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외교/통일

"이런 푸대접 처음이다" 韓日관계, '의회외교 채널' 마저 단절 기로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29 14:43

수정 2019.05.29 20:18

강제징용 배상문제 韓日 정부 입장 강경해
의회차원에서 풀어보려고 방일했지만
일본 중의원 면담 거부
문희상 의장이 파견하는 한일의회포럼도 방일 예고됐지만
日측 지한파 누카가 후쿠시로 의원, 이낙연 총리 면담 불발되자 방한 안해 
의회외교 한계 직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9일 오전 도쿄특파원단과 1박2일의 방일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9일 오전 도쿄특파원단과 1박2일의 방일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쿄=조은효 특파원】 "이런 푸대접은 처음이다."(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비롯 외통위 소속 중진의원 5명이 강제징용 배상판결로 악화된 한·일 관계를 개선해보고자 지난 28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도쿄를 찾았지만 일본 중의원(하원격)측에선 접촉을 꺼려 면담 자체가 성사되지 못했고, 참의원(상원격)에서도 초선의 비례대표인 외교방위원장 한 명만이 상대해줬다. 심지어 그 한 명인 일본 참의원 와타나베 미키 외교방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끝나야 한·일 관계가 개선될 것"이란 발언도 내뱉은 것으로 전해졌다. 굴곡 많은 양국 관계에서도 버팀목 역할을 해온 양국 의회 외교마저 단절될 기로에 선 것이다.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이 주도해 만든 한·일 의회외교포럼(회장·서청원 의원·8선)이 다음달께 이어서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나, 현재로선 아베신조 일본 총리 면담은 물론이고, 일본 정계의 비중있는 인사들과의 면담도 불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윤 위원장은 29일 출국 직전 도쿄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의 상황"이라며 "일본의 '코리아 배싱'(한국 때리기)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일 의원단은 당초 참의원 측에서도 3~4명은 나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막상 와서 보니 일본 의회채널마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중재위원회 구성 요구를 한국 정부가 받아들여라", "한국이 중재위 요구를 거부하면 내달 28~29일 오사카 주요20개국(G20)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도 없다"는 게 일본 의회 측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일본 측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배상은 모두 해결됐다. 일본 기업은 배상할 수 없으니, 한국 정부가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해법을 들고 오라"는 것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 외교적으로 풀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던진 카드가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개최다. 우리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재판결 격인 중재위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일본 내 지한파 언론인들은 여기서 한술 더 떠 국제사법재판소(ICJ)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란 의견을 제시했다고 윤 의원이 전했다.

그는 "국내에서 느끼는 것보다 일본에 와서 보니 양국 관계 악화의 강도가 크다는 점을 실감했다"며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나 먼저 손을 내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양국 정상의 입장이 확고하더라도,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의용 실장과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야치 쇼타로 국장 간에는 소통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도 지적했다. 마치 이같은 상황이 지난 2013년~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 때와도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방일의원단에는 자유한국당의 윤상현 의원, 유기준 의원, 정진석 의원과 민주평화당의 천정배 의원, 무소속 이정현 의원 등 야당 의원 5명이 참여했다.

앞서 이달 중순엔 박병석 의원(5선·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결성한 국회 한반도평화번영포럼 소속 의원들이 나흘간 일본을 다녀갔지만, 일본 자민당 의원들과 갈등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간극만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정부간 입장 차가 워낙 확고해 의회 외교로선 한계가 있고, 과거 중재역할을 했던 김종필(JP)·세지마 류조·권익현 등 비중있는 '정치 어른'들이 부재하다는 점 역시, 날로 악화되는 한·일 관계에 브레이크를 채우지 못하는 이유로 지목된다. 현재로선 이낙연 국무총리가 한·일간 채널이 될 것이란 시각이 있으나, 이 총리 역시 청와대의 강경한 입장에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일 경북 경주에서 한·일 의원연맹 합동 총회가 열렸으나 일본 측 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회장이 방한하지 않은 것도, 이 총리와의 면담이 불발됐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7월 참의원 선거전까지 아베 내각와 자민당의 '한국 때리기'가 한층 강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상태라면, 다음달로 예상되는 국회 한·일 외교포럼 역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편 이런 가운데 일본 아베 내각은 중국에 양국 외교·국방장관간 2+2 회의개최를 제안했다.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2+2회담 제의는 상당히 파격적인 조치로 풀이된다. 북·일 정상회담 개최도 물밑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코리아 배싱'을 넘어 '코리아 패싱'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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