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젠슨 황이 떠난 뒤, 한국 기업의 진짜 숙제 [김문경의 리더십테크] (18)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젠슨 황이 떠난 뒤, 한국 기업의 진짜 숙제 [김문경의 리더십테크] (18)

[파이낸셜뉴스] 젠슨 황(Jensen Huang)이 떠났다. 그의 방한에 들썩이던 시장도, GPU를 향한 환호도 잦아들었다. 그런데 박수가 끝난 자리에 진짜 질문이 남았다. 최첨단 칩을 손에 쥐었다 한들, 그것을 돌릴 조직은 준비가 되었는가?

2026년 6월, 삼성이 깜짝 발표를 했다. 제미나이(Gemini), 챗GPT(ChatGPT), 클로드(Claude)를 전 계열사 공식 업무 도구로 들이고, 사장단부터 임원까지 줄줄이 AI 교육에 앉히겠다는 것이다. 이재용 회장의 주문은 단호했다. "일하는 방식과 조직 DNA를 송두리째 바꿔라." 기술 도입 속도만 보면 한국 대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가장 앞선 회사들이, 하나같이 같은 자리에서 발이 묶였다. 기술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다.

삼성의 AI 선언은 화려하다. 하지만 그 선언을 들은 직원들의 머릿속 질문은 단순하다. "그래서 내 일자리는?"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져 온 터라, AI 도입이 효율을 명분으로 한 인력 조정으로 번지지 않겠느냐는 의심은 자연스럽다. 최고의 도구를 손에 쥐여줘도, 그 도구를 왜 쓰는지 믿지 못하는 조직에서는 도구가 무기로 보인다.

젠슨 황이 떠난 뒤, 한국 기업의 진짜 숙제 [김문경의 리더십테크] (18)

현대차는 더 노골적이다. 계열사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는 쉬지 않고 일한다. 기업 입장에선 매력적인 계산이다. 회사는 미국 공장부터 투입해 단계적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노조가 즉각 답했다.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못 들어온다." 로봇은 완성됐는데, 그 로봇을 공장에 들일 합의가 없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그러나 반대 사례가 있다. SK 하이닉스다. 이 회사는 노사 합의로 성과급 체계를 바꿨다. 핵심은 액수가 아니라 규칙이다. "회사가 벌면 정해진 몫을 당신과 나눈다"는 약속을 먼저 명문화하고, 그대로 실행했다. 직원이 회사의 성공을 자기 일로 받아들이는 데는 이런 예측 가능성이 어떤 웅변보다 강하다.

이 세 회사의 기술 수준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갈린 것은 사람을 다루는 순서였다. 삼성과 현대차는 기술이라는 정답지를 먼저 펼쳤고, 그다음에야 사람을 설득하려 했다. SK하이닉스는 신뢰의 규칙을 먼저 깔고, 그 위에 기술을 올렸다. 같은 AI, 같은 로봇이라도 신뢰라는 바닥이 깔린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에서는 전혀 다른 속도로 굴러간다.

그래서 지금 한국 CEO에게 던질 질문은 "어떤 AI를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다. 어떤 모델을 쓸지는 돈으로 살 수 있다. 정작 살 수 없는 것은, 그 변화를 직원이 자기 편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신뢰다. 젠슨 황이 떠난 자리에 남은 진짜 숙제는 칩이 아니라 사람이다. 가장 빠른 길은 가장 빠른 칩이 아니라, 가장 먼저 쌓은 신뢰다.

/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기자 정보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