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모 중견사, 지난 2024년 기준 대비 18% 감액
업계 "부채 해소, 증자 등 재무건전업체 되레 역차별"
업계 "부채 해소, 증자 등 재무건전업체 되레 역차별"
[파이낸셜뉴스] 올해부터 건설업체 시공능력평가액 산정 방식이 변경되면서 지역 건설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건설협회는 기존의 최근 3년간 공사실적, 경영평가액, 기술능력, 기타가산점 등을 종합해 평가액을 산출하던 방식을 폐지하고 새로이 '경영평가액 상한 기준'을 3년간 공사실적평가액의 2.5배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상당수 업체의 시공능력평가액이 대폭 하락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 실적 쌓기보다 재무 건전성에 주력해온 업체, '역차별'
지난해까지의 시공능력평가 제도에서는 차입금 의존도, 이자보상비율, 자기자본비율 등 재무상태가 우수한 기업일수록 경영평가액이 높게 반영돼 상대적으로 높은 시공능력평가액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과도한 저가 수주 경쟁을 지양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업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적용되는 새 기준의 경우 공사실적이 경영평가액의 상한을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부채를 줄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해온 중소·지역 건설사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동안 불안한 시장상황을 지켜보며 공사보다 건전 재무구조 확보를 택해온 업체들이 대규모 실적을 쌓기 위해 무리하게 저가 수주에 나선 부실위험 기업보다 낮은 평가액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불안정한 부동산시장 상황이 지속되자 무리한 공사수주보다는 재무 건전화 등 내부 경영개선에 주력해온 부산 한 중견건설사는 올해 협회의 시공능력 공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시평액이 예상보다 2백억 원이나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평가기준으로 1100억 원이 넘었는데, 올해 바뀐 기준 탓에 900억 원으로 확 감소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관급공사 등 공사수주를 놓고 울상을 짓고 있다.
■ "실적만 중시하면 저가수주 악순환 불가피"
지역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제도가 건전한 경쟁보다는 '물량 밀어내기'식 수주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건설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업체들이 시공능력평가액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한 저가 수주에 나설 경우 현장 품질 저하와 더불어 심각한 재무적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의 실질 공사는 대형회사가 아니라 기술력을 보유한 단종(單種) 전문업체들이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원도급사의 재무 상태가 불안정하면 하도급 대금이 제때 지급되지 못해 지역 단종업체들까지 연쇄적인 자금난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 업계 "근본적으로 안정적 재무구조를 평가해야"
이에 부산에 있는 온라이프건설 한 관계자는 "새로운 시공능력 공시제도는 공사실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부채를 줄이고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이라며 "부실기업이 아닌 건전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처럼 미분양 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는 오히려 실적보다 재무안정성이 사업 완수 가능성을 담보한다"며 "실적 위주 평가만 고집한다면 지역 건설 생태계를 지탱해온 중견·중소업체들이 줄줄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제도 개선 요구 거세질 듯
이번 시공능력 평가 기준 개편은 건설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려는 정부·협회의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현장에서는 "지역 기반 업체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재무건전화와 기술력 제고라는 '정공법'을 선택한 건전업체들이 되레 역차별을 받는 구조가 고착화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질적 하락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lich0929@fnnews.com 변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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