션(저물가 탈피) 달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 경제체력으로는 '수요 충격'을 한 차례 더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이기도 했다. 3년간 직진하던 아베노믹스가 '소비확대'에서 제동이 걸린 순간이었다.

■소비 회복은 더뎌

아베 내각 재집권 이래 경기 전반은 소비세가 불러온 '수요 쇼크'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확장세를 보여왔다.

'대담한 완화정책'의 일환인 QQE를 시작으로 마이너스금리(-0.1%), 수익률곡선 통제 정책이 차례로 도입되자 엔·달러 환율과 닛케이지수는 자주 같은 방향으로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단기 금리는 통화완화 기조에서 하락을 거듭했다. 이후 2015년 닛케이지수는 아베 재집권 초기의 2배 수준인 2만선까지 치솟았다. 실업률은 2017년 2월 기준 2.8%를 기록해 22년 최저점을 기록했다. 구직자 한 사람당 구인자수 비율인 유효구인배율은 1.43배로 늘어나 25년 만에 최고점을 나타냈다. 적어도 기업호황→고용증가에 이르기까지는 일자리 등 일부 관련지표가 호조세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에 따라 증가 흐름을 보여야 할 개인소비가 횡보세를 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본 생명보험사 닛세이 산하 기초연구소는 지난해 하반기 수출(+5.6%), 설비투자(+3.4%)가 연평균 증가세를 보인 데 비해 개인소비는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면서 "아베노믹스 경기는 기업부문이 주도하는 성장이며 가계부문(소비, 주택투자) 회복력은 약하다"고 지적했다. 가계 가처분소득이 늘어야 개인소비 증가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완화 정상화 정도는

최근 일본 재무성은 국채를 129.4조엔 발행해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4.8조엔 줄인다고 발표했다. 만기 20년 이하 국채는 매달 약 1천억씩 발행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면서 시장참여자 수요에 따라 내년 국채 30년물과 40년물 발행 규모는 축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재무성은 6년 연속 국채발행 규모를 줄였지만 일본 국채 투자자 사이에서는 이미 반영이 끝난 재료라는 인식이 강하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일본 정부 예산 100조엔 편성이 일본 재정건전성을 악화시켜 향후 매도 요인으로 주목할 만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0.1%로 유지해 2016년 이후 마이너스금리를 이어가고 있다.

한 일본 정부기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한국 사회와는 달리 일본에서 은행은 금고를 지키는 역할 이상이 아니다"라며 "이자비용에 들어가는 돈을 아낀 기업은 연구개발(R&D) 여력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은행도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통화완화 기조 지속에 따른 금리수익 기회비용 손실에 대한 비판도 있다.

■'빚잔치' 비판도

일부 현지 주요 언론은 일본의 '100조엔 예산 국가' 진입을 비난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소비세 증세 대책비 2조엔은 예상되는 징수액을 넘는 '진수성찬'"이라며 재무성이 형편을 모르고 예산을 키워 증세의 재정건전화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했다.

산케이신문도 이번 경기대책이 '퍼주기'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소비세를 올렸던 2014년 진입수요(가격인상·판매종료 전 몰리는 수요)와 수요 반락 때문에 장기화된 경기침체를 의식해 만든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참의원 선거 전 표심을 얻고자 하는 속내도 있다고 봤다.

개방경제 국가인 일본은 올해 미·중 무역전쟁 추이, 국제 석유시세, 지정학적 리스크 등 수출 관련 변수에 여전히 노출돼 있는 상황이라 이를 주시하면서 내수 관련 정책을 조율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일자리안정자금, 일본은 임시특별조치 예산으로 올해 경기를 방어할 예정이다. 전자는 '선회'에, 후자는 '직진'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는 셈이다.
어떤 정책이든 잘못된 경로에 들어서면 수정이 불가피하지만 그 비용은 결국 누군가가 치를 수밖에 없다.

sdc@fnnews.com 최승도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