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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비극' 다시는 없게.. 퇴거 없이, 철거 없다 [행정대집행 65년만에 전면 개정 추진]

안태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25 17:55

수정 2019.04.25 17:55

인권보호가 최우선
거주민 점유땐 퇴거 후 대집행 의무화 담당공무원 현장 지휘·감독 못박아
관리소홀 부상자 생기면 행정기관 책임 이의신청도 신설… 기습철거 소지 차단
국민안전 위협땐 강행
사회적 약자 보호 원칙 강화하지만 불법 증축 밀양세종병원 화재처럼
국민 생명·재산 침해가 명백한 경우 행정대집행 의무화로 실효성 강화
'용산참사 비극' 다시는 없게.. 퇴거 없이, 철거 없다 [행정대집행 65년만에 전면 개정 추진]

용산참사, 제주 강정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등 한국사회의 거대한 갈등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섰던 행정대집행법이 1954년 제정된 이후 65년만에 전면 개정된다.

행정대집행이란 행정기관이 불법 건축물, 불법 노점상 등의 소유자, 거주자에게 철거 및 퇴거를 요구해도 응하지 않을 경우 절차를 밟아 실시하는 강제 철거를 말한다.

대집행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주로 도로 등에 불법시설물을 쌓아놓을 수밖에 없는 영세상인이나 주택 보유의 여력이 없어 불법 점유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약자들이 많다. 이들은 철거 및 퇴거 요구에 응할 경제적 여유가 없고 생계가 걸려있는 경우가 많아 대집행 과정에서 집행하는 측과 물리적충돌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기존 법안은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항이 부족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큰 실정이다.

반대로 대집행을 실행하는 입장에서도 권한이 명확하지 않아 부담이 컸다.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건축물의 경우 행정대집행을 통해 철거해야 하지만 모호한 법규정으로 인해 민원·소송을 우려한 행정기관이 이행강제금만을 부과하고 행정대집행에 나서지 않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행정안전부는 '국민 인권 보호 강화'와 '대집행의 실행력 강화'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법안을 대폭 개정해 지난달 29일 국회에 제출했다. 오는 6월 임시국회에 상정될 경우 이르면 올해 11월 법안이 통과될 예정이다.

■'국민 인권·안전 보장'이 우선

개정안은 불법건축물 소유자, 거주민이 대상 건축물을 점유하고 있을 경우 이들을 안전하게 퇴거 시킨 후 대집행을 실시토록 의무화했다. 기존에는 이에 대한 규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불법건축물 내에 사람이 있어도 퇴거를 유도할 목적으로 철거를 시작해버리는 경우 많아 인명피해 우려가 높았다.

대집행을 실시하는 담당공무원의 책임성도 강화된다. 기존 법안은 담당 공무원이 본인이 책임자임을 집행 대상자에게 알릴 의무만을 명시했다. 직접 현장을 관리·감독할 의무는 없었다. 이번 개정안은 담당공무원이 현장에서 대집행 실행을 '직접 지휘·감독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행안부 관계자는 "관리·감독 소홀로 부상자 발생 등 문제가 생길 경우 소속 행정기관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의신청제도 신설

이번 개정안은 이의신청 제도도 신설했다. 이전에는 소송 제기 이외에는 별도의 행정적인 권리 구제 수단이 없었다. 특히 판결 전에 대집행을 시행해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서울시 강남구 구룡마을이 그 예다. 구룡마을 자치회관에 대한 대집행이 예고된 후 주민들은 법원에 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 강남구청은 기습적으로 대집행영장을 통지하고 다음 날 새벽, 자치회관 일부를 철거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대집행을 통보 받은 후 10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행정기관도 시행 여부를 재검토하고 그 결과를 10일 이내에 즉시 통보해야 한다. 이의신청기간만큼은 대집행 실행도 제한해 집행 대상자의 인권보호를 강화했다. 법안 개정 자문에 참여한 김용훈 상명대 법학과 교수는 "대집행의 대상이 되는 분들이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면서 "집행 대상자들에게는 미흡할 수도 있지만 인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고 개정안 배경을 설명했다.

■국민안전 위협할 경우 '대집행 의무화'

국민의 인권·안전을 보장하는 규정을 대폭 신설한 만큼 대집행 실효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우선 국민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나 재산 손해가 발생할 것이 명백한 경우 행정대집행이 의무화된다. 현재 행정대집행은 행정기관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 '재량행위'다. 다른 행정상 강제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 반드시 행정대집행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주로 이행강제금을 부과해 자발적인 철거를 유도하지만 상대가 버티면 방법이 없다. 행정기관도 소송, 민원 등을 우려해 이행강제금만을 부과한 채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월 47명이 사망한 밀양세종병원 화재 사건이다. 당시 병원과 요양원 건물 사이를 잇는 2층 연결통로가 연기를 확산한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 통로는 불법증축물로 밀양시는 2011년부터 매년 이행강제금(총 3041만원)만 부과했을 뿐 행정대집행을 실시하지 않았다.

■안전한 대집행 최소한의 권한 부여

대집행 대상 건축물을 수색하고 폐쇄된 문 등 잠금장치를 해제할 수 있는 권한 규정도 만들었다. 앞서 언급한 거주민의 안전한 퇴거를 위해 최소한의 권한을 행정기관에 부여한 것이다.
대집행 대상자와 집행자의 물리적 충돌이 예상될 경우 경찰·소방 등 타 행정기관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도 만들었다. 나채준 한국법제연구원 박사는 "자치단체의 경우 민원제기와 물리력 행사에 대한 부담을 느껴 행정대집행이 필요한 경우에도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며 "불법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행정대집행의 핵심이다.
행정기관의 대집행 의무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도 개정안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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