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한동하의 본초여담] 처방은 신중하되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의원은 자신의 처방이 병증에 꼭 필요하다고 확신한다면 담대하게 결단해야 한다. 다만 의술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잘못하면 해칠 수도 있는 만큼 언제나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의원은 자신의 처방이 병증에 꼭 필요하다고 확신한다면 담대하게 결단해야 한다. 다만 의술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잘못하면 해칠 수도 있는 만큼 언제나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옛날 호씨의 며느리가 여름철 열병을 앓았다. 증상이 심해서 동네 의원에게 처방을 받아서 복용해 봤지만 전혀 차도가 없어서 약을 달여 먹는 것을 중단했다.

며느리의 증상이 7일째 호전되지 않고 점차 심해지자 호씨는 인근의 의원에게 진찰을 청했다.

의원이 도착해서 맥을 짚어보니 현삭(弦數)하면서 손가락에 세게 부딪쳤다. 며느리는 심한 열로 헛소리를 하고 미친 듯 날뛰었고, 갈증이 심하고 얼굴과 눈이 모두 붉었다. 혀는 검고 대변은 막혀 있었으며, 복통이 있어 누르면 거부하였다. 전형적인 실열증(實熱症)이었다.

의원은 진찰을 마친 뒤 먼저 찬물 한 사발을 가져다 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호씨가 난색을 표했다. "이렇게 열이 심할 때 갑자기 찬물은 해가 되는 거 아니오? 뜨거운 그릇도 찬물에 넣으면 바로 깨지는 법 아니겠소?"

의원이 답했다. "며느리에게는 찬물이 곧 묘약이니, 마셔도 해가 없을 것이오."

사실 의원은 찬물을 얼마나 마시는지를 보아 열의 경중을 살피려는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바가지에 찬 우물물을 퍼왔다. 시어머니는 의원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으로는 불안했는지, 머뭇거리며 겨우 대접에 반 잔만 따랐다.

며느리가 갑자기 성내며 말했다. "어머니, 물을 어찌 이리 적게 주십니까?"

의원이 한 사발을 다 주라고 했다. 며느리는 그 차디찬 우물물을 단숨에 모두 마셨다.

의원이 며느리에게 물었다. "마셔 보니 어떠한가?"

"물이 엿처럼 달고 마음이 금세 시원해졌습니다. 저는 며칠 전부터 물을 마시고 싶었으나 사람들이 굳게 금하여 주지 않아 이렇게 번열(煩熱)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제 걱정 마시게나. 앞으로 찬물이 마시고 싶을 때면 언제고 마시되 지나치지만 않으면 되네"

의원은 호씨에게 말했다. "그대 며느리의 병은 매우 위중한 감증(感證, 감염성 열병)으로 사기(邪氣)가 이미 양명(陽明)에 자리 잡아 위실(胃實)이 되었소이다. 혹시 전에 무슨 약을 먹였는지 알 수 있겠소?"

호씨가 먹다 남은 약포지를 가지고 왔다. 의원은 약포지를 펼쳐서 약재들을 확인해 봤다. 시호, 황금, 반하, 인삼, 감초.... 소시호탕(小柴胡湯)이었다. 소시호탕은 표증과 이증의 중간 병증으로 한열왕래, 흉협고만, 입이 쓰고, 식욕부진, 오심과 구토 등의 증상에 사용된다.

의원은 약 처방 내용을 확인하고서는, "한 잔의 물로 수레에 실은 장작불을 끌 수 있겠소? 백호사심탕(白虎瀉心湯)을 쓴다 해도 이는 끓는 물에 찬물을 조금 부어서 식히려고 하는 것과 같을 뿐일 것이요."

백호사심탕은 백호탕과 사심탕의 합방으로 화(火)를 끄는 대표적인 처방이었다.

호씨가 물었다. "그렇다면 무슨 처방을 써야 하겠습니까?"

의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대승기탕(大承氣湯)을 처방해야 하오."

그런데 호씨는 처방이름을 듣고서 당황했다. 대승기탕은 심한 변비와 복부 팽만, 복통, 고열이 있는 경우에 사용하는 독한 사하제(瀉下劑, 설사를 시켜서 치료하는 처방)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옆에 있던 이웃이 거들었다. "우리 집 사람도 예전에 이런 병을 앓았는데 이 처방으로 효과를 보았지, 독한 약이지만 효과가 북소리처럼 즉각 나타났다네."

호씨는 이웃의 말을 듣고서는 조금 안심을 했다. 그래서 의원의 처방대로 대승기탕을 조제해서 달여 먹였다. 그랬더니 밤사이에 두 차례 대변을 보았고, 다음 날 아침 복통은 멎었으나 다른 증상은 여전했다.

의원은 이에 백호사심탕과 감로음(甘露飮) 등을 서로 가감하여 번갈아 처방했다. 그리고 석고는 네 냥까지 쓰고, 황금과 황련은 각각 수 돈씩 쓰며, 금은화와 금즙을 더하여 열독을 몰아내고 해독하는데 주력했다. 며칠 사이에 쓴 약 무게가 수 근(斤)에 다다랐다. 찬물도 열 사발 넘게 마시게 했다.

