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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감독 "죽은 이를 다시 만나는 기술, 윤리적 질문 던지고 싶었죠"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인터뷰

영화 '상자 속의 양' 속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 '상자 속의 양' 속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 '상자 속의 양' 속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 '상자 속의 양' 속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 '상자 속의 양' 속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 '상자 속의 양' 속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 '상자 속의 양' 속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영화 '상자 속의 양' 속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파이낸셜뉴스] 죽은 어린 아들과 똑 닮은 휴머노이드를 입양할 수 있다면? 상실과 가족을 키워드로 영화를 만들어온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번에는 AI와 휴머노이드를 소재로 품었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상자 속의 양'은 가까운 미래, 죽은 아들의 기억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한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죽은 자를 산 자 마음대로 이용해도 될까?

고레에다 감독은 지난 5일 한국 취재진과 만나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 죽은 사람의 존재를 마음대로 이용해도 되는가 하는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죽은 사람을 복원하고 대화를 나누게 하는 한 20대 중국 사업가의 실제 비즈니스 사례를 접한 뒤 이번 영화를 구상했다. 그는 "저 역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께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며 "기술을 이용해서라도 죽은 이를 만나고 싶어 하는 유족의 마음은 너무나 잘 이해되면서도, 이것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기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이어 "기술이 오히려 애도의 과정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 뒤 "인간이 기술을 이용하더라도 어느 시점에서는 마침표를 찍고 손에서 놓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는 휴머노이드 아들 카케루를 향한 부부의 복잡한 감정과 치유의 과정을 그리는 한편, 다른 휴머노이드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삶을 꿈꾸기 시작하는 카케루의 모습도 담아내며 묘한 불안감을 자아낸다. 나무와 유리로 된 건축가 부부의 집처럼 로봇과 인간, 숲과 기계 등 서로 이질적인 존재와의 공존도 그린다. 초기 각본에서는 부부가 휴머노이드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결말이었으나, 심사숙고 끝에 지금의 결말로 수정했다.

약 10년 뒤 미래, 인간의 마음이 초첨

SF 설정이지만, 영화 자체는 지금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휴먼노이드를 연기한 아역 배우의 연기 역시 사람과 큰 차이가 없다. 이는 예산의 한계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로봇 자체보다 그 로봇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인간의 마음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시간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뒤의 근 미래다. 감독이 만난 중국의 사업가뿐 아니라 일본의 로봇공학 전문가들 역시 10년 이내에 영화 속 수준의 생성형 AI 기술이 실현 가능하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고레에다 감독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흥미로운 점을 덧붙였다.

그는 "일본의 로봇공학 교수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제 로봇공학은 인간을 그대로 모방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진 않을 것이라 하더라.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인간의 형태를 완전히 똑같이 본뜨는 것에 메리트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극 중 휴머노이드 아이가 벌레를 죽이는 잔혹한 행동을 하거나 엄마에게 "내가 없는 편이 행복해?"라는 냉정한 질문을 던지는 장면에 대해서는 "어린아이들이 실제로 보여주는 잔혹함과 휴머노이드 특유의 낯선 이질감 사이에서 관객들이 혼란과 묘한 불쾌감을 느끼도록 현장에서 연출한 것"이라고 밝혔다.

고레에다 감독은 특히 휴머노이드의 '집단적 의지'에 주목했다. 그는 "각 개체가 개별적인 인격을 가졌다기보다는, AI나 휴머노이드가 집단화됐을 때 어떤 의지를 가진 것처럼 인간에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영화 후반부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AI와 다른 인간만의 차별점은 상상력

영화는 AI에 대한 감독의 비판적 시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보다 다양한 측면을 제시하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는 점에서 보는 이의 입장에선 혼란스럽고 한편으론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느낌도 자아낸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기존의 혈연이나 전통적인 형태를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도 제시한다. 휴머노이드가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나의 가족'이라고 표현하는 대목에 대해 감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관계를 그리고 싶었다"고 동의했다.

이러한 철학은 영화의 결말부에 집약된다. 고레에다 감독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숲을 휴머노이드들만 격리되어 사는 곳으로 그렸다면 인간과 기계를 분단시키는 결말이 되었을 것"이라며 "그곳을 기계와 자연,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한데 모여 있는 공간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과 비인간, 자연을 모두 포함하는 거대한 공존의 공동체를 그리고자 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고레에다 감독은 AI가 영화 산업의 지형까지 변화시키고 있는 현실을 짚으면서도, 기술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상상력"의 가치를 강조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가 조종사가 그린 각종 양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다가 상자 속의 양을 상상하며 만족해했던 것처럼, 상상력은 AI와 차별화된 인간만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쿠와키 리무, '상자 속의 양' 파이팅. 연합뉴스
(고레에다 히로카즈·쿠와키 리무, '상자 속의 양' 파이팅. 연합뉴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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