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한동하의 본초여담] 감기었지만 허증맥에 인삼을 처방해서 살렸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상한병(감기의 일종)이라도 맥상이 허증을 보이면 인삼이 약이 될 수 있다. 증상보다 맥의 허실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처방의 핵심이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상한병(감기의 일종)이라도 맥상이 허증을 보이면 인삼이 약이 될 수 있다. 증상보다 맥의 허실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처방의 핵심이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옛날 유참판댁의 시집간 여동생이 변고로 인해서 과부가 되었다. 그런데 그 여동생은 일찍 남편을 잃어 아들은 없었고 딸만 한 명 있었다. 부인은 외동딸을 무척 애지중지했다.

부인의 딸은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해서 출산을 했다. 그런데 산후에 몸이 몹시 허약해졌다. 그래서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 부인은 딸 걱정으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근심과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 딸은 건강을 회복했다.

그런데 이제는 갑자기 부인이 병에 걸렸다. 유참판은 걱정된 나머지 여동생을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서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서의원에게 진찰을 청했다. 서의원이 진찰을 해 보고서는 "상한병(傷寒病, 감기의 일종)입니다."라고 했다.

서의원은 증상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 감기에 많이 쓰는 소갈음(蘇葛飮)을 처방했다. 부인은 소갈음을 복용하고 나은 듯하였다. 그러나 며칠 뒤 또다시 상한병에 걸렸다.

진맥을 해 보니 맥이 매우 허하면서도 빨랐다. 의원은 "이 역시 상한병이지만 약간 열증이 있사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시호충화탕(柴胡冲和湯)을 세 첩 복용시켰다. 그랬더니 아침에는 조금 가벼워지고 저녁이면 다시 심해졌다.

부인의 병은 아침에는 덜하고 저녁에는 심해졌으며, 맥이 빠른 증상도 여전했으며 병세는 점차 위중해졌다. 다시 시호사물탕(柴胡四物湯)을 세 첩 써서 하루 두 번 복용하게 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서의원은 당황했다. 부인의 병세가 날로 위독해지자 그 사이 몇가지 처방을 연달아서 복용하게 했다. 그러나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더욱 좋지 않았다.

며칠 후 진맥을 해 보니 맥이 더욱 고르지 못하여 오른쪽은 크고 왼쪽은 작았으며, 오른쪽 관맥에서는 흥분된 맥상이 나타나고 잠시 멈추는 결대맥(結代脈)이 느껴졌다. 두 번 뛰고 한 번 멎는 상태였다. 또한 턱 부위의 근육이 실룩거렸고, 잠만 자려 하며 정신이 혼미하여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니 매우 위급한 증세였다. 심장의 기운까지 영향을 받을 것을 보면 곧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새 딸이 와서 울부짖고 있었다. "엄니, 내 병 때문에 날 돌본다고 식사도 안 하시고 몸을 혹사하시더니 결국 이렇게 되신거요. 죄송합니다. 엄니. 흑흑"

서의원은 걱정된 나머지 유참판에게 "여동생의 병세가 위중합니다. 이곳에서 계속 머물면서 치료해 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서의원도 두려웠지만 그래도 유참판의 여동생이라 자신의 가족처럼 여겨 치료를 도맡았다. 서의원은 자신의 절친인 정의원을 불러 유참판댁에 머물며 치료하기로 했다.

서의원은 부인의 병세가 매우 위중함을 깨닫고 신중을 기했다. 그때 몇 해 전 윤첨정이 상한병에 걸렸을 때 맥이 한번씩 건너뛰는 대맥(代脈)이 나타났던 일을 깊이 떠올렸다. 그때 부친이 인삼맥문동탕을 처방해서 신묘한 효험을 보았다.

서의원은 참판에게 아뢰었다. "전에 선친께서 이처럼 맥이 허하고 위태로운 증세를 만나시면 인삼맥문동탕(人參麥門冬湯)을 써서 효과를 본 일이 많았습니다." 서의원의 부친도 의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연세가 많고 병환 중이었다.

서의원은 다시 한번 진맥을 했다. 병을 앓던 초기에는 부하면서 빨랐다. 그러나 이제는 허하면서 깊은 맥이다. 그러면서 맥은 한두 번씩 건너뛰었다. 이는 분명 허증(虛症)이다.

