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약 탓에 심해진 이명.."보청기 뗐다 붙였다 하면 독"
60대 A씨, 결핵 약물치료 후 극심한 이명·스트레스 호소
성인 5명 중 1명 겪는 질환…60대 이상 장·노년층에 집중
부산 온병원 "이독성 항생제 쓸땐 정밀청력검사 병행해야"
보청기는 '뇌 훈련 도구'…3∼6개월 꾸준히 착용해야 효과
[파이낸셜뉴스] 조용할 때 귓속이나 머릿속에서 '삐-', '쏴-' 하는 정체 모를 소리가 반복되는 이명(Tinnitus)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극심한 고통이다.
최근 결핵 치료를 받기 시작한 60대 A씨 역시 밤낮없이 이어지는 이명 탓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잠을 잘 수 없어 일상생활이 무너질 지경"이라는 A씨는 답답한 마음에 보청기라도 일시적으로 써볼까 매일 고민에 빠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씨처럼 이명이 심할 때 보청기를 임의로 꼈다 벗었다 하는 행동은 오히려 이명 회복을 가로막는 '최악의 악수(惡手)'가 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명이 심한 환자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보청기를 잠깐 꼈다가 이명이 사라지면 다시 벗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청기를 일시적인 진통제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명 치료에서 보청기를 활용하는 핵심 원리는 안 들리는 소리를 보완해 주어 뇌가 가짜 소리(이명)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도록 '뇌를 훈련(적응)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 온병원 이비인후과 이일우 과장은 "보청기를 꼈다 벗었다 반복하면, 보청기를 뺀 조용한 순간에 뇌가 다시 적막감을 인지하면서 이명을 훨씬 더 크고 날카롭게 받아들이게 된다"며, "보청기는 필요할 때만 쓰는 일시적인 도구가 아니라, 최소 3∼6개월 이상 깨어 있는 동안 꾸준히 착용해 뇌를 순응시켜야 하는 일종의 '체질 개선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21일 설명했다.
최근 출시되는 보청기에는 잔잔한 백색소음이나 파도 소리를 내보내 이명에 신경을 끄도록 유도하는 '이명 차폐 기능'이 탑재돼 있어 꾸준히 착용할 경우 청력 재활과 이명 완화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60대 A씨의 이명은 왜 결핵 치료 이후 더 심해진 걸까. 결핵 치료에 쓰이는 일부 강력한 항생제(아미노글리코사이드 계열 등)는 의학계에서 대표적인 '이독성 약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약물 성분이 달팽이관 내부의 섬세한 청각 세포를 자극하거나 손상시키는 부작용을 유발하는 탓이다.
달팽이관 세포가 손상돼 뇌로 가는 정상적인 소리 신호가 줄어들면, 우리 뇌는 안 들리는 소리를 보충하기 위해 스스로 '가짜 신호'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주파수 높은 기계음이나 매미 소리 같은 이명으로 발현된다.
이일우 과장은 "결핵이나 중증 감염증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독성 항생제를 장기 복용해야 하는 환자라면, 약물 투여 전 고주파수 영역까지 아우르는 '기초 청력 검사'를 받아 기준점을 마련해야 한다"며, "복용 중에도 주기적으로 추적 검사를 시행해 환자가 인지하기 전 미세한 청력 손실 단계에서 약물을 조절하거나 이독성이 없는 대체 항생제로 전환해야 귀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약물이 체내에 축적되지 않도록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고, 신장(콩팥) 기능을 함께 모니터링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명은 현대인에게 매우 흔한 '국민 증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명으로 병원을 찾는 공식 진료 환자는 매년 약 30만∼35만 명 선을 유지하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의 통계를 보면 성인 5명 중 1명꼴로 이명을 경험하지만, 실제 병원 문을 두드리는 비율은 4% 내외에 그쳐 잠재적 환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청각 세포의 손상이 누적되기 때문에 장·노년층에 집중된다.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60대 이후 연령층에서는 4명 중 1명꼴(약 27% 이상)이 이명을 겪고 있으며, 이들 중 32%는 일상생활에 뚜렷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성별로는 호르몬 변화와 스트레스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약 1.4배 많다.
계절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차가운 기온이 혈관을 수축시켜 귀 주변의 혈류 공급을 줄이고 자율신경계를 자극하기 때문에, 보통 여름보다는 겨울철(12월∼1월)에 환자가 급증하는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온병원 이비인후과 이일우 과장은 "이명은 그 자체로 독립된 질환이라기보다 귀나 몸속 청각 시스템에 변화가 생겼음을 알리는 경고등"이라며 "특히 치료 목적으로 처방받은 약물을 이명 때문에 임의로 중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만큼 반드시 주치의 및 이비인후과 전문의와의 긴밀한 협진을 통해 안전한 치료 경로를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lich0929@fnnews.com 변옥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