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 강남경찰서 교통안전계장 인터뷰
[파이낸셜뉴스] "사고가 난 뒤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시민이 집을 나서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겁니다."
14일 이상범 서울 강남경찰서 교통안전계장은 "교통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사고를 막는 예방'"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경찰 인생 8할, 교통 현장에서
36년 경찰 경력 중 28년을 교통 분야에서 보낸 이 계장은 서울경찰청 교통순찰대와 분당경찰서, 수서경찰서 등 일선 경찰서 교통조사계·교통관리계 등을 두루 거쳤다. 대통령 취임·퇴임식과 교황 방문, G20 정상회의 등 국가 주요 행사 경호 역시 그의 이력에 포함돼 있다.
이 계장의 하루는 오전 6시 30분부터 시작된다.
이 계장은 "처음 교통 업무를 맡았던 시절 단속이 법 위반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규제 중심'이었다면 지금의 좋은 단속은 교통 흐름을 개선하고 사고 위험을 낮추는 것"이라며 "단속 이후 해당 구간의 정체가 줄어들거나 사고가 감소한다면 그게 바로 성과"라고 강조했다.
■단속 넘어 구조 바꾸는 '리디자인'
강남은 유동 인구와 통행 차량이 많아 서울에서도 교통 위반과 음주운전 적발이 많은 지역이다. 이로 인해 끼어들기나 불법 유턴 같은 위반이 잦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상습 정체가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강남서는 서울청의 역점사업인 '서울교통 Re디자인(리디자인)'을 적극 실시하고 있다. 이 계장은 리디자인을 "단순한 단속을 넘어 교통 환경 자체를 시민 친화적으로 설계하고 개선하는 종합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말까지 리디자인과 관련해 접수된 시민 제안은 2315건에 달했으며 이 중 76%가 신호·보행·시설 등 교통환경 개선에 집중됐다. 전체 접수 건의 66%인 1198건이 개선됐으며 강남서 역시 접수된 47건 중 33건을 처리 완료했다.
리디자인은 크게 '교통환경(시설)'과 '교통문화(단속)' 두 축으로 나뉜다. 교통환경 분야에서는 시민 의견을 반영해 정체 구간의 신호 체계를 조정하고, 보행자 안전이 취약한 횡단보도와 통학로를 개선한다. 실제로 강남서 관내에서는 △청담초 통학로 일방통행 전환과 보도 신설 △논현초 인근 안심 승하차존 설치 △강남대로 CGV 앞 연속 횡단보도 4개 신호체계 개선 등 물리적 환경 개선이 이뤄졌다.
교통문화 분야에서는 시민 체감도가 높은 위반을 중심으로 단속을 이어간다. '속시원한 단속'이 교통문화 축을 실행하는 대표적인 정책으로 음주운전·중앙선 침범 등 사고 위험이 높은 행위와 꼬리물기·불법 주정차·이륜차 난폭운전처럼 일상 속 불편을 키우는 행위가 우선 단속 대상이다. 단속과 함께 홍보·교육도 병행하며 시민 제보로 접수된 개선 요청을 실제 정책과 현장에 반영하고,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공유한다. 이 계장은 "교통 문제를 단지 경찰만의 과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시민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 리디자인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단속은 처벌 아닌 약속"
이 계장이 가장 우려하는 분야는 이륜차와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 관련 사고다. 보호장비 미착용과 신호 위반, 인도 주행이 겹치면 사고는 곧 중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진다. 그는 2022년 새벽 강남 포스코사거리 인근에서 헬멧 없이 킥보드 1대를 함께 타다 숨진 20대 청년 2명의 사고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 계장은 "단순히 킥보드를 타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PM 면허 의무화 및 교육 관련 법안 도입 등 제도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현재 강남서는 PM 주차구역을 약 300곳 조성했으며 강남역 먹자골목과 신사 가로수길 등 보행 밀집 지역에는 PM 통행금지구역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향후에는 사고 다발 지역을 중심으로 스마트 횡단보도도 순차 도입한다. 보행자가 건너고 있을 경우 자동으로 신호가 연장되고 잔여 시간이 표시되는 시스템이다.
이 계장이 은퇴 전 이루고 싶은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시민들이 "무단횡단은 하지 말아야겠다" "오늘도 무사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향후 교통 단속은 사고 예방과 시민 체감 중심으로 더 정교해져야 하고 위험 요소를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며 "시민들께는 '단속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안전을 위한 약속'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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