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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름의 중독, 이해의 실종 [박혜진의 꿈꾸는 오페라]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빠름의 중독, 이해의 실종 [박혜진의 꿈꾸는 오페라]

기다림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예술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빨리빨리'라는 말은 한국 사회의 압축 성장을 상징하는 언어이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작용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성과를 재촉하는 문화는 효율을 낳았지만, 과정에 대한 이해와 타인의 노동에 대한 존중은 점차 사라졌다.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에게조차 충분한 업무 파악 시간을 허락하지 않은 채 결과를 요구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조급함이 '비난의 문화'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평가와 단죄가 앞선다. 축구 경기에서 공 한 번 제대로 차보지 못한 이들이 선수의 실수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 장면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책임지지 않는 비판'이라는 구조적 심리의 반영이다.

이러한 풍경은 오페라에서도 반복된다. 베르디의 '리골레토'에서 군중은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조롱과 비난을 일삼고,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사회적 편견이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한다. 푸치니의 '토스카' 또한 권력과 소문, 왜곡된 판단이 어떻게 비극으로 이어지는지를 집요하게 그려낸다.

특히 군중 심리는 오페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합창은 단순한 음악적 장치가 아니라 집단적 감정과 무책임한 판단의 상징이다. 개인일 때는 신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군중 속에서는 쉽게 과격해지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진다. 오늘날 온라인 공간에서 반복되는 무분별한 비난 역시 다르지 않다. 익명성과 속도는 책임을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면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결국 핵심은 '이해하려는 노력의 부재'다. 기다림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다. 그러나 우리는 빠른 판단을 요구받고, 그 과정에서 맥락은 삭제된다. 이는 조직과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오페라는 우리에게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서사는 느리지만 치밀하게 전개되고, 인물의 감정은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관객은 서둘러 판단하기보다 음악과 서사를 따라가며 인물의 내면을 이해하게 된다. 이 과정 자체가 '기다림의 미학'이자 '이해의 윤리'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더 깊은 이해일지 모른다. 과정을 존중하고, 비난에 앞서 사실을 확인하며, 타인의 자리에서 생각해보는 상상력. 오페라는 그 태도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말해왔다.

빠름이 미덕이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그리고 그 전환의 중심에서 예술은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이해하기 위해 충분히 기다리고 있는가.

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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