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한 교사에 "학교 행사 앞두고 수술 잡았냐"…갑질 신고했지만 '불인정'
교사, 유산 진단 후 교장으로부터 비인격적 발언·업무 압박 주장
진단서·통화 내용 갑질 신고했지만... 교육청 "객관적 자료 부족"
교장 "부적절한 발언 없어...병가 내라고 했다" 반박
전문가 "유산 상황에서 교사 건강권, 인권 보장됐는지 살펴봐야"
[파이낸셜뉴스] "오늘은 제 일이지만, 내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임신 초기 유산 진단을 받고 소파수술을 앞둔 공립 고등학교 교사가 교장으로부터 업무 압박과 부적절한 발언을 들었다며 교육청에 '직장 내 갑질'을 신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산진단서와 수술확인서, 통화 녹음 등 관련 자료를 제출했음에도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갑질이 인정되지 않자 교사는 "도대체 어떤 자료가 있어야 인정되는 것이냐"며 허탈함을 호소했다. 학교 측은 교육청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판단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3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소재 한 공립 고등학교 A 교사는 지난 4월 1일 임신 초기 유산 진단을 받았다. 당시 자궁수축 약물을 복용하며 지속적인 출혈이 있었고, 의료진 권고에 따라 다음 날 오후 3시 소파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A 교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B 교장이 교장실로 불러 "학교 행사를 앞두고 소파수술 날짜를 잡았냐", "부장 없이 행사를 어떻게 진행하냐", "일단 출근해서 컨디션을 보고 수술에 들어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학교 교육과정 운영 행사와 임원 리더십 캠프가 예정돼 있었다. 창의교육부장이었던 A 교사는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교감과 전임 부장교사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협조를 요청해 둔 상태였다"며 "그럼에도 (B 교장이) 수술 일정 자체를 문제 삼고, 행사 참석을 전제로 한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또 "학생들의 수업 결손이 걱정돼 차량 5부제 예외 적용을 요청하는 과정에서도 B 교장은 '사유(임신)가 없어지지 않았나. 아~ 사유가 생겼구나, 유산'이라며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A 교사는 같은 달 23일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감사실, 국민신문고에 관련 내용을 신고했다. 사건은 강동송파교육지원청으로 이관돼 갑질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쳤다.
그러나 지난 6월 16일 통보받은 심의 결과는 '갑질에 해당하지 않는다'였다. 교육청은 "행사 참여를 권고하는 취지의 발언은 일부 확인되지만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압박했다고 볼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A 교사는 "유산진단서와 수술확인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서와 진료확인서, 행사 출근 관련 초과근무 결재 내역, 교장이 부적절한 발언을 인정하는 통화 녹음까지 제출했는데도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고 한다면 앞으로 비슷한 일을 겪는 교사는 무엇으로 보호받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제가 어떤 상태였는지, 교장의 발언이 어떤 상처로 남았는지보다 절차와 형식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며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교장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했고,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다. 피해자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보다 스스로를 계속 증명해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현재 병가 중인 A 교사는 적응장애 진단을 받아 정신과 치료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병가 기간에도 시험 등 학교 업무와 관련한 연락을 받았다며 "'학생들을 방치할 것이냐', '강사를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취지의 말을 들으며 죄책감과 압박감을 느꼈다. 가장 큰 2차 가해는 피해 사실보다 학교가 이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번 사안과 관련해 B 교장은 "부적절한 발언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유산 판정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고 병가를 내라고 했다"며 "부적절한 발언은 없었다"고 밝혔다. A 교사가 소파수술 이후 학교 행사에 참석한 것에 대해서는 "본인 의지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A 교사는 "이미 전년도에 한차례 유산으로 유산휴가 15일, 병가 3일 총 18일 동안 휴가를 낸 적이 있다"며 "이번에도 쉬고 싶었지만, 충분히 강압적인 지시에 의한 출근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교육청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심의가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본지가 심의 결과 공개를 요청했지만 교육청은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어 세부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담당 장학사는 "제3자에게는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 어렵다"며 "갑질심의위원회가 양측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뒤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전문가는 이번 사안을 단순히 갑질 인정 여부만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 유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교사의 건강권과 인권이 충분히 보장됐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장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유산 사실을 알리고 소파수술로 병가를 쓰겠다고 말하는 자리에서 행사 관련 발언이 나온 것 자체가 당사자에게는 상당한 압박으로 느껴졌을 것"이라며 "개인의 책임감도 있겠지만, 실제로 교장의 발언 이후 행사 당일 출근했다는 점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에는 발언자, 행위자의 의도는 고려하지 않는다"며 "발언의 태도가 폭력적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개인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휴가사용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괴롭힘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A 교사는 "학교는 교사를 단순한 업무 수행자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해야 한다"며 "특히 임신과 출산, 유산 같은 의료적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공감과 배려가 전제돼야 한다.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교사가 무엇을 기준으로 학생들에게 인권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같은 상황에 놓인 교사들이 저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오늘은 제 일이지만, 내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 있다"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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