주위 사람들은 약이 너무 독한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그러나 며느리는 의원의 처방대로 복용하면서 차츰 증상이 회복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의원의 담대함에 감탄하였다.

"내가 담이 큰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증에는 이러한 중한 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뿐이외다."

옛날에는 독한 처방도 많이 했거니와 처방이 너무 독한 경우 환자나 보호자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의원이라면 자신의 처방이 병자의 병증에 꼭 필요하다고 확신한다면 용기를 내서 밀어붙여야 한다. 동시에 의술이라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면서 자칫 잘못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일이라 매사에 신중해야 한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정행헌의안(程杏軒醫案)> 胡某乃媳感證. 胡某乃媳,夏月患感證,延診時已七日矣。切脈弦數搏指,壯熱譫狂,面目都赤,舌黑便秘,腹痛拒按。診畢令先取冷水一碗與服,某有難色,予曰:冷水即是妙藥,飲之無傷。蓋欲觀其飲水多寡,察其熱勢之輕重耳。其姑取水至,雖聞予言,心尚猶豫,勉傾半盅與飲。婦恚曰:何少乃爾。予令盡碗與之,一飲而罄。問曰:飲此何如。婦曰:其甘如飴,心地頓快,吾日來原欲飲水,奈諸人堅禁不與,致焦煩如此。予曰:毋憂,今令與汝飲,但勿縱耳。因謂某曰:汝媳病乃極重感證,邪踞陽明,已成胃實。問所服何藥,某出前方,乃小柴胡湯也。予曰:杯水能救車薪之火乎?即投白虎瀉心,尚是揚湯止沸耳。某曰:然則當用何方?予疏大承氣湯與之。某持方不決。鄰人曰:吾婦昔病此,曾服此方得效。於是取藥煎服,夜間便行兩次,次早腹痛雖止,他證依然。改用白虎瀉心及甘露飲三方出入,石膏用至四兩,芩連各用數錢,佐以銀花金汁驅穢解毒,數日間共計用藥數斤,冷水十餘碗,始得熱退病除。眾皆服予膽大。予曰:非膽大也,此等重證,不得不用此重劑耳。(호모씨 며느리의 감증. 호모(胡某)의 며느리가 여름철 감증을 앓았다. 진찰을 청했을 때는 이미 발병한 지 7일째였다. 맥을 짚어보니 현삭(弦數)하고 손가락에 세게 부딪쳤으며, 심한 열로 헛소리를 하고 미친 듯 날뛰었고, 얼굴과 눈이 모두 붉었다. 혀는 검고 대변은 막혀 있었으며, 복통이 있어 누르면 거부하였다. 진찰을 마친 뒤 먼저 찬물 한 사발을 가져다 마시게 하였다. 호모가 난색을 보이자 내가 말하였다. "찬물이 곧 묘약이니, 마셔도 해가 없다." 이는 물을 얼마나 마시는지를 보아 열의 경중을 살피려는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물을 가져왔으나, 내 말을 들었어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머뭇거리며 겨우 반 잔만 따랐다. 며느리가 성내며 말하였다. "어찌 이리 적게 주십니까?" 내가 한 사발을 다 주라 하니, 단숨에 모두 마셨다. 내가 묻기를 "마셔 보니 어떠한가?" 하니, 며느리가 말하였다. "엿처럼 달고 마음이 금세 시원해졌습니다. 저는 며칠 전부터 물을 마시고 싶었으나 사람들이 굳게 금하여 주지 않아 이렇게 번열이 심해졌습니다." 내가 말하였다. "걱정 말라. 이제 마시게 하되 지나치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호모에게 말하였다. "그대 며느리의 병은 매우 위중한 감증으로, 사기가 양명에 자리 잡아 이미 위실이 되었다." 무슨 약을 먹였는지 묻자, 이전 처방을 내보였는데 소시호탕이었다. 내가 말하였다. "한 잔의 물로 수레에 실은 장작불을 끌 수 있겠는가? 백호사심탕을 쓴다 해도 이는 끓는 물에 물을 조금 붓는 것과 같을 뿐이다." 호모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무슨 처방을 써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승기탕을 써 주었다. 호모는 처방을 들고도 결정을 못하였다. 이웃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집 사람도 예전에 이런 병을 앓았는데 이 처방으로 효과를 보았다." 하여 마침내 약을 달여 복용하였다. 밤사이에 두 차례 대변을 보았고, 다음 날 아침 복통은 멎었으나 다른 증상은 여전하였다. 이에 백호사심탕과 감로음 등을 서로 가감하여 번갈아 쓰되, 석고는 네 냥까지 쓰고, 황금·황련은 각각 수 전씩 쓰며, 금은화와 금즙을 더하여 사열을 몰아내고 해독하였다. 며칠 사이에 쓴 약이 수 근에 이르고, 찬물도 열 사발 넘게 마신 뒤에야 비로소 열이 내리고 병이 나았다. 사람들은 모두 나의 담대함에 감탄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담이 큰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증에는 이러한 중한 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뿐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