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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영화 '호프', 그 정체 몰랐더라면…호불호에도 돋보인 한국 장르영화의 진화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15일 국내 개봉, 9월 9일 북미 개봉

'호프' 북미 예고편. 뉴스1
'호프' 북미 예고편. 뉴스1
'호프' 북미 예고편. 뉴스1
'호프' 북미 예고편. 뉴스1

[파이낸셜뉴스] 올해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호불호를 불러일으킨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국내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얻고 있다.

"장르영화의 쾌감이 뛰어나 완전 신난다", "100% 신선도"라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심연이 깊어진 영화라기보다 운동성이 거대해진 영화로 기대했던 나홍진과 실제 도착한 나홍진이 다른 영화", "오락용 블록버스터치곤 찜찜하고, 미완결 느낌의 당혹스러운 결말"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칸영화제에서도 지적된 외계인 CG의 완성도를 두고는 국내 관객들의 평가 역시 엇갈릴 여지가 있다. 다만 유려한 영상미와 색다른 액션의 쾌감, 심혈을 기울인 음향은 한국 장르영화의 스케일과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호프'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한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는다는 설정만 놓고 보면 전작 '곡성'(2016)과 유사하다. 하지만 기묘한 에너지와 끝 모를 미스터리로 이야기를 풀어낸 '곡성'과 달리, '호프'는 SF 액션 스릴러의 형식을 통해 보다 장르적 쾌감을 지향한다.

종교적 모티프는 여전하다. 나 감독은 "성경은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텍스트"라며 "인간의 말보다 그분의 말씀에 더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하다 보면 결국 그쪽으로 가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호프'는 9월 9일 북미에서 개봉한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 사상 최고가로 전 세계 200여개 국가 및 권역에 선판매됐다.

친숙함과 낯섦의 공존

영화는 1970~80년대 한국의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비무장지대 인근 호포항에서 난자된 채 죽은 소를 발견한 마을 청년들과 우두머리 성기(조인성), 성기와 육촌 사이인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베일에 싸인 존재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범석은 후배 순경 성애(정호연)와 함께 노인들뿐인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놈을 쫓아 산으로 향했던 성기 일행은 되레 그들의 사냥감이 된다. 할리우드 영화로 치면 빌런이 된 아바타나 지구인을 사냥하러 온 프레데터를 떠올리게 하는 외계 생명체가 산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셈이다.

영화는 지구인과 외계인의 대결, 친숙함과 낯섦의 공존을 통해 '호프'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한국의 시골 마을을 담은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이국적이다. 범석과 성애의 스타일은 은근히 세련됐지만, 두 사람의 행동과 말투는 투박하고 소박하다.

둘은 전형적인 영웅과도 거리가 있다. 범석은 눈앞의 재앙을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고, 때로는 겁에 질려 허둥대며 의외의 웃음을 자아낸다. 성애는 난장판 속에서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예의 바른 후임이지만, 카체이싱과 드리프트, 유탄 발사 등 거칠고 과감한 액션을 거침없이 소화하는 여전사의 면모도 갖췄다.

콧수염을 붙인 조인성의 외모 변신도 인상적이다. 실제 루마니아 숲에서 촬영한 말 추격신과 자동차 창문에 매달려 펼치는 후반부 고속도로 카체이싱에서는 자신의 장기인 액션 연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칸영화제가 '스포일러'

이 영화의 칸영화제 초청은 호재인 동시에 악재가 됐다.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공개된 데다 예고편으로 외계인의 존재까지 드러나면서 관객은 마을을 습격한 미스터리한 존재의 정체를 미리 알게 됐다. 그 결과 범석이 엽총을 들고 마을을 수색하는 전반부의 긴장감은 다소 떨어진다. 물론 정체를 알고 봐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지는 유머와 다음 장면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하다. 다만 '스포일러'의 영향으로 전반부가 다소 길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나홍진 감독에 따르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은 작품이 완성되기 전 이뤄졌다. 그는 7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한 라운드 인터뷰에서 "7월 개봉을 목표로 달리고 있었는데, 일단 덮고 칸에 내보내자는 결정을 했다"며 "후반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지만 칸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것은 큰 영광이었다"고 돌이켰다.