서의원은 유참판과 가족들에게 "인삼맥문동탕에 인삼 두 돈을 넣어 쓰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병자 집안은 물론이고 정의원까지 깜짝 놀라며 걱정을 했다. "인삼이 열을 돕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상한에 어찌 인삼을 쓰신다는 말씀입니까?"

서의원은 "맥상이 허증이요. 맥을 따르겠소."라고 하면서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이 되었는지, 처음에는 인삼 한 돈만 넣은 인삼맥문동탕 한 첩을 시험 삼아 복용하게 하였다. 한 첩을 복용하고 별다른 탈이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는 인삼 두 돈을 넣은 인삼맥문동탕을 하루 두 번 복용하게 하여 모두 세 첩을 연이어 복용시켰다. 끊어지던 맥이 비로소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결대맥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증세는 여전히 위중하였다.

정의원이 "처방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서의원은 "처방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약력이 부족한 것이요."라고 하면서 다시 인삼 세 돈을 넣은 인삼맥문동탕 일곱 첩을 복용하게 했다. 인삼의 양을 늘린 것이다. 그러자 기운은 다소 살아나는 듯하였다.

정의원도 인삼맥문동탕이 어느 정도 차도를 보이자 자신도 원인을 양기부족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정의원은 자신의 주장대로 부인에게 인삼 다섯 돈을 넣은 좁쌀미음 처방을 했다. 또한 이어서 인삼 다섯 돈과 포부자(炮附子) 한 돈을 달여 두 첩 복용하게 하였다.

그러자 부인은 소변이 시원하게 자주 나왔으며, 하루 동안 배출한 양이 거의 큰 그릇 여러 개에 이를 정도였다. 그 뒤 서의원이 귀용탕(歸茸湯)과 축천환(縮泉丸) 등을 복용한 뒤에야 비로소 스스로 일어나 움직일 수 있었고, 정신도 점차 회복되었다.

서의원은 참판에게 "여동생은 상한병이었지만, 허증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보약이 약이 되었던 것입니다."라고 했다. 참판은 "아마도 자신의 딸의 병을 걱정하여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밤낮으로 간병하면서 마음을 태우고 근심한 것이 결국 이처럼 극심한 허탈(虛脫)을 초래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거들어 주었다.

