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학생 간 성폭력에 고통받는 아이들 "학교 가기 두려워요"

신민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6 07:18

수정 2019.01.26 07:18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 지난 2013년 울산의 한 초등학생이 후배 남학생들을 성추행해 관내 교육청이 조사에 나섰다. 가해학생은 피해자의 집이나 공중목욕탕 등지에서 음란물을 보여준 뒤 따라하게 하거나 강제로 신체접촉을 하는 등 성행위를 강요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가해학생은 전학했다.

학생 간 성폭력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인 성추행은 그 경각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반면 이런 범죄는 아직 수면 위로 오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해마다 증가하는 학생 간 성폭력.. 초등학교가 되레 심각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심의현황’에 따르면 학폭위에서 다뤄진 성폭력 심의건수는 2013년 878건에서 2017년 3622건으로 약 4배 증가했다.


중학생 성폭력 심의건수는 4년 새 3배, 고등학생은 4배 오른 반면 초등학생은 2013년 130건에서 2017년 936건으로 약 7배 늘었다. 성의식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나이에 이뤄지는 성폭력은 오히려 심각해지는 것.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초·중학생 1629명을 대상으로 설문했을 때도 2.4%가 성적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고 답했고 이 중 피해자 90% 가량이 초등학생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소극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학교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만큼 도움을 청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생 김지희(가명) 양은 “도움을 청할 수단이 없는 게 아니라 피해사실을 알릴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라며 ”가해자들과 하루 대부분을 함께 보내게 되는데, 피해 학생이 이를 적극 알리기에는 그들에게 노출돼 있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2010년 여성가족부 성폭력 실태조사에서 ‘성폭력을 당한 적 있다’고 답한 응답자에게 피해 장소를 물었더니 43.9%가 학교 교실 안이라고 말했다. 교실 외 교내공간도 19.7%였다.

이렇듯 학생 간 성폭력 절반 이상이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다. 외부로부터 학생을 보호해야 하는 울타리가 되레 내부 성폭력을 가두는 벽이 된 셈이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피해학생 일생에 걸쳐 성폭력 후유증.. 가해학생 처벌은 미흡

어린 나이에 당하게 되는 성폭력은 후유증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 심할 경우 평생에 걸쳐 신체적·정서적·사회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성가족부 성폭력 실태조사를 맡았던 조사팀 관계자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후유증 연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우울”이라며 “기본적인 인격형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유아 및 학령전기 아동의 경우 더욱 광범위한 정신적 손상을 입게 되며 전 생애에 걸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걸로 보고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가해학생을 처벌하거나 이를 예방하기 위한 대응책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가해학생이 14세 이상인 경우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10~14세일 경우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이 경우 보호관찰관의 보호관찰이나 소년원 송치 등의 처분이 이뤄진다.

이보다 어린 나이에 성폭력을 가한 경우네는 형사 처분을 받지 않게 된다. 학교 폭력의 일종으로 간주해 학폭위가 처벌을 결정하지만 일각에선 관련 처벌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도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여성동행정책부 정혜원 연구위원은 “학교 내 성폭력 예방교육은 의무화돼 있으나 강당에 모여 대규모 집단강의를 하는 등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면서 “독일의 경우 아동대상 폭력예방 교육은 상황극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다양한 학교폭력 교육방식을 통해 학생들의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또 “성적 괴롭힘은 단순히 억제할 수 없는 성적 충동을 기반으로 발생하는 신체와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이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여학생은 신체의 중요성과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가 중요하다는 교육이, 남학생들은 양성평등한 성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smw@fnnews.com 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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