이에 언론시사회 이후에도 사운드와 CG를 계속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나 감독은 "기사와 홍보를 통해 정체불명의 존재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곡성'에 이어 나홍진 감독과 호흡을 맞춘 홍경표 촬영감독은 와이드 렌즈를 활용해 인물과의 거리를 좁히고, 영화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카메라 무브먼트를 통해 '호프'만의 독창적인 영상미를 완성했다. 특히 밤 장면이 전혀 없는 '호프'에서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해 미세한 빛의 변화를 포착했다.

음악 역시 액션의 쾌감을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다. '겟 아웃', '어스', '놉'의 음악을 맡은 마이클 에이블스가 참여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크론 스테이지에서 70여 명의 연주자가 녹음한 웅장한 스코어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호프'의 분위기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호포항 마을은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전남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일대를 리모델링해 촬영했다. 숲속 초입은 제주 수망리에서, 범석과 성애 일행, 성기와 외계인 마베이요가 추격전을 벌이는 하이라이트 액션 시퀀스는 경남 합천 성기대교 일대에서 촬영됐다. 공교롭게도 조인성이 연기한 캐릭터 이름 성기와 동일하다.

"모든 비극의 원인은 퍼스펙티브에 있다"

나 감독은 연출 의도에 대해 "모든 비극의 원인은 퍼스펙티브에 있다"고 설명했다.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할 때 비극이 시작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극 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비극의 원인을 제공하는 특이한 취향의 마을 청년 '양대'가 등장한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원죄를 짊어진 것처럼, 무지와 두려움에서 비롯된 그의 행동은 공동체 전체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범석이 정체불명의 존재와 맞닥뜨리는 전반부에 이어, 성기 일행이 침엽수림이 뻬곡한 숲에서 또 다른 외계인과 벌이는 대결, 그리고 세 주인공이 나란히 차와 말을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외계인의 추격에 맞서는 액션으로 이어진다. 범석과 외계인, 성기와 외계인의 대결 사이 마을 청년 양대가 의도치 않게 저지른 작지만 큰 일의 비밀이 밝혀진다.

국내 개봉판은 칸 상영 버전보다 4~5분가량 러닝타임이 줄었지만, 양대가 등장하는 장면은 오히려 늘어났다. 그만큼 이 인물이 지닌 상징성이 크다는 의미로 읽힌다. 동시에 양대가 사는 공간은 보는 순간 사회면을 장식했던 범죄 사건을 떠올리게 하며 불안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정작 이 캐릭터는 악의가 없는 인물로 설정돼 있다.

나 감독은 "처음에는 범석과 같은 시선으로 아무 정보 없이 따라가게 되고, 나중에야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며 "관객에게 죄의식을 심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이 어떤 입장 차이를 갖고 동일하거나 흡사한 상황을 바라보게 될지가 궁금했다"고 덧붙였다. 마을 청년 '양대'에 대해서는 "모든 사단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며 "악행이 꼭 악의를 가져야지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 감독은 이번 신작을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라 "비극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확장되는가"를 탐구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했다"며 "'곡성'에서는 토속신과 잡귀 등 초자연적 현상을 활용했다면, 이번에는 그보다 더 심화된 퍼스펙티브가 무엇일지 고민했고, 그래서 우주를 떠올리게 됐으며 이를 표현할 존재로 외계인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게 뭐지, 도대체 정체가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디자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딱 보는 순간 외계인 같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목표였다"고 부연했다.
연출적으로는 한국 장르영화의 밀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그는 "액션과 스릴러로서 장르적 밀도를 더 충실하게 구현하고 싶었다"며 "영화 초반 50분 동안 괴물을 보여주지 않고 달리는 한 남자를 따라가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시도였다. 극장에서 사운드와 비주얼을 통해 관객이 직접 체험하며 쾌감을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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