본래 상한병은 표증이기 때문에 인삼 등의 처방은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다양한 감기 처방이 효과가 없고, 맥상이 허증을 보이기에 상한병에서 시작했더라도 인삼이 포함된 보제(補劑)가 효과를 보인 것이다. 처방에서는 증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맥을 중심으로 병의 허실을 판단해야 한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역시만필(歷試漫筆)> 兪參判寡妹, 卽尹淸風子婦, 而早寡無子, 只有一女, 卽洪生內室也, 甚鍾愛之, 數朔前解娩後, 得産餘虛症, 出沒死生, 故焦煎度日, 猝得傷寒, 初不大叚, 服蘇葛飮取愈, 數日後再感後, 脈甚虛數, 用柴胡冲和湯, 三貼而朝輕夕加, 用加味益氣湯, 二貼而罔效, 朝輕夕重, 脈數之候漸谻, 用柴胡四物湯, 三貼日再服無效, 病日谻, 故其間多服無價散ㆍ牛黃膏, 又柴胡四物湯, 加連桅一貼, 則非徒無效, 自數日, 脈甚不調, 右大左小, 右關現動止脈, 而兩動一止, 且頤部有瞤動之氣, 貪睡, 神昏懵, 不省人事, 甚危症也, 迷兒與鄭醫, 相處病家, 晝夜不離, 共爲看病矣, 白于參判前曰, 曾見老父, 如此脈虛危症, 用人參麥門冬湯, 多有收效者矣, 公曰, 君之老親, 病尙不輕, 不可來診, 以君所見脈與症, 論病議藥而來爲可云, 余聞病甚危矣, 深思數年前傷寒代脈, 始見於尹僉正病, 其時神驗, 故勸用麥門冬湯ㆍ二錢重參, 則病家與醫人, 恐有助熱, 始試用一錢參ㆍ麥門冬湯一貼, 翌日用二錢重參ㆍ麥門冬湯, 日再服, 連進三貼, 則脈始連續, 而症尙危苦, 故用醒心散, 合益氣湯二貼, 又用三錢參ㆍ麥門冬湯七貼, 而氣似稍勝, 精神尙甚不爽, 故鄭醫用五錢參ㆍ粟米飮二貼, 及五錢參ㆍ一錢炮附子, 煎服二貼, 則小便滑數, 一日所放, 幾數大器, 用歸茸湯ㆍ縮泉丸等藥然後, 始能自起動, 精神亦似稍勝, 盖虛之特甚者也, 無乃以女病, 廢食露處費神焦慮所崇, 而致此虛脫者歟. (유 참판의 과부 여동생은 곧 윤청풍의 며느리였다. 일찍 남편을 잃고 자식이 없었으며, 오직 딸 하나만 있었는데, 곧 홍생의 아내였다. 그녀는 그 딸을 몹시 사랑하였다. 몇 달 전 딸이 출산한 뒤 산후 허증을 얻어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나들었으므로, 어머니는 근심과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상한에 걸렸다. 처음에는 그다지 심하지 않아 소갈음을 복용하고 나은 듯하였다. 그러나 며칠 뒤 다시 감기에 걸린 후 맥이 매우 허하면서도 빨랐다. 시호충화탕을 세 첩 복용하였으나 아침에는 조금 가벼워지고 저녁이면 다시 심해졌다. 이어 가미익기탕 두 첩을 복용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병은 아침에는 덜하고 저녁에는 심해졌으며, 맥이 빠른 증상도 점차 위중해졌다. 다시 시호사물탕을 세 첩 써서 하루 두 번 복용하게 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병세가 날로 위독해지자 그 사이 무가산과 우황고를 여러 번 복용하게 하였고, 또 시호사물탕에 황련과 치자를 더하여 한 첩을 썼으나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다. 며칠 뒤에는 맥이 더욱 고르지 못하여 오른쪽 맥은 크고 왼쪽 맥은 작았으며, 오른쪽 관맥에서는 두 번 뛰고 한 번 멎는 맥이 나타났다. 또한 턱 부위의 근육이 실룩거렸고, 잠만 자려 하며 정신이 혼미하여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니 매우 위급한 증세였다. 나와 정 의원은 병자의 집에 함께 머물며 밤낮으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간병하였다. 나는 참판에게 말씀드렸다. "전에 선친께서 이처럼 맥이 허하고 위태로운 증세를 만나시면 인삼맥문동탕을 써서 효과를 본 일이 많았습니다." 참판이 말하였다. "그대의 부친께서도 병환이 가볍지 않으시니 직접 오셔서 진찰하시기는 어렵겠소. 그대가 본 맥과 증상을 가지고 병을 논하고 약을 의논하는 것으로 충분하오." 나는 병세가 매우 위중함을 보고, 몇 해 전 윤첨정의 상한병에서 대맥이 나타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인삼맥문동탕이 신묘한 효험을 보였으므로 이번에도 인삼맥문동탕에 인삼 두 돈을 넣어 쓰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병자 집안과 의원들은 인삼이 열을 돕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삼 한 돈만 넣은 인삼맥문동탕 한 첩을 시험 삼아 복용하게 하였다. 다음 날부터는 인삼 두 돈을 넣은 인삼맥문동탕을 하루 두 번 복용하게 하여 모두 세 첩을 연이어 복용하니, 맥이 비로소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증세는 여전히 위중하였다. 이에 성심산에 익기탕을 합한 처방 두 첩을 쓰고, 다시 인삼 세 돈을 넣은 인삼맥문동탕 일곱 첩을 복용하게 하니 기운은 다소 살아나는 듯하였다. 그러나 정신은 여전히 맑지 못하였다. 이에 정 의원이 인삼 다섯 돈을 넣은 좁쌀죽을 두 첩 쓰고, 이어 인삼 다섯 돈과 법제한 부자 한 돈을 달여 두 첩 복용하게 하였다. 그러자 소변이 시원하게 자주 나왔으며, 하루 동안 배출한 양이 거의 큰 그릇 몇 개에 이를 정도였다. 그 뒤 귀용탕과 축천환 등을 복용한 뒤에야 비로소 스스로 일어나 움직일 수 있었고, 정신도 점차 회복되는 듯하였다. 이는 허증이 특히 심했던 경우였다. 아마도 딸의 병을 걱정하여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마음을 태우고 근심한 것이 결국 이처럼 극심한 허탈을 초래한 것이 아니겠는가.)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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