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톡방에 선생님 'AI 야설' 있어요"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만의 사이버 공간
[대한민국 법도 '참교육' 들어가나요-④]
드라마로 엿본 새로운 전쟁터, 어른들은 따라잡기 힘든 '사이버 세상'
계정 사칭, 따돌림 조장 라방, 야설에 딥페이크까지…AI 활성화로 수위 더 높아져
[파이낸셜뉴스] # 드라마 '참교육' 3화. 인플루언서 학생 한예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담임교사에 대한 허위 루머를 올리고 수십만 팔로워를 동원해 사이버불링을 조장한다. 교실이 아닌 스마트폰 안에서 시작된 따돌림은 순식간에 학교 전체로 번진다.
# 9화에서는 친구들에게 '와이파이'로 불리는 학생 장성구가 등장한다. 가해 학생들은 장성구에게 핫스팟을 켜게 해 데이터를 갈취하고 넷플릭스·배달앱계정을 가져와 마음대로 결제하고 이용할 뿐만 아니라 장성구 명의의 계정으로 중고거래 사기까지 친다.
드라마 '참교육' 속 이 내용들은 교권침해와 학교폭력이 사이버라는 세상과 만나 무한확장되는 걸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BTF 푸른나무재단의 김미정 상담본부장은 1일 서울 서초구 BTF 푸른나무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된 드라마 '참교육' 관련 긴급 토론회에서 "오늘날의 학교폭력은 더 이상 교실 안에 머물러있지 않다"며"폭력의 피해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기존의 대응 방식만으로는 변화를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SNS와 온라인 게임, AI 기술 활용 등으로 지능화, 다각화되고 있고 스마트폰과 디지털 환경의 역기능이 학생은 물론 교사의 일상까지 위협하는 현실이 됐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 본부장의 설명대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이버폭력의 유형도 다양해졌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공동으로 실시해 지난 3월 발표한 '2025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도 사이버폭력의 가해와 피해 경험률을 물으면서 제시한 유형은 사이버 언어 폭력부터 사이버 갈취, 사이버 따돌림 등 8가지였다. 이 조사는 전국 초4~고3 청소년 9000명과 만 19세 이상 성인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놀라운 건 8가지 유형의 사이버폭력이 진화,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사이버폭력의 양상이 관계폭력, 온라인게임 내 괴롭힘 등 복합화·은밀화되면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가령 단체 채팅방에서 특정 학생을 배제하거나 조롱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이버불링(사이버 따돌림)은 상상 이상의 형태로 나타났다.
경기 평택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이모씨는 "학교에서 대면하는 아이들의 자아와 디지털 세상 속에서의 자아는 완전히 다르다"라며 "온라인이 더 노골적이고 강도가 센데, 수위도 높다"며 진화한 사이버불링 사례를 소개했다.
이씨에 따르면 최근 학생들은 대화방을 만든 뒤 대화방에 없는 친구를 대상으로 AI를 활용해 야한 소설을 쓰고 돌려보는 일이 있었다.
이씨는 "피해 학생은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사이버불링을 당하기 때문에 신고를 할 수 없다. 아이들의 제보를 받아 교사가 확인을 해도, 학생 핸드폰을 들여다본 게 되니까 오히려 처벌받을 수 있다"라며 "사생활 보호 문제와 정보통신법 등으로 인해 교사가 개입해서 처벌하기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씁쓸한 현실을 전했다.
문제는 이 같은 유형의 사이버불링이 교사들까지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씨는 "교사들도 AI로 만든 야설의 대상이 됐다"라며 "해당 사실을 알고도 교권보호위원회조차 열 수 없는 상황에서 충격을 받아 병가를 낸 교사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휘발성이 강한 SNS의 '라방(라이브 방송)'을 활용한 사이버불링도 나타났다. 라방을 켜서 한 명을 욕하면 시청하는 학생들도 호응하는 댓글을 달며 함께 욕한 뒤 방송을 '펑(삭제)'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사이버폭력을 학교폭력예방법 틀 안에서 다루려고 해도 디지털 증거 수집·보존 체계가 미비해 가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 교사는 "메신저 등을 통해 욕설을 하거나, 따돌림을 한다는 제보가 와도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고통스럽다"라며 "캡쳐 파일 등으로 제보를 받아도 '내가 아니다'라고 우기고, 대화방도 삭제해버리면 손 쓸 도리가 없다"라고 한탄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합리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본부장은 "변화하는 폭력 양상을 면밀히 분석하고 연령과 상황에 맞는 SNS 사용 기준과 제한 관리 방안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예방교육과 상담, 법률지원, 회복지원이 분절되지 않고 연결되는 맞춤형 대응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다만 무조건 처벌을 강화하기보다 학생들에 대한 사이버 윤리 교육을 강화하고 법적인 조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다.
심창보 법률사무소 심윤 대표변호사는 "AI 기술이 있기 전에도 녹음이나 SNS상의 명예훼손 등의 침해 사례로 힘들어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라며 "(SNS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게 불가능한 문제인 만큼, 자신의 행위가 교육 활동 침해를 넘어 중대 범죄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과 법적으로 어떤 조치가 따를 수 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교육해서 제도화에 대한 궁극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지 않나 싶다"라고 전했다.
해외 사례를 통해 국가 주도의 디지털 안전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호주의 경우 국가 기관이 '온라인 안전위원회(eSafety Commissioner)' 제도를 통해 온라인 콘텐츠 삭제 명령, 플랫폼 사업자 규제, 피해 신고 창구를 통합 운영하고 있다. 영국도 학교 내 '학생 보호(safeguarding)' 체계를 통해 사이버 위협에 대한 담당자 지정과 학생 보호 절차를 의무화하고 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기자 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