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성폭행 피해자도 똑같은 사람인걸요"

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02 09:59

수정 2019.11.14 20:26

[성폭행 피해자의 입은 누가 막았나? ③]
7살때 부터 약 10년간 친족 성폭행당했던 피해자 인터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사회 시선 두려워"
"내 잘못 아닌 거 알지만 '막을 수 없었을까'라는 죄책감이…"
"성폭행 피해자도 연애하고 결혼한다…같은 사람일 뿐"
"왜 8년 동안 참았을까요? 피해자가 더 이상하네요"

위 글은 '한집에 살던 처제를 8년간 90여 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40대' 기사의 댓글이다.

댓글은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뤘지만 피해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눈에 띄었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성폭행 피해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

성폭행 피해자는 말그대로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해야 한다.

지난달 29일 서울해바라기센터에서 성폭행 피해자였던 서지수(가명) 씨를 만났다.

지수 씨는 7살 때부터 약 10년간 이복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지수 씨가 19살이 돼던 해 친언니에 의해 겨우 성폭행 사실을 알릴 수 있었지만, 부모는 이복오빠 편에 서 변호사를 고용했다. "그래도 오빠인데 전과기록을 남길 수 없지 않냐"는 이유였다.

지수 씨는 법정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현재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만나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는 "내가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에 대해 여전히 사회의 시선이 두렵다"면서도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성폭행 피해자의 한 사례로 지수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달 29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해바라기센터에서 친족 성폭행 피해자였던 서지수(가명) 씨를 만나 성폭행 피해자로서의 삶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수 씨의 개인정보를 위해 사진은 찍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해바라기센터에서 친족 성폭행 피해자였던 서지수(가명) 씨를 만나 성폭행 피해자로서의 삶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수 씨의 개인정보를 위해 사진은 찍지 않았다.

-왜 성폭행 신고를 하지 못했나?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두려웠다. 특히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많이 걱정됐다. 10년 가까이 성폭행을 당했지만 내가 성폭행 피해자라는 걸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신고하면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도 아는데, 신고할 수가 없었다. 피해자가 돼보지 않고선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고하게 됐나?

▲자의로 신고한 게 아니었다. 평소 나는 가해자였던 이복오빠를 함부로 대했다. 내가 이렇게라도 저항하면 성폭행하지 않을거라는 방어기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사정을 모르고 나만 못됐다고 비난하더라. 가해자인 이복오빠가 아니라 내가 비난받은 거다. 내 편인 줄 알았던 언니마저 나를 비난하자 울컥하는 마음에 이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터뜨렸다.

-언니가 신고한 건가?

▲그렇다. 언니가 성폭행 사례를 알아보고 해바리기센터에 연결시켜줬다. 사실 나는 센터에 오기 싫었다. 경찰조사를 받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센터에 와서 상담받으면서 많이 치유될 수 있었다. 반강제로 온 거였지만 굉장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가족들은 어땠나? (지수 씨의 아버지는 친부였지만, 어머니는 지수 씨와 이복오빠의 친모가 아닌 아버지가 세 번째 혼인한 사람이었다.)

▲성폭행 사실을 알렸을 때 엄마와 아빠는 고소를 취하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래도 오빠인데 전과기록을 남길 수 없지 않냐'는 이유였다. 그때 엄마와 아빠가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고 나를 위로해줬더라면 고소를 취하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렸고 엄마와 아빠에 대한 상처가 컸다. 지금도 내가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이유 중 절반은 엄마와 아빠가 했던 모진 말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치유될 수 있을까?

▲안될 거 같다. 아직도 가끔 성폭행당한 일이 꿈에 나온다. '이복오빠가 출소해서 보복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도 있다. 스스로 아무리 괜찮다고 다독여도 응어리 같은 상처는 남아있는 거 같다. 일상생활을 하고 나 자신에게 떳떳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내가 정말 잘못한 게 없었을까? 하는 죄책감이 자꾸 든다.

-죄책감?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넌 잘못한 게 없어"였다. 그런데 '내가 정말 잘못한 게 없나?"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한다.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짧은 바지 입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계속 든다.

-본인 잘못이 아니지 않나.

▲알고 있다. 하지만 술을 먹거나 감정적이게 되면 자꾸 죄책감이 든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배워서 아니까 이성적으로 죄책감을 억누를 뿐이다. 아직도 술을 먹으면 친구들한테 "그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성폭행을 안 당했을까" 묻는다고 하더라.

-친구들이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

▲처음에는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겐 말하기로 결심했다. 죄책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과거에 대해 말하는 게 나 자신이 떳떳해지는 방법이라고 스스로 정한 거 같다. 주변에서 가끔 말하지 말라고 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내가 창피한가" "더럽나"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러 이런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더 당당하게 말한다. 어떻게보면 당당한 척일지도 모르겠다.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여론을 의식하나?

▲나도 성폭행 피해자이다보니 관련 기사가 나오면 댓글 가끔 본다. 그런데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옹호하는 댓글이 많아서 마음이 아프다. 이런 반응은 피해자가 신고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이미 신고한 나도 댓글을 보면 가슴이 내려앉는데 신고 못한 사람은 얼마나 아프겠나. 세상에 내 편이 없는 거 같은 고립감을 느낄 것 같다.

-피해자로서 힘이 됐던 일이 있을까?

▲그래도 생각보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같이 울어 준 친구도 있었고 나 때문에 변호사가 되겠다고 말해준 친구도 있었다. 피해의 원인을 내 스스로한테 찾을 때가 많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진심으로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해줘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사회는 성폭행 피해자에게 포용적일까?

▲가해자에 대한 형량을 제외하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지원에 대해 감사한다. 해바라기센터나 병원, 경찰서에서 어떤 지원을 받았는지 떠올렸을 때 피해자로서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다. 형량만 떼어놓고 본다면 말이다.

-피해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것 같은데?

▲남자가 무섭지 않냐는 물음을 가끔 받는다. 나는 남자친구가 있고 성관계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피해자인데 그게 가능해?"라고 묻는다. 심지어 "너 성폭행 당했을 때 즐긴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피해자도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를 낳는다. 피해자도 같은 사람일 뿐이다. 이런 물음 자체가 피해자를 틀에 갇히게 한다.

-사람들이 피해자를 어떻게 대했으면 좋겠나?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말해야 할까', '나중에 나에 대해 알게 됐을 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피해사실을 알기 전과 후가 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해자를 멀리하거나 불쌍히 여길 게 아니라 원래 하던 것처럼 똑같이 대해줬으면 좋겠다.

#성폭행 #피해자 #서울해바라기센터 #신고 #죄책감 #사회시선

[글 싣는 순서]
① 무고 아니냐고요? 성폭행 당하고 신고 못한 심정을 아시나요?
② "성폭행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위로하는 사회가 되어야"
③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성폭행 피해자도 똑같은 사람인걸요"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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