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이른바 '숯불 퇴마' 살인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뒤집고 감형을 선고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30일 방송된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숯불 퇴마 살인 사건의 뒤바뀐 항소심 판결을 집중 조명했다.
2024년 9월 18일 인천의 한 식당에서는 30대 여성이 철제 구조물 위에 결박된 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구조물 위에 묶은 뒤 그 아래에 숯불을 피웠다. 피해자는 전신 피부의 25%에 달하는 3도 화상을 입고 결국 숨졌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피고인 중 주범이 피해자의 이모인 김 씨였고, 김 씨의 자녀들까지 범행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친족과 신도들이 얽힌 범행이라는 점에서 사건은 큰 파장을 불렀다.
피해자 결박한 채 숯불 피운 '퇴마 의식'
방송에 따르면 무속인인 김 씨는 자녀 및 신도들과 함께 퇴마 의식을 빙자한 행위를 벌였다. 이들은 피해자가 귀신에 씌었다고 주장하며 철제 구조물 위에 피해자를 결박하고, 그 아래 숯불을 피웠다.
피해자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지만 구조되거나 즉시 병원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김 씨는 피해자의 머리채를 붙잡고 수차례 폭행했으며, 숯불 화로를 피해자의 몸 가까이 밀착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의 의복을 벗겨 열기를 직접 쐬게 한 정황도 드러났다.
피고인들은 피해자가 '음란한 귀신'에 씌었다며 특정 신체 부위 인근에 열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식은 약 2시간 51분이 지나서야 중단됐다.
1심 "살인의 고의 인정"…주범 무기징역 선고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을 살인으로 판단했다. 주범 김 씨에게는 무기징역을, 공범들에게는 징역 2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했다. 범행 계획을 인지하고도 묵인해 살인을 방조한 혐의를 받은 피해자의 친오빠에게는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1심은 피해자가 극심한 고통에 결박을 풀어달라고 호소했음에도 피고인들이 이를 묵살한 점을 무겁게 봤다. 특히 피해자의 입에 뜨거운 숯을 넣어 재갈을 물린 시점부터는 통상적인 퇴마 행위나 상해 수준을 넘어선 위해가 가해졌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쓰러진 뒤에도 즉시 119에 신고하지 않은 점, 철제 구조물을 해체하고 현장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보낸 점 등도 살인의 고의와 범행 은폐 정황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봤다.
항소심 "사망 예견 어려워"…상해치사로 감형
하지만 지난 4월 열린 항소심 선고에서 판단은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이 인정한 살인 혐의 대신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주범 김 씨의 형량은 무기징역에서 징역 7년으로 크게 낮아졌다. 공범 6명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살인의 고의나 사전 계획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사망을 예견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감형의 주요 이유로 제시됐다.
김 씨는 법정에서 피해자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빙의 상태였고, 그를 구하기 위해 주술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가 숯불 퇴마에 동의해 자발적으로 의식에 참여했다는 취지의 주장도 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일부 참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1심과 2심 갈라놓은 '살인 고의' 판단
이번 사건에서 1심과 2심 판단을 갈라놓은 핵심은 살인의 고의 인정 여부였다.
1심은 피고인들이 행위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도 피해자를 구호하지 않았다고 봤다. 친오빠와 사촌언니의 진술 등을 근거로 피고인들이 숯불 퇴마 행위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피고인들이 살해 계획을 세웠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의 사망까지 예측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봤다. 의식 시작 후 1시간 11분까지는 치명적인 상황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단도 내놨다.
신고 지연과 현장 정리 정황에 대해서도 판단은 갈렸다. 1심은 이를 범행 은폐의 핵심 근거로 봤지만, 항소심은 신고 지연만으로 살인의 고의와 공모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화상 원인을 사실대로 밝히지 않은 점 역시 당황한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둘러댄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전문가들 "항소심 판단 납득 어려워"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항소심 판단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 전문가는 "1심은 김 씨를 나쁜 인간으로 상정했고, 2심은 김 씨가 조카를 돌봐주고 정말 조카를 위해 주술 행동을 했다고 판단했다"며 두 재판부의 시각 차이가 판결을 뒤흔든 결정적 지점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1심에서는 경제적 문제를 살인의 동기라고 판단했지만 2심에서는 이를 부정했다"며 "김 씨는 경제적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나머지 공범은 빚도 있고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피고의 경제 상태는 가스라이팅이나 착취의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 씨의 자녀들과 신도들은 김 씨의 부채를 대신 갚아나가며 경제적 고충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있었다면 위험성 알 수 있었다"
제작진은 검증 실험을 통해 피고인들이 당시 행위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었는지 분석했다.
한 전문의는 "현장에 있었다면 충분히 위험성을 인지했을 것"이라며 "의사 입장에서 충분히 사망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 법률 전문가는 "앵글을 만질 수도 없을 정도라는 것을 판단하기는 힘든 것 같다"며 법리적 판단의 한계를 언급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항소심이 범행 과정을 임의로 3단계로 구분한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중간에라도 미필적 고의,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걸 알 수밖에 없다"며 항소심이 판결을 뒤집은 논리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다른 전문가 역시 "이 정도 행위를 하더라도 상해치사라고 한 게 너무 위험한 지점"이라며 항소심의 관대한 판결이 선례로 남을 경우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가족 지배한 무속인 이모…"두려움도 죄책감도 없어"
방송은 피고인 김 씨가 가족과 주변인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정황도 짚었다. 김 씨는 혼인 이후 무속인이 되면서 다른 사람처럼 변했고, 가족들을 종속시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자녀들을 지속적으로 착취했으며, 일부 자녀는 가혹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감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 씨의 심리 상태에 대해 한 전문가는 "스스로를 전지전능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두려움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범행에서 경제적 이득은 수면 아래에 있다"며 "가해자는 내가 생각한 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생긴 것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고, 자존감에 큰 손상을 입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또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응징을 해야 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들도 자신에게 순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법원 판단만 남아
해당 사건은 현재 상고돼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에서는 항소심이 살인의 고의를 배척하고 상해치사로 판단한 것이 타당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은 취재 과정에서 피해자의 부모를 만나 구체적인 입장을 들으려 했으나, 이들은 취재진에게 경계심을 드러내며 대화를 거부했다.
1심은 피고인들의 행위와 사후 정황을 살인의 고의로 봤고, 항소심은 사망 예견 가능성과 사전 계획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같은 사건을 두고 정반대에 가까운 판단이 내려진 가운데, 최종 판단은 이제 대법원의 몫으로 남았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