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꿈이 있어요..." 초고령사회 생존법, 일터로 나가는 '노인들' [르포]
[은퇴가 끝은 아니었다…카페에서 찾은 두 번째 인생]
"일할 힘은 있는데"… 좁은 선택지가 아쉬운 노인들
'최소한의 삶' 영위할 수 있게 고용·연금 함께 바꿔야
[파이낸셜뉴스] "나이가 들어도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신열(75세)씨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위치한 '카페나누다'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10시 카페를 찾은 기자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자 김씨는 망설임 없이 제조를 시작했다. 그라인더에 원두를 갈아 포터필터에 담은 뒤 디스트리뷰터로 커피를 고르게 정리했다. 이를 그룹헤드에 장착하자 진한 에스프레소가 잔으로 흘러내렸다. 김씨는 얼음과 물이 담긴 컵에 에스프레소를 부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불과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완성됐다.
김씨는 일주일에 2~3일, 매일 오전 8시 출근해 11시까지 음료 제조, 재고 관리, 매장 청소 등 카페 운영 전반을 맡는다. 그렇게 한 달에 30~35만원 가량의 활동비를 받는다.
젊은 시절 손해보험회사 임원으로 재직했던 김씨는 은퇴 후 평소 관심이 많았던 커피 공부를 했다. 그는 "2년 동안 공부하며 꾸준히 실력을 쌓았다. 지금도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취미로 시작한 배움은 제2의 일자리를 얻는데 밑거름이 됐다.
다만 김씨에게도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은퇴 직후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어 하루 대부분을 집에서 보냈다. 밖에 나가면 자신을 '노인'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괜히 신경 쓰였다. 그는 "집에만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며 "커피를 배우고, 덕분에 일도 시작했다. 경제적인 도움도 있지만 삶의 활력이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쉬는 날에는 스크린골프, 바둑, 당구 등 취미도 즐기며 일과 여가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사회가 노인을 규정하는 연령 기준과 일자리 폭이 지나치게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현행 노인복지법은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노인복지 서비스와 노인일자리 사업도 이를 기준으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씨 역시 현재의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다고 봤다. 충분히,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노인으로 분류되는 순간 사회적 역할과 취업 기회가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나는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니 잘된 경우"라며 "주변에는 은퇴 후 집에서 쉬는 친구들이 많다. 나이가 들어도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지만 자신감을 잃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어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다"며 "한 친구는 새로운 직종에 도전했지만, 나이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2026년 노인일자리를 역대 최대인 115만2000개로 늘렸다. 지난해보다 5만4000개 늘어난 규모다. 이번 노인일자리 확대는 ▲초고령사회 진입 ▲노인 고용률 상승 ▲부족한 노후소득이라는 세 가지 흐름이 맞물린 결과다. 고령층 상당수는 부족한 소득 보전을 위해 다시 노동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다만 대부분 단순 직종에 종사하고 있어 양질의 일자리를 높여야 한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노인일자리사업 도입 및 정착기에 중장기적 방향성을 제시해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허준수 교수는 본지에 초기 노인일자리 제도가 일반적 노동시장 일자리보다는 '실비 자원봉사' 형태로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빈곤 상태에 놓였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차상위계층 노인이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일정 수준의 활동비를 받도록 한 것이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다만 허 교수는 제도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취약 노인의 소득 보전과 사회참여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접근되며, 단순한 일자리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노인 유권자의 표심을 의식해 일자리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접근하면서 사업이 정치적 성과처럼 활용됐다"며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제도적 목적과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일자리가 늘어났다는 건, 그만큼 노인층이 빈곤하다는 뜻을 의미한다. 노후 빈곤의 배경에는 낮은 연금 급여 수준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10일 국민연금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연금 2025'(Pensions at a Glance 2025)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소득빈곤율은 39.7%로 OECD 평균 14.8%의 2.7배에 달했다. 76세 이상 노인은 절반이 넘는 54.0%가 빈곤 상태였다. 여성 노인의 빈곤율도 45.0%로 나타났다.
은퇴 전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을 뜻하는 소득대체율은 한국 평균소득 근로자가 33.4%로 OECD 평균 43.0%보다 9.6%포인트 낮았다.
특히 80대 이상 고령 노인은 국민연금 제도 도입 당시 충분한 가입 기간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연금이 없거나 수령액이 적어 은퇴 후에도 생계를 위해 다시 노동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등에서 소외되는 빈곤층을 위해선 기초연금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허 교수는 "노인일자리와 기초연금에 대한 지출을 계속 확대하는 방식만으로는 노인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강화하고, 향후 은퇴 세대가 연금만으로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6일 기초연금 지급 구조를 소득이 낮을수록 더 두텁게 지원하는 '하후상박' 방식으로 개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6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소득 하위 70%에게 월 35만원을 지급하는 구조를 바꿔, 장기적으로 고소득 고령자는 수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이다. 기존 수급자의 지급액은 줄이지 않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른바 '2차 베이비붐 세대'인 1964~1974년생이 본격적으로 은퇴하면서 이전 고령 세대보다 학력과 자산 수준이 높은 노인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런데도 전체 고령자의 70%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수급 기준은 12년째 큰 변화 없이 유지돼 왔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초연금에 투입되는 재정도 연간 20조원을 넘어섰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올 하반기 주요 개혁 과제로 기초연금 선정 기준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재의 소득 하위 70% 기준을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 이하로 바꿔 고소득 고령층은 점차 수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빈곤 위험이 큰 노인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전문가는 노인일자리 정책 역시 같은 방향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취약 노인을 위한 소득 보전형 사회참여 활동과 전문성·경력을 갖춘 고령자를 위한 민간 취업 정책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건강하고 근로 능력이 있는 고령자가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활용해 노동시장에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노인일자리 개수보다 고령자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오래 일하고, 원하는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